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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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움(여성)과 맨움(남성)의 젠더권력이 역전된 세계 이갈리아’. 이갈리아에서도 움에게 임신은 엄청난 부담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임신 기간 동안의 임금 보조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었다. 우스울 정도로 적었다. 몇몇 발언자들은 그 가치가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임신한 상태로 아홉 달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회는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노동계급에게는 특별한 문제였다. 임신은 인간의 몸에 대단한 부담이다. 그리고 그 몸이 그 후에도 힘들게 일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많은 노동계급 움들이 아이 갖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이갈리아의 딸들 p.59 (황금가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저. 히스테리아 역)

임신은 여성의 몸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월경이 멈추고, 가슴이 커진다. 또 자궁이 커지면서 배가 당기고 아픈 느낌이 들며 몸이 무겁고 피로하며 쉽게 졸린다. 또 속이 메스껍고 오심이 오는 등 입덧을 하기도 한다. 임신 후기에는 태아가 커지면서 신체적 부담도 더 커진다. 고혈압, 단백뇨 등 임신중독증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엄청난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여기에 임신 기간 중 휴직을 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면 부담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출산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출산휴가를 사용하면 직장 동료들에게 ‘민폐’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직종에서는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끼리 순서를 정해 출산계획을 세운다고도 한다.

기자는 앞의 세 체험(브래지어, 생리대, 화장)에 이어 ‘임산부 체험’을 하기로 했다. 

체험을 위해 경기 수원시의 권선구보건소에서 임산부 체험복을 대여해 지난해 10월 30일 월요일부터 11월 3일 금요일까지 24시간(씻는 시간 제외) 착용하고 생활하기로 했다. 또 체험하는 동안 임산부에게 금지된 술, 담배, 커피, 회 등을 금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30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보건소에서 임산부 체험복을 빌려 착용하고 있는 기자의 모습 ⓒ투데이신문
지난해 10월 30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보건소에서 임산부 체험복을 빌려 착용하고 있는 기자의 모습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 첫째 날 - 임신 8~9개월째, 7kg

오전 9시 30분 수원시 권선구보건소 모자보건실을 방문해 체험복을 대여했다. 체험복은 임신 8~9개월 정도의 6.08kg이었다. 실제로 태아의 몸무게와 양수, 태반의 무게를 더하면 7kg가량 된다고 한다.

보건소 직원들은 기자가 5일 동안 24시간 체험복을 착용한 채 생활한다고 하니 걱정부터 했다. 허리도 많이 아프고 생활이 힘들 거라고 했다. 체험복은 보통 출산을 앞둔 부부가 찾아와 교육을 받을 때 남편들이 체험하는데, 10분정도 착용하고 손에 가방을 들어보는 정도라고 한다. 10분 정도 체험복을 입은 남성들도 ‘허리가 아프다’거나 ‘힘들다’고 말한다고 한다. 기자는 체험복을 받아 입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다.

보건소에서 체험복을 받자마자 착용했다. 임산부 체험복을 열어보니 태아 모양의 인형이 들어있었다. 또 체험복에는 장치가 있어 버튼을 누르면 초음파로 들을 수 있는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일정하지 않은 진동이 느껴졌다. 태동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태동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보건소에서 ‘산모수첩’과 임신 중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한 안내책자를 받아들고 나섰다. 회사로 출발하기 전, 보건소 주차장에서 임산부 전용 주차장과 일반 주차장의 차이를 체험해 봤다. 간격이 좁은 일반 주차장은 차를 타고 내리기 매우 어려워 보였다. 반면 간격이 넓은 임산부 전용 주차장에서는 공간이 많아 타고 내리기 수월해 보였다.

