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영화관·공연장·레스토랑…즐길 거리 ‘다양’
새로운 예술 꿈꾸는 젊은 독립 예술가들의 안식처
“독백 아닌, 타자와 관계 중시하는 대화 예술 추구”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여러분은 예술을 즐기러 주로 어디로 향하시나요? 주위에 물어보니 영화를 보기 위해선 가까운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연극을 보기 위해선 대학로로, 인디 밴드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홍대를 찾는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경로로 움직이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언젠가부터 정해진 공식처럼 이런 루트가 우리 곁에 자리 잡게 됐는데요. 매번 비슷한 곳에 가 예술을 즐기는 것에 심드렁해진 기자는 색다른 곳을 가보고자 열심히 뒤져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연극은 대학로, 인디 공연은 홍대라는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주택가 인근 골목에 위치해 묵묵히 예술을 펼쳐 보이고 있는 곳, 그래서인지 무언가 알 수 없는 자유로운 이미지가 풍기는 곳, 이번 도시로 떠나는 작은 여행의 아홉 번째 목적지는 복합문화공간 ‘에무(EMU)’입니다.

 

경희궁 언덕에 자리 잡은 ‘에무’

에무는 도심 한복판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예전 사계절출판사 건물이었던 에무는 2010년 개관 이후 1년여 동안 실험적 운영을 거친 뒤 2012년도 비영리단체로 등록, 2013년에는 서울시 전문예술단체로 인정받게 됐다고 하는데요. 이후 전시와 공연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다가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합니다.

기자는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에무’라는 이름의 뜻이 무척이나 궁금했는데요. 사계절출판사 설립자이자 작가, 인문학자, 사진가인 에무 김영종 관장이 자신이 사랑하는 바보 철학자 ‘에라스무스(ERASMUS)’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예술로 온통 뒤덮인 에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일까요.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물랑루즈가 19세기 말 산업사회의 불안을 배경으로 태어난 키바레(작은예술 무대가 있는 주점)였다면, 경희궁 언덕에 자리 잡은 에무는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시대를 앞둔 사회적 불안을 배경으로 태어난 공간이라고 합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서울특별시에서 지정한 전문예술단체입니다. 에무는 B2층 갤러리, B1층 공연장, 1층 카페&레스토랑, 2층 영화관, 3층 예술교육관, 옥상정원(단, 예술교육관, 옥상정원은 관람제외) 등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이중 에무 갤러리는 비영리단체이며 에무시네마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한 예술영화전용상영관이라고 합니다.

 

스페인 음식이 중심인 지중해식 레스토랑

1층으로 들어서니 카페와 레스토랑이 함께 있는 에무 또르뚜가(emu tortuga)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르뚜가에서는 스페인 음식을 중심으로 남부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서구와 이슬람 문명이 만나서 꽃 핀 음식들로 다채로운 지중해 연안 그 중에서도 스페인 음식이 대표로 일컬어지는 만큼 이곳에서 스페인 음식을 먹으면서 사람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 지중해식 레스토랑을 표방하게 됐다고 합니다.

매장 안을 살펴보니 널찍한 테이블이 충분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어 일행들과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또 한쪽 창가가 유리로 돼있어 식사를 하며 경희궁 숲의 운치를 즐기기에 좋아보였습니다. 춥지 않은 날씨에는 야외 테라스 좌석에서 신선한 공기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좋을 듯 싶더군요.

▲ <사진 제공 = 에무>

전문화된 미술 갤러리…대화 예술 추구

이번엔 지하로 내려가 봤습니다. 지하 2층에는 에무 갤러리(emu gallery)가 위치하고 있었는데요. 에무 갤러리는 전문화된 미술 공간으로 매번 주제를 정해 표현의 집중을 이루며 이에 따른 담론을 생산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에무 갤러리는 김 관장 외에 한국화가 김선두씨, 조각가 유영호씨 등을 필두로 한 6명의 기획의원이 기획전시를 이끌고 있는다고 하는데요. 에무는 경력보다 현재의 작품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공모전, 기획전, 초대전 등을 열고 자아를 위한 독백의 예술이 아니라 타자와 관계를 중시하는 대화의 예술을 추구한다고 하네요.

현재 에무 갤러리에서는 이상윤, 이상섭 작가의 <樂:樂>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르면서도 조화로운 조각가 2인의 전시로 일상의 반복 속에서 형성되는 ‘소박한 다채로움’과 미니멀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현실의 혼성’을 연주하는 두 작가의 이중주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미술의 난해함보다는 유쾌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있다고 하더군요.

