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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기자는 브래지어, 생리대 체험에 이어 화장을 체험하기로 했다. 요즘이야 화장하는 남성들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남성들에게 화장은 여전히 ‘선택’의 문제다. 반면 여성들은 화장을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여성이 화장을 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상급자에게 ‘예의 없다’며 혼이 나거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기관리를 못 한다’는 핀잔을 듣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여성 노동자들에게 ‘또렷한 눈썹을 만들고, 반드시 생기 있는 피부화장을 하라’거나, ‘입술을 윤이 나게 하고, 빨간색 붉은 립스틱은 필수’라는 등의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강요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렇게 여성들에게만 강요되는 화장. 과연 어떤 불편함이 따를까. 

첫째 날 - 화장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기자는 평소 스킨, 로션만 바른다. 아마 대부분의 남성들이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체험을 위해 애인, 여성 선배들과 대화하다 보니 화장을 하려면 립스틱, 파운데이션, 아이라이너, 아이섀도 등 필요한 것이 많았다. 때문에 이번 체험을 위해 화장품부터 구입해야 했다.

체험 첫날인 지난해 10월 23일 오후 기자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코스토리의 브랜드 파파레서피(papa recipe) 매장을 찾았다.

코스토리 제품기획팀 김한솔 팀장이 제품 컨설팅과 화장 시연을 도와줬다. 김 팀장은 먼저 기자의 피부 상태를 점검했다. 

코스토리 제품기획팀 김한솔 팀장이 기자에게 화장품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투데이신문
코스토리 제품기획팀 김한솔 팀장이 기자에게 화장을 시연하며 제품 사용법을 알려주는 모습 ⓒ투데이신문

김 팀장은 미스트로 퍼프를 살짝 적신 뒤 파운데이션 23호 제품을 기자의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보통 기자가 사용한 것보다 밝은 21호를 쓴다고 한다.

다음은 립 제품을 볼 차례였다. 매장에는 틴트나 립 타투 등 다양한 제품이 있었지만 김 팀장은 사용하기 편한 립스틱을 추천했다. 김 팀장은 기자의 입술이 건조하다며 립글로스를 먼저 발라 촉촉하게 한 뒤 손가락에 체리레드 색 립스틱을 묻혀 발라줬다.

다음은 눈 화장 차례였다. 아이라인을 그리기 전, 김 팀장은 기자의 눈썹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는 눈썹을 정리한 후의 인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눈썹이 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다. 김 팀장은 “눈썹을 정리하지 않으면 아이라인이 지저분해 보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눈썹 정리 후 김 팀장은 “아이라인은 번지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라며 지속력이 좋고 잘 번지지 않는 제품을 추천해줬다. 그는 남성이 화장을 한다는 점 때문인지 아이라인을 길게 그려주진 않았다. 이후 섀도를 사용해 눈에 깊이감을 더했다. 눈썹은 숱이 많아 따로 그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해 눈 화장까지 완성됐다.

마지막으로 김 팀장은 컨실러로 기자의 턱과 코를 환하게 해 입체감을 살려줬다.

제품 설명을 모두 마치고 나니 화장도 모두 완성됐다. 동행한 선배뿐만 아니라 매장의 직원들도 화장이 잘 됐다며 잘 어울린다고 했다.

이날 기자는 파운데이션, 립스틱, 아이라이너, 아이섀도 등 화장품 구입에 5만4400원을 썼다. 생각보다 사야 할 것도 많았고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김 팀장이 추천한 제품 중 몇 가지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골랐다. 미스트와 컨실러는 구매 목록에서 제외했다.

기자는 화장품을 구입하고 퇴근해 집에 돌아가던 중 지하철역 화장실에 들러 립스틱을 다시 칠했다. 입술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 색이 벌써 다 지워졌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선배의 말이 기억나 클렌징 티슈로 화장을 열심히 지웠다. 아이라인이 잘 지워지지 않아 고생했다. 클렌징 티슈로 검은색이 묻어나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지운 뒤 폼클렌징으로 다시 한 번 뽀득뽀득 닦아냈다. 평소 세안할 때는 폼클렌징으로 대충 문질러 닦지만 화장을 지우려니 무척 번거롭고 귀찮았다.

기자가 첫 날 화장을 지우는데 사용한 화장솜과 클렌징티슈 ⓒ투데이신문
기자가 첫 날 화장을 지우는데 사용한 화장솜과 클렌징티슈 ⓒ투데이신문

둘째 날 - 색칠공부는 어렵다

원래 7시쯤 기상하는 기자는 이날 화장을 위해 6시 20분경 일어났다. 재빨리 아침을 먹고 씻은 뒤 방에 들어가 열심히 화장을 했다. 이날 파운데이션, 아이라인, 아이섀도, 립스틱 등 4단계밖에 되지 않는 화장을 했지만 무려 40~50분여가 걸렸다.

