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이미지뱅크

재개발과 재건축은 사실상 국내 건설산업과 부동산 시장을 이끄는 핵심으로 부상했다. 돈과 관심 만큼 기대와 희망이 몰리는 시장이다. 그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다. 최근 이슈를 통해 현재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들여다 봤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내로남불’.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정치권에서나 들어볼 만한 유행어가 건설업계에서도 돌고 있다. 이사비 이슈와 관련한 최근 GS건설을 두고 업계에서 돌고 있는 말이다.

발단은 경기도 수원지역 최대 재건축 사업인 ‘영통2구역(매탄주공 4‧5단지)’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서가 제출되면서부터다.

GS건설은 현대산업개발과 컨소시엄을 꾸려 롯데건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입찰제안서 롯데건설은 가구당 무상으로 이사비 500만원을 지원하고 500만원은 대여해주겠는 내용을 담아 냈다. 여기에 GS건설은 아예 가구당 이사비 1000만원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고 제안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최근 정부가 재건축 시장에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수주 비리를 막겠다고 개선방안을 내놓은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고액 이사비를 제안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이사비는 조합원 이주를 위해 돌려받을 목적으로 지급되는 이주비와 달리 시공사가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보니 조합 지지를 얻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국토부는 지난 10월 30일 시공과 관련 없는 이사비·이주비·이주촉진비를 제안할 수 없도록 한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기준’ 고시 개정안을 내놨다. 개정안은 종전처럼 재건축 조합원은 금융기관을 통한 이주비 대출만 가능토록했다. 이사비 지급되더라도 조합이 자체적으로 정비사업비에서 지원할 수 있다. 서울시도 토지보상법(84㎡ 기준, 약 150만원) 수준으로 지원하도록 관련 규정 개정 추진하고 있다. 국토부 개정안이 행정예고 단계로 아직 시행되지 않았고 사업지가 경기도인 만큼 서울시 규정에서도 자유롭다. 위법이라고 볼 순 없지만 정부 방침을 역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GS건설의 이번 이사비 제안은 얼마전 건설사들이 스스로 선언한 자정 결의도 무색케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주택협회 회원사인 25개 중대형 건설사들은 지난 10월 17일 ‘도시정비사업 공정경쟁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과도한 이사비나 이주비 등 양적 경쟁을 중단하자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당시 결의문 명단에 GS건설은 없었다.

과도한 이사비 제한 방침 역행 논란

이사비 제안과 관련해 유독 GS건설에 따가운 시선이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과도한 이사비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GS건설의 보여온 태도와 무관치 않다.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려보자. 지난 9월. 반포주공1단지의 재건축 수주건은 무상으로 지급되는 7000만원 이사비 문제로 시끄러웠다. 수주전에 참전했던 현대건설이 과도한 이사비를 제안해 경쟁 질서를 어지렵힌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사비 7000만원은 사회통념상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 이사비 금액을 훨씬 초과하는 과다한 금액으로 ‘이주비 지원’의 범위를 넘어선 위법행위인데다 이사비는 결국 공사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재건축 사업과 조합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한 이른바 고발자는 GS건설이었다. 당시 현대건설과 이사비 정당성 문제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반면 이사비 지원을 내걸었던 현대건설 측은 ‘입찰제안서에 이사비 지원 계획을 공식적으로 넣었고, 조합 입찰 지침에도 이사비를 자율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어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 지난 9월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고액 이사비 논란이 촉발됐던 반포주공 1단지 ⓒ뉴시스

무색해진 ‘이사비 적폐 척결’ 아이콘

당시 반포주공1단지 수주 경쟁은 이례적으로 시공사 선정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양사 건설사 사장까지 나서 설전을 벌이는 등 진흙탕 싸움으로 묘사될 만큼 치열한 혈전이었다.

GS건설의 화두는 과도한 이사비였다. GS건설의 경우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입찰에 참여할 당시 ‘도시정비 영업의 질서 회복을 위한 GS건설의 선언’이라는 자정 결의문을 배포하고 “사회적 상식에 반하는 마케팅과 현혹적인 조건 제시 등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GS건설의 강경한 이사비 문제 제기에도 수주는 현대건설로 돌아갔다. GS건설은 고배를 마셨지만 GS건설이 제기한 과도한 이사비 문제가 공론화 됐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GS건설은 서초 한신4지구, 잠실 미성·크로바에서 자체적으로 ‘불법 매표 시도 근절을 위한 신고센터’를 운영하면서 한신4지구 재건축 수주전에서 경쟁사인 롯데건설이 25건의 금품·향응을 제공한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건설사들의 재건축 비리 수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업자 저격도 마다하지 않던 GS건설은 ‘클린 수주전’을 위한 투사같았다.

그렇다 보니 GS건설이 사정에 따라 ‘클린수주’와 관련한 입장을 번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따라 붙게 된 것이다. GS건설의 이사비와 관련해 내로남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 부산지역 재개발 사업지(우동3구역) 수주전에서 5000만원의 이사비 지급을 제안했던 GS건설이 이사비 지급 문제를 가지고 논할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인 바 있다. 당시 이와 관련해 무이자로 지급되는 사업비로 반환을 전제로 한 이주비 4000만원이 포함된 것으로 무상 지급되는 이사비는 1000만원에 불과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GS건설 측은 “이사비 제안은 사업 지역 환경 따라 결정된다”고 밝혔다.

GS건설 “문제는 이사비가 아니라 규정”

이번에도 GS건설 측은 이사비 지급 문제와 관련해 규정 여부에 따른 판단일 뿐 ‘클린 수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GS건설 관계자는 “이사비 1000만원 이하라는 조합에서 제시한 입찰 기준에 따라 제안한 것”이라며 “이사비 지급이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이사비에 대한 정부 기준이 명확해지면 변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반포1주공의 경우 이 같은 기준이 없었다. 무제한이었기 때문에 이사비에 대한 과도한 경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 영통2구역의 경우 조합에서 기준을 정했기 때문에 고액 이사비로 인한 과도한 경쟁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GS건설의 달라진 제안은 이사비 지급에 대한 기준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사비 지급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고 다만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경쟁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GS건설은 화살을 제도의 미비로 돌렸다. GS건설 관계자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사업자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사비에 대한 조합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며 “문제는 제도적으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사비 상한선 등 구체적인 제재 기준이 마련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비 자체를 금지하는 정부 정책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보탰다.

GS건설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건설업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경쟁업체 비리를 폭로하면서 까지 건설업 폐단 척결 목소리를 높였던 GS건설이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쉬이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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