이 외에도 에무 갤러리에서는 회화, 사진, 영상, 연극 등의 전시가 항상 이뤄지고 때로는 다른 층에 위치한 팡타개라지, 에무 시네마 등과 함께 여러 이벤트도 열린다고 합니다.

 

‘팡타개라지’에서 예술을 자유롭게 표현하라

계단을 따라 한 층 위로 올라오니 팡타개라지(PantaGarage)는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팡타개라지는 프랑스와 리블레와의 장편소설 ‘팡타그뤼엘’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소설 속 팡타그리뤼엘은 세상이 온통 목말라있을 때 물과 술을 주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한 거인이라고 합니다. 팡타그뤼엘이 물과 술을 사람들에게 준 것처럼 에무의 팡타개라지에서는 바(BAR)가 자리하고 있어 술,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무대와 객석을 합쳐 약 70평 규모의 팡타개라지는 전문적인 음향 장비와 감각적인 조명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락, 포크, 전통음악 등 다양한 장르와 공연이 가능한 이 공간에서는 기획 공연, 공동 주최 공연, 초대 공연을 열고 공간 대관을 한다고 하는데요. 에무에서는 인디밴드, 학생 밴드, 직장인 밴드 등 언더그라운드의 뮤지션들을 응원하고 팡타개라지에서 자신의 예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합니다.

팡타개라지에서는 지난달 크래프트 맥주와 함께 공연을 즐기는 ‘에무 플로어6 페스타’를 열었다고 하는데요. 에무 플로어6 페스타는 팡타개라지는 물론 레스토랑, 영화관, 갤러리 등 건물 전체 공간에서 진행됐다고 합니다. 크래프트 맥주와 함께 전 공간이 공연장으로 변신한 이 행사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 외에도 매주 화요일 저녁에는 LP로 재생되는 5060 명곡들을 들을 수 있는 ‘별방은하수’가 진행되는 등 팡타개라지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무대가 쉴 틈 없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아늑한 초소형 예술영화전용관

이번엔 상영관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봤습니다. 에무 시네마는 2016년 4월 예술영화전용관 승인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관으로 시동을 걸었다고 합니다. 가로 8m, 세로 15m 남짓한 넓이에 50석 정도의 규모를 갖춘 이곳은 규모로는 초소형 영화관이지만 빈백(bean bag)소파 등이 마련돼 있어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또한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관객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돼 있는데요. 상영관 뒤편으로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통유리창 너머로 사계절 다른 색을 자랑하는 경희궁 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이곳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덕분에 영화 상영을 대기하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듯 하더군요.

현재 에무시네마에서는 휴가를 나온 ‘주용’(이가섭)이 하루 동안 겪는 사건을 통해 폭력이 인간 내면에 스며드는 과정을 서늘하고 집요하게 보여주는 영화 ‘폭력의 씨앗’이 상영되고 있는데요. 에무시네마에서는 지난해 6월 개봉했던 ‘아가씨’ 같은 대중영화부터 예술독립영화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연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은 고전영화도 꾸준히 상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예술에 의해 새롭게 탄생되는 공간

에무는 음악, 연극, 무용, 필름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예술의 공존을 위해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또 그들의 예술에 의해 새롭게 탄생되는 에무는 나이와 경력, 직업 등에 구분을 두지 않고 독창적 사고와 실험 정신에 바탕을 둔 예술가, 기획자를 선정해 기획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하는데요. 때론 전시장으로, 때로는 담론생산의 장으로 변신하는 에무에서 여러 분야의 예술을 접해볼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겠지요.

기자의 관람을 도와준 관계자에게 에무가 추구하는 바를 물으니 ‘바보철학’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는데요. 젊은 독립 예술가들이 바보스럽게 열정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는 것이 에무의 방향성이라고 하더군요.

에무 김상민 기획본부장은 “에라스무스의 예술적 가치관과 상업성을 접목해 깊이 있는 철학과 문화를 다루고 싶다”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숫자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바보스러움, 권위적이지 않은, 엘리트주위에서 벗어난 예술을 하는 공간으로 계속 유지하고 싶다”라며 에무의 꿈에 대해 설명해줬습니다.

원래 홍대도 젊음이 넘치는 거리였지만 부동산 값이 오르면서 점차 예술가들이 밖으로 밀려났고 젊은 독립 예술가를 위한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만큼 에무는 독립 예술가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공간으로써 그들에게 안식처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 덕분에 오늘도 독립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을 꿈꿀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오늘도 예술가를 위한, 그리고 예술가에 의해 다양한 예술이 펼쳐지고 있을 에무를 한번 찾아가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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