보건소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약 150m를 걸었는데, 이 때까지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계단이 많은 수원역에서 고비를 맞았다. 부풀어 오른 배(체험복) 때문에 계단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칸 한 칸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그 후 다시 플랫폼으로 올라가야 해서 앞이 막막하던 차에 에스컬레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굳이 에스컬레이터를 찾지 않고 계단을 올랐을 텐데 이날은 에스컬레이터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임산부 체험복에는 태아 모양 인형이 들어있으며 버튼을 누르면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진동을 느낄 수 있다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복에는 태아 모양 인형이 들어있으며 버튼을 누르면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진동을 느낄 수 있다 ⓒ투데이신문

전철에 올라타니 화장을 할 때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임산부 체험이 방송에 많이 등장해서인지 사람들이 모두 ‘체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은 여전히 불편했다.

12시가 넘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종업원은 체험에 관심을 보이며 ‘임산부는 잘 먹어야 한다’고 반찬을 챙겨줬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는 건물 청소노동자도 관심을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마주친 할머니 무리에서는 “저 양반은 뭐여”, “체험하나보다”라며 눈길을 주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도중 수시로 일어나야 했다. 체험복이 방광을 압박해 수시로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아이고’ 소리를 냈다.

퇴근 후 귀갓길에서는 사람이 많은 전철에서 서서 가야 했다. 사람이 많아 불편하기도 했지만 허리와 어깨가 너무 아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체험복을 벗고 씻었다. 체험복을 다시 입기 싫어 최대한 오래 씻으려고 노력했다.

씻고 나온 후 체험복을 다시 입는 순간 피곤이 몰려왔다. ‘이걸 왜 한다고 했나’ 후회하며 ‘아이템 회의는 신중하게’를 되뇌었다.

체험복을 입고 있으니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고 귀찮았다. 잠잘 때가 가장 힘들었다. 체험복 때문에 바로 누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누워 자야 했다. 또 자면서 많이 뒤척이는 기자는 체험복 무게 때문에 자꾸 잠을 깼다. 잠도 편히 자기 힘들었다.

임산부 체험복의 무게는 임신 6.08kg으로 임신 8~9개월 정도 태아 몸무게와 양수, 태반의 무게를 더한 무게와 비슷했다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복의 무게는 임신 6.08kg으로 임신 8~9개월 정도 태아 몸무게와 양수, 태반의 무게를 더한 무게와 비슷했다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 둘째 날 - 가장 힘든 건 잠과의 전쟁이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피곤했다. 또 체험복 때문에 배에 땀이 찼다.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와 형들은 기자를 보고 “이걸 왜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기자는 이날 오버사이즈의 옷으로 체험복을 가리고 출근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튀어나온 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결국 단추를 풀고 체험복을 내놓고 다녔다. 임산부 체험복을 입고 있어서인지 출근길 전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쳐다보게 됐다. 

화곡역에서 전철을 타는 기자는 사람이 많음에도 비어있는 임산부 배려석을 보고 ‘이제는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둬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한 중년 남성이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했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이날도 역시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했다. 그러나 정말 힘든 것은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커피도 못 마시고 일을 하는 것이었다. 평소 근무 중 커피를 달고 사는 기자는 잠도 못 잔 상태에서 커피도 마시지 못해 하루 종일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결국 오후 3시 30분경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잠시 나왔다. 임산부에게 신체 활동은 중요하다. 보건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제공하는 산모수첩에는 ‘규칙적으로 하루 30분 이상 중등도의 활동도’로 운동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산책을 다녀온 후 퇴근 때까지는 졸지 않았다. 원래 기자는 출퇴근 시 전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회사에서 집 근처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싸서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체험을 하는 동안은 퇴근길만이라도 ‘앉아서’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퇴근길에 올라 다시 한 번 ‘아이템 회의는 신중하게’를 되뇌었다.

임산부 체험복 때문에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기도 불편했다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복 때문에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기도 불편했다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 셋째 날 - 남자가 그런 것 해서 뭐해

이날도 역시 잠을 편히 못 잤다. 출근길에 수리를 맡긴 카메라 렌즈를 찾으러 용산역으로 가야했다. 서비스센터에서 렌즈를 받아들고 용산역에서 전철 운행시간을 보던 중 기차를 기다리던 6~7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무리를 만났다. 

이들은 기자의 체험복에 관심을 보이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기자가 체험에 대해 설명했더니 한 할아버지는 ‘웃기다’며 ‘이런 체험을 왜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자네 어머니가 자네 낳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겠지?”라며 기자의 체험을 격려해줬다.

