[칼럼] 500년을 맞이한 종교개혁과 다시 요구되고 있는 종교개혁
[칼럼] 500년을 맞이한 종교개혁과 다시 요구되고 있는 종교개혁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11.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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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할로윈(Halloween)”으로 알려진 10월 31일은 천주교와 개신교계에게는 마르틴 루터(Martin , 1483~1546)가 당시 천주교에 소위 “95개조 반박문”을 제시한 날이다. 이 사건이 그 이후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에 개신교계에서는 이 날을 종교개혁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으며, 올해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 개신교계에서는 학술행사와 예배 등 각종 행사를 진행했다.

당시 천주교는 정치, 경제 등 다른 어떤 권력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천주교가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의 종교로 받아들여졌고, 천주교 이외의 종교는 이단, 혹은 악마의 조직으로 간주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천주교에 비판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종교재판으로 단죄 받고 생존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비판적 발언이나 행동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 천주교가 비판받을 발언이나 행동을 했었다는 의미일 것이고 그로 인해 탄압받은 사람이나 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의 방증일 것이다. 당시 천주교에서 가장 대표적인 적폐 중 하나는 “면벌부”(과거에는 “면죄부”라고도 불리웠다.)였다. 이것은 돈을 내고 면벌부를 구입하면, 죄에 따른 벌을 면책 받을 수 있다는 제도였다. 이것은 신이 내리는 벌을 돈으로 면할 수 있다는, 신앙의 기준이 아닌 신앙이 없는 사람의 생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면벌부를 비롯한 천주교의 다양한 적폐는 마르틴 루터가 95개조로 나눠 비판했고, 이후 토론회와 마르틴 루터에 대한 파문, 그리고 농민전쟁과 친루터파와 반루터파 사이의 전쟁을 거쳐서, 각 영지의 영주들이 루터파와 천주교 가운데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아우구스루브크 종교화의로 이어진다.

종교개혁은 루터에 의해서 시작된 것만은 아니다. 이전부터 프랑스의 발도, 영국의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후스 등에 의한 종교개혁 운동과 이로 인한 순교는 존재했다. 또한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 이후 종교개혁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프랑스, 스위스, 영국 등으로 이어져서 칼뱅, 츠빙글리, 영국의 청교도 혁명 등으로 계승됐다. 이들 사이에 완벽하게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이 갑자기 시작된 것도 아니고, 역시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후 종교개혁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개혁의 대상이 된 천주교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새롭게 생겨난 수도회 중 하나인 “예수회”가 생겨서 천주교의 정화에 앞장선 동시에, 종교개혁에 반대해 반동적인 모습도 보여줬다. 또한 강력한 해외 선교 활동을 벌인 결과, 유럽 이외의 지역에 예수회가 선교활동을 벌였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현재 개신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그런데 현재 개신교계의 모습은 500년 전 적폐가 되어버린 천주교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심심치않게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발언을 퍼뜨리고 있고, 정치계에 공공연히 당선을 빌미로 정치인들을 옥죄는 등의 정치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대형교회는 많은 돈을 축적하면서 문어발식으로 교회를 확장하지만, 개척교회 목사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대형교회에 돈과 사람이 집중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목사에 대한 숭앙이 과도해서 신앙의 대상인 예수를 넘어설 지경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행사의 개최가 아닌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아울러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도 “천주교 개혁”으로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종교개혁 당시 유럽의 상황 속에서 종교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이 천주교 뿐이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이라는 용어가 통용돼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이제 “종교”의 범위가 넓어진만큼 중립적인 단어인 “종교”라는 말 대신 “천주교 개혁”이나 “가톨릭 개혁”으로 용어를 바꿔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러한 전제 아래, 오늘날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곳은 개신교만이 아닐 것이다. 냉전 당시 크래믈린처럼 교계 내부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천주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그 민낯을 보여준 조계종 등 우리나라의 거대종교계는 모두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평범한 신자들의 의식 변환이다. 1517년에 있었던 종교개혁의 바탕에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지식의 확산이 있었듯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한 지식의 확산은 평신도들을 단순히 복종하는 신자가 아닌 개혁의 주체로 바꿀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과정과 개신교의 개혁 운동, 천주교 신자들의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평신도에 의한 각 종교의 개혁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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