아이라인이 가장 어려웠다. 전날 김 팀장이 해준 화장을 생각하며 최대한 열심히 그렸지만 거울을 보니 눈 밖에 안 보였다. 아무리 해도 눈이 너무 강조돼 보였다. 다섯 번 정도 화장을 지우고 다시 하기를 반복하다 ‘이보다 더 잘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자 과감히 포기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김 팀장의 화장과 기자의 색칠공부는 너무 차이가 났다.

화장 첫 날 김 팀장이 해준 화장(왼쪽)과 둘째 날 기자가 직접 한 화장(오른쪽) ⓒ투데이신문
화장 첫 날 김 팀장이 해준 화장(왼쪽)과 둘째 날 기자가 직접 한 화장(오른쪽) ⓒ투데이신문

출근길엔 가끔 사람들이 기자를 쳐다보긴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선을 받지는 않았다. 회사에 도착하니 한 선배 기자는 ‘아이돌 같다’며 놀림 섞인 칭찬을 해줬다. 다른 선배 기자들도 ‘처음 한 화장치고는 잘 했다’며 격려했다.

동료들과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깜짝 놀랐다. 컵에 기자의 입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한 선배 여기자는 “입술 자국 남는 게 싫어서 빨대를 선호하는 여성들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점심시간. 식사 후 화장을 고쳤다. 무턱대고 화장을 고치려는 순간 선배는 기겁하며 ‘기름과 화장을 조금 닦아내고 화장을 고치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물티슈로 얼굴을 몇 번 두드려 기름기를 닦아내고 화장을 고쳤다.

입술 화장을 고치면서 전날 김 팀장이 손가락으로 립스틱을 발라준 것이 생각나 손가락에 립스틱을 묻히고 있었는데 선배는 “그건 매장에 있는 테스터 제품이라 그렇게 한 것이고 김 기자가 사용하는 건 그냥 발라도 돼요”고 알려줬다.

기자는 ‘화장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없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점심식사 후 화장을 고치는 모습(왼쪽)과 아이래시 컬러를 사용하는 모습 ⓒ투데이신문
기자가 점심식사 후 화장을 고치는 모습(왼쪽)과 아이래시 컬러를 사용하는 모습 ⓒ투데이신문

퇴근 직전에 기자는 화장을 한 번 더 고치면서 선배들에게 마스카라 사용법을 배웠다. 마스카라는 괜찮았는데, 아이래시 컬러(eyelash curler·뷰러)를 쓰는 것이 두려웠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서 아이래시 컬러 사용하시는 것을 보고 따라 하다 눈을 집힌 적이 있어 겁이 났다. 결국 아이래시 컬러를 포기하고 마스카라만 사용하기로 했다.

셋째 날 - “성소수자인 줄 알았어요”

전날보다는 화장에 필요한 시간이 줄었으나 그래도 3번 정도 화장을 고쳤다. 아이라이너는 눈 위에만 칠했는데 자꾸 눈 아래에 묻어서 여러 번 닦아냈다. 또 마스카라를 칠하니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불편했다.

이날 기자는 여성 인터뷰이를 만나기 위해 오후 2시쯤 화장을 고치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인터뷰이를 만나 화장을 한 이유를 설명하니 그는 “그래도 자연스럽게 잘 하셨네요”라며 “화장을 하려니까 불편한 점이 많죠? 그래도 여성들의 고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하고 격려해줬다.

기자가 출근 전 화장하는 모습(왼쪽)과 출근길 모습(왼쪽) ⓒ투데이신문
기자가 출근 전 화장하는 모습(왼쪽)과 출근길 모습(왼쪽) ⓒ투데이신문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몇 장 찍은 뒤에 다시 인터뷰이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인터뷰이와 함께 있던 분이 “성소수자가 오신 줄 알았다”고 했다.

당시엔 웃고 넘어갔으나 퇴근 후 화장을 지우던 중 ‘화장하는 남성은 성소수자로 인식되는구나’ 싶어 ‘사회가 여성과 남성에게 강요하는 기준이 이렇게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넷째 날 - 전철 화장은 민폐?

이날은 취재를 위해 북한산에 올라야 했다. 시간이 촉박해 북한산으로 가는 전철(우이신설선)에서 화장을 했다. 1호선에서 화장을 하려다 사람이 너무 많아 우이신설선으로 환승해 화장하기로 했다. 우이신설선에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됐지만 용기 내 화장을 했다. 지하철에서 화장을 할 경우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지 보기 위해서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화장하는 여성들을 ‘꼴불견’이라고 하지 않는가. 

