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2011년 가을부터 7년째 탈북민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한 분씩 만났으니 이 땅에 뿌리내린 3만 탈북민 중 1%가 넘는 분을 만나본 셈이다. 북한의 인권실태에 관한 한, 가장 많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본 맹인 중 하나가 아닐까... 나 스스로 자부하는 이유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하루에 일주일치 녹음을 몰아서 하니 일단 만나면 꽤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게 되고, 방송 전 미리 읽어봐야 할 사전 인터뷰 분량도 만만치 않아서 마지막 회를 녹음할 때쯤 되면 초대 손님 인생의 모든 걸 알게 됐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마다 계속 알고 지내자고 굳은 약속을 하지만, 결국 방송이란 흘러 사라지는 것. 정작 개인적 만남으로 이어졌던 경우는 지난 7년 간 딱 세 번뿐이다.

그중 한 분인 K선생님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나보다 딱 한살 언니인 K선생님은 단언컨대! 내가 아는 모든 여성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고, 지적이며, 따뜻한 사람이다.

K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건 2012년 초봄이었다.

나는 그날 만남이 끝난 후, 마음이 너무 아려서 한동안 선생님 생각에 빠져 지냈다. 이 멋진 여성이, 하필 그런 땅에 태어나 그런 수모를 겪고 목숨을 건 탈출을 해야만 했던 일이 속상했고, 서양 사람들의 인종차별적 행동에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외국인 노동자며, 특정 국가의 우리 동포들(조선족, 고려인), 또 탈북민들을 향해서는 그 몰지각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는 점에도 화가 났었다.

요즘은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 온 탈북민들은 제 아무리 뛰어난 전문직 종사자였다 해도 그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 교수 하던 분들이 여기 와서 포클레인을 몰거나 배관공이 되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물론 포클레인 기사나 배관공 역시 전문직이고 자격증 따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일반인들이 삼수 사수 하는 이런 시험을 단번에 합격해 주변을 놀라게 하는 탈북민이 많은 것은, 그들이 전에 가졌던 직업의 난도가 높았었음을 증명한다. 당연히 일선 교사들도 전혀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었다.

북에 있을 때 명문 사범대를 나와 선생님을 했었던, 뼛속까지 선생님 피가 흐르는 K선생님은 나와 방송을 했던 2012년에만 해도 다시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었다.

‘우리 언제 만나 차나 한 잔 해요. 꼭이요~’라는 문자와 톡을 5년이나 주고받고, 결국 올 봄, 5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그 세월동안 선생님의 삶은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첫째, 그동안 선생님은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심리 공부를 마친 뒤, 서울 모 초등학교의 정식 상담교사가 되어 있었다.

둘째, 그리운 어머니를 남쪽으로 모셔오는데 성공했다.

셋째, 달라진 환경에 방황하던 아드님이 진정한 꿈을 찾고 마음을 다잡았으며, 그 꿈에 딱 어울리는 최고의 직장을 막 찾은 참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나를 가장 기쁘게 한 변화다.) K선생님이 인생의 반려자를 찾았다!

▲ Ⓒ게티이미지뱅크

“지인에게 소개 받아 만났는데... 첫 인상이 좋았죠... 그래도 이 나이에 굳이.... 결혼까지 해야 하나... 갈등이 좀 있었는데 두 번째 만난 날, 서로 아이들 이름과 나이 얘기를 하다가, 아, 이 사람이 진짜 내 짝인가 보다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 애들 이름과 태어난 해가 거짓말처럼 친형제 같지 뭐예요?”

남자분은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각각 90년생 92년생이고 K선생님 아드님은 91년생. 성도 ‘이’씨로 모두 같을 뿐만 아니라 세 아이가 다 외자 이름이라는 기막힌 우연과 마주쳤던 거다.

90년생 이훈 (남자분 큰 아들)

91년생 이영 (선생님 아들)

92년생 이진 (남자분 딸)

요렇게 깜찍한 우연이 어디 있을까...

물론 요즘 세상에 재혼이 흠도 아니고 아이들도 그런 걸 따질리 만무하지만 그들보다 조금 더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관념이 남아있는 윗세대는 조금 다르다.

그 봄날의 만남 이후, 내도록 선생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제목도 정해두었다. <사랑에도 우연이 필요해>

그런데 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사랑 얘기만 다루는 칼럼이라지만 탈북민들의 아픈 얘기를, 조금이라도 담아내야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의무감... 그러나 그런 얘기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거북함... 그런 것들로 마음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쓰기로 했다.

오늘 글이 평소처럼 말랑말랑하지 못해서 죄송하다. 허나 결론만큼은 이 칼럼의 주제에 명확하게 부합하지 않은가.

사랑에도 우연이 필요하다. 반드시!

지는 낙엽처럼 우수수, 기막히고 예쁜 우연들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의 생에 쏟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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