기자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할아버지께 ‘체험복 한 번 입어보시겠어요?’하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남자가 그런 것 해서 뭐해”라고 말했다. 더 대화를 하고 싶었으나 열차가 도착하는 바람에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기자가 회사에 도착해 ‘전날도 잠을 못 잤다’고 고충을 말하자 편집국장은 출산을 앞둔 친구에게 편하게 자는 법을 배워 왔다며 ‘옆으로 누워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고 자면 편하다’고 알려줬다.

몸도 힘든데 이날은 저녁에 회사 근처에서 회식을 했다.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맛있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도 마음껏 먹지 못했다.

산모의 경우 심혈관계 질환과 임신성 당뇨 등 합병증의 위험이 있어 동물성 지방이 많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날 회식은 고기도 맘껏 못먹고 술은 입에도 못댄 채 끝이 났다.

회식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씻은 뒤 다시 체험복을 입고 편집국장의 조언대로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워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난해 11월 2일 경기 부천시 오정보건소에서 열린 임산부 출산교실 ⓒ투데이신문
지난해 11월 2일 경기 부천시 오정보건소에서 열린 임산부 출산교실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 넷째 날 - 체험 해봐야 아는 임산부의 고충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면 편히 잘 수 있다는 팁은 기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자면서 많이 움직이기에 이날도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오전 10시. 이날은 취재차 부천시 오정보건소의 임산부 출산교실을 방문했다. 기자는 모자보건실에 들러 간단한 안내를 받은 뒤 교육장을 찾았다. 이날 출산교실에는 8명의 임산부, 그리고 아내와 함께 참석한 남성 1명이 교육에 참가했다.

이날 교육 주제는 모유수유였다. 모유수유가 중요한 이유와 모유수유를 준비하는 과정, 모유수유 방법, 가슴 마사지 방법 등을 배웠다.

남편 피환(41)씨와 함께 교육에 참가한 신지현(32)씨는 “남편에게 꼭 임산부 체험복을 입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곧바로 체험복을 벗어 피씨에게 건넸다. 피씨는 “왜 그렇게 이걸 시켜보고 싶어하는거야”라면서도 체험복을 받아 입기 시작했다. 체험복을 입자마자 피씨는 “아이고, 이거 무거운데요”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자리에 있던 다른 임산부들은 하나같이 “우리 남편도 시켜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교육에 참여한 임산부들은 기자의 체험복을 보고 “이 정도면 아직 막달 안 됐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한 임산부는 “동생 남편이 동생 임신했을 때 신발 끈을 안 묶어줬는데 이거 하더니 신발 끈을 묶어주기 시작하더라”라고 했다.

피씨는 체험복을 잠시 입어보고는 무겁고 힘들다고 했다. 기자가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어요’라고 말하자 몇 번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피씨는 ‘벌 서는 것 같다’고 했다. 임산부들은 “누웠다 일어났다 해 보면 더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피씨는 아내의 고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됐다고 했다.

임신 33주째로 첫 아이를 가진 신씨는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너무 많은데…한두 가지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이어 “겉으로 보기엔 피부변화가 가장 심했어요. 호르몬 때문에 피부가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안 좋아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안 좋아졌는데, 병원에서 피부과 약이 독해서 임산부들에게는 쓸 수가 없다고 했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힘줄이나 관절, 근육이 늘어져서 힘들었어요. 또 저는 입덧을 한 달 반 정도 했는데, 향 나는 음식들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입덧하는 동안 식빵이 가장 편했어요”라고 말했다.