동행한 선배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살펴달라’고 부탁했는데 선배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는 맞은편에 앉은 할아버지와는 수차례 눈이 마주쳤다. 그러다 기자가 화장한 모습을 보기 불편했는지 할아버지는 결국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산에 오른 뒤 기자의 모습 ⓒ투데이신문
산에 오른 뒤 기자의 모습 ⓒ투데이신문

산에 오르는 중 땀이 쏟아져 수시로 얼굴을 닦아야 했다. 땀과 함께 화장도 지워졌다. 원래 취재장소에 도착해 화장을 고치려고 했으나 내려가면서 다시 땀을 흘릴 것이기에 화장을 포기했다. 산에 오르는 여성들은 화장을 하는지 궁금해 등산객들을 보니 화장을 하고 오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번지지 않고 화장한 얼굴을 그리도 완벽하게 유지하다니,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신경 써야 할까. 기자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취재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와 북한산우이역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화장을 다시 했다. 화장실(化粧室)을 글자 그대로 사용한 적은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이후 등산을 처음 한 기자는 귀가 후 화장도 못 지우고 바로 잠들 뻔했지만 클렌징 티슈와 선배가 준 클렌징 오일로 대충 닦아내고 잠들었다. 화장을 하고, 고치고, 지우고...이 귀찮은 일은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마지막 날 - 화장을 위해 안경을 벗다

기자는 화장 마지막 날, 전날 산행을 했던지라 이날은 오후 1시까지 출근했다. 다행히 여유롭게 일어나 화장을 할 수 있었다. 화장을 하고 안경을 쓰면 안경이 닿는 부분을 더 신경 써야 하고, 또 눈이 작아 보인다는 등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한다는 선배들의 말에 이날은 안경을 포기하고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기로 했다.

회사에 도착해 문을 열자마자 한 선배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남자가 풀메이크업한 모습이 많이 어색해서 그런 것 같다. 여성이 남성처럼 안경을 쓰고 노메이크업으로 회사를 나온다면, 그야말로 다른 의미의 ‘부담스럽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기자가 렌즈를 착용하고 출근하는 모습(왼쪽)과 애인을 만나 화장을 고치는 모습(오른쪽) ⓒ투데이신문
기자가 렌즈를 착용하고 출근하는 모습(왼쪽)과 애인을 만나 화장을 고치는 모습(오른쪽) ⓒ투데이신문

이날은 퇴근 후 애인을 만났다. 애인은 화장을 잘 한다며 칭찬했다. 애인과 저녁으로 매운 갈비찜을 먹었는데, 땀이 많이 나 화장을 새로 해야 했다. 저녁을 먹은 뒤 카페에 앉아 화장을 고쳤다.

기자가 화장품을 꺼내기 시작하니 옆 테이블에 앉은 남성들이 기자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화장을 시작하니 카페 직원들도 지나가며 기자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애인은 기자에게 화장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물었다. 기자는 ‘화장하기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애인도 기자에게 “맞다. 일찍 나가야 하는 날이나 아픈 날은 화장하려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외모 지적은 돈 주고 하세요

집으로 돌아와 화장을 지우며 ‘남성이 화장하면 이상하다’, ‘여성은 화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봤다. 기자가 화장하고 다니던 중 느꼈던 사람들의 시선과 ‘성소수자인 줄 알았다’는 말. 여성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화장을 선택한다면 남성도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남성이 ‘귀찮다’, ‘돈이 든다’거나 ‘피부 건강’을 이유로 화장을 하지 않는다면 여성도 같은 이유로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계속 화장을 한다면 어떨까’ 생각하니 화장품 가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09년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와 리서치 전문기관 엠브레인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만 19~49세 여성 10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화장품 로드숍에서 구입에 쓰는 비용은 월평균 3만130원이라고 한다.

단순히 계산해도 1년에 30만 원 이상을 쓰는 것이다. 또 백화점이나 전문매장에서 구매하는 경우 더 많은 돈이 들 것이다. 또 화장을 지우기 위해 클렌징 오일, 클렌징 티슈, 화장솜도 사야한다. 그만큼 화장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기자가 이번 체험에 사용한 화장품 ⓒ투데이신문
기자가 이번 체험에 사용한 화장품 ⓒ투데이신문

명절마다 SNS 등 온라인에서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 회자된다. 이 메뉴판에는 ‘대학 어디 지원할 거니: 5만원’, ‘애인은 있니? 연애 좀 해야지: 10만원’ 등의 가격표가 붙어있다. 기자는 화장을 하면서 ‘외모 지적 메뉴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 좀 진하게/연하게 해: 5만원’, ‘평소에 화장 좀 하고 다녀: 10만원’ 정도면 적당한 가격일까. 화장품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니 말이다. 어디 돈만 필요한가. 화장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을 찾으려면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기자가 이번 체험을 시작하기 전 가장 걱정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화장을 해보니 화장에 들이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수시로 화장을 신경 쓰고 고치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었다. 땀이 나거나 가려울 때 손을 대는 것도 주의해야 했다.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자는 화장하는 고충을 10분의 1도 체험하지 못한 것 같다. 남성이 여성의 생활을 따라 한다고 해서 사회적인 압박까지 경험할 수는 없었다. 이번 체험의 분명한 한계점이었다.

만약 화장이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화장을 하려는 여성들을 억압하고 ‘어디 여자가 화장을 하느냐’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가정이지만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 글을 읽는 남성들은 화장과 같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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