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과거(科擧)를 미루다
[칼럼] 과거(科擧)를 미루다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7.11.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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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2018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으로 약칭함)이 일주일 연기됐다. 포항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포항 지역에서 정상적으로 수능을 진행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수능 시험을 연기하는 것을 결정하기까지 당국의 매우 긴박하고 신중한 고민의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에 교육부에서는 포항 부근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수능을 연기하지 않을 계획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포항 지역 지진의 피해 상황이 접수되면서, 사태의 심각함을 파악하고, 수능 시험 연기를 결정했다.

수능의 연기를 받아들이는 수험생들의 입장은 아마 제각각일 것이다. 일주일이라도 연기돼서 조금이라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수험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자신의 대학 입시를 결정(수능 성적으로 인생의 전체가 결정되는 풍조는 잘못된 것이다. 풍토가 바뀌어야 하고, 수험생들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할 수 있는 시험을 하루라도 빨리 해치우고(?), 지긋지긋한 입시 지옥에서 하루라도 빨리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어느 쪽이던, 계획됐던 일정이 갑작스레 바뀌었다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다. 실제로 수능 시험 전에 공부했던 참고서를 모두 버린 학생들은 바쁘게 쓰레기장을 뒤지고, 수능 후로 예약한 성형외과 시술, 헬스클럽 등록 등이 엉망진창이 되는 촌극도 벌어졌다.

수험생들의 입장이 가장 곤란하겠지만, 수능을 준비한 사람들의 고충도 말로 다 할 수 없다. 수능시험 출제를 위해 호텔에 감금(?)돼 있던 출제위원들은 감금 기간이 더 길어졌다. 당초에 교통체증 유발로 수험생이 제시간에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능 시험을 치르지 못할 것에 대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출근 시간을 늦췄다. 그로 인해 회사의 전반적인 일정도 바꿨을텐데, 그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 될 것이다. 하다못해 수능시험으로 인해 임시로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던 학생들도 다시 학교에 가야하고, 시험을 위해 재배치했던 책상도 원위치 시켜야 된다.

지진으로 인한 수능 시험의 연기를 보면서, 필자는 조선시대 과거도 연기된 사례가 있는지 궁금했다. “과거 연기”라는 검색어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약 355건 정도의 결과가 나온다. 이 가운데 연기라는 단어가 연기(延期)가 아닌 연기(煙氣)의 뜻으로 사용된 것을 제외한 것을 검토했는데, 굉장히 다양한 이유로 과거 시험이 연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좀 더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서 부정기적인 시험을 취소하고 정규 시험만을 볼 것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었고, 농번기와 겹치기 때문에 시험을 미뤄야된다는 건의가 있었던 적도 있다.

특히 시험을 담당하는 우의정의 병환으로 인해 시험이 연기된 경우도 있었다. 여기에서는 병환이라는 것은 흉(凶)한 일이기 때문에 국가적 행사인 과거를 치를 수 없다는 입장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도 시험을 주관하는 집권층의 고민이 엿보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 승정원이 아뢴 바를 듣건대, 대신(大臣)의 병이 위급하니 전시(殿試)를 물려서 거행해야겠다. 하지만 한양 밖에서 온 사람들이 이 때문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또 중시(重試)·초시(初試)와 전시(殿試)가 있다. 내일의 전시를 물린다면 중시도 다음으로 물려서 거행해야 되고, 그렇게 되면 동향대제(冬享大祭)의 재계일(齋戒日)을 넘기게 된다. 그러니 시험보이는 일은 모름지기 대제 전에 끝내야 한다. - 『중종실록』 중종 21년(1526) 9월 15일 을미 3번째 기사

천재지변이 있을 때 과거를 연기하는 모습도 당연히 드러났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정의 정사(政事)에 대한 잘못도 마땅히 추구해서 부당한 일은 일체 고침으로써 삼가는 뜻을 보일 것은 물론, 이를 천재지변에 응답하는 실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지난 번 하늘의 경계 삼가는 것을 중히 여겨 무과 중시(武科重試)를 관원에게 명하여 실시하려 하셨으니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뜻이 지극합니다. - 『중종실록』57권, 중종 21년(1526) 10월 13일 계해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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