남편 피씨는 “아내가 임신 후에 감정기복이 심한 것이 가장 힘들죠”라며 “호르몬 변화 때문인지 괜찮았다가도 몇 분 새 우울해하기도 해요”고 말했다. 신씨도 “임산부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하는데, 오히려 그 말이 더 스트레스가 돼요”라며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태아를 위해 조절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더 우울하기도 하고 상담이나 검사를 받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어요”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힘 쓰는 일, 음식이나 청소 같은 집안일도 거의 다 하고 있어요”라며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저희 남편이 정말 잘 해주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고맙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2시간여의 교육을 마친 후 회사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됐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동선이 길어져 그런지 이날이 가장 피곤했다. ‘차라리 앞의 세 체험을 한 주씩 더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임산부체험 넷째 날 기자가 산책을 하던 중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 넷째 날 기자가 산책을 하던 중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 마지막 날 - 드디어 모든 체험이 끝났다!

드디어 임산부 체험의 마지막 날이다. 여전히 잠을 못 자 피곤하지만 그래도 끝난다는 희망을 갖고 출근길에 올랐다. 얼른 체험복을 벗고 잠이나 자고 싶었다.

출근길 전철에서 다시 한 번 임산부 배려석을 지켜봤다. 이날도 임산부 배려석은 비어있지 않았다. 문제는 그 자리에 임신하지 않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는 것이다. 기자가 체험을 하는 동안 임산부 배려석에는 대부분 중년 이상의 여성과 남성들이 앉아 있었다. 임산부를 위한 자리가 아닌 노약자석처럼 이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회사에 도착해 일을 하던 중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시각, 기자는 체험복을 반납하기 위해 다시 권선구보건소로 출발했다. 기자가 체험복을 반납하러 가니 보건소 직원들은 “벌써 5일이 지났어요?”라고 말했다. 기자는 “‘벌써’라니요. 저는 50일인 것 같았는데요”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체험복을 반납하니 얼른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

임산부 체험 마지막 날 기자의 출근길 모습 ⓒ투데이신문
임산부 체험 마지막 날 기자의 출근길 모습 ⓒ투데이신문

이 체험을 뭐 하러 하냐고?

남성의 여성의 삶을 체험하기란 불가능하다. 임산부 체험은 사실 무게만 체험하는 것이기에 생리대 체험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호르몬 변화나 신체적 변화는 체험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기자의 체험은 실제 임산부 고통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체험을 한 이유는 최소한의 이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남성들은 ‘임산부 체험을 뭐 하러 하느냐’고 말한 반면, 여성들은 하나같이 좋은 체험이라며 ‘우리 남편도 시켜보고 싶다’거나 ‘성교육에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체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은 체험이었다. 그러나 이번 체험은 누가 봐도 ‘체험’이라는 것이 드러나기에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많이 고되다. 이 정도의 체험도 이렇게 힘든데, 실제 임산부들의 고충은 더 클 것이다. 호르몬 변화, 입덧, 기호식품 금지에 아플 때 약도 함부로 먹지 못한다. 여기에 출산의 고통까지 더한다면 정말 힘들 것이다. 이 정도 체험으로 임산부들의 고통을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진 출처 =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사진 출처 =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배려가 필요합니다. ‘태아’가 아닌 임신한 ‘여성’을 위해

기자는 임산부 체험을 하면서 ‘어머니는 강하다’거나 ‘모성의 위대함’에 중점을 두진 않았다. 오히려 임신한 ‘여성’에 초점을 맞췄다.

흔히들 임산부에게 ‘미래세대의 주역’을 잉태하고 있으니 배려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실제 서울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핑크카펫’(일부 열차에는 '임산부 먼저')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물론 미래를 위해 출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임산부인 ‘여성’이 겪는 불편과 고충들이 있다.

2016년 9월 한 노인이 노약자석(노인, 장애인, 임산부 등이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한 자리)에 앉아 있던 임산부에게 ‘진짜 임산부인지 확인하겠다’며 임부복을 들춰 올린 일이 있어 공분을 샀다.

또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하는 출산휴가,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비난, ‘맘충’이라는 혐오표현 등은 임산부들이 눈치를 보게 만든다.

사회 분위기가 이런데 ‘저출산’ 운운하며 ‘여성들이 애를 안 낳으려고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임산부들의 신체적인 부담도 상당한데 사회적 배려 없이 출산을 말하는 건 여성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겠다는 말이다.

‘태아’가 아닌 임신한 ‘여성’을 위해 사회의 배려와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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