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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종이통장이 사라진다”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기자의 부모님은 폰뱅킹을 이용하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한 번씩 통장정리를 하기 위해 은행을 찾는다. 핸드폰을 통해서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통장에 찍힌 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비단 기자의 부모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금융서비스에 디지털 혁신 바람이 일면서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등 편리함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금융 확산에 따른 부정적인 측면도 지적되고 있다. 오프라인 지점이 축소하고 종이통장이 사라지는 등 은행권의 변화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2020년까지 종이통장 단계적 폐지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015년 ‘통장기반 금융거래 관행 혁신방안’을 발표, 오는 2020년까지 종이통장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올 9월부터 전국은행 창구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종이통장 발급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또한 2020년 9월부터는 종이통장 미발급을 의무화하고 신규 계좌를 개설 할 때 종이통장을 만들 경우 고객은 5000원~1만8000원의 종이통장 발행 원가 중 일부를 발급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은행권 전반적으로 종이통장 발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예·적금 계좌의 약 90%에 해당하는 10종의 예·적금 상품에 대해 종이통장을 발급하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은행권에서는 종이통장 없는 비대면 계좌를 개설하는 고객에게 이체수수료 면제, 우대금리 등의 혜택을 주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신한은행의 ‘신한S통장지갑’, 우리은행의 ‘위비톡예금’, NH농협은행의 ‘e-금리우대적금’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KB국민은행도 적립식 예금과 거치식 예금을 신규로 가입할 경우 종이통장 발행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까지 얘기하긴 어렵지만 최근 종이통장 발행이 줄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은행들이 종이통장을 없애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용 절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종이통장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통장을 만들 때 쓰이는 종이 가격, 디자인 가격, 배송 가격, 보관 가격 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은행들의 계산인 셈이다. 또한 종이통장의 관리에 필수인 점포 운영, 이에 투입되는 인력 등에 투입되는 비용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은행들이 강조하는 대포통장이나 통장분실로 인한 도용 피해와 같은 금융사고 예방 효과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종이통장 미발행은) 금감원에서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사업으로 금융사의 비용 감면이란 부분도 있지만 제일 큰 목적은 금융소비자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취지”라며 “거래 없이 방치중인 다수의 통장을 정리하고 통장들이 금융사기에 악용되는 것을 막고 통장 분실 시 창구에 와서 통장 재발행하고 출금해야하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모바일뱅킹 이용 저조…디지털 소외계층 불편 우려

문제는 고령층 등 디지털 금융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의 금융소외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종이통장을 발급받지 않더라도 전자통장과 예금증서를 발행해주기 때문에 고객은 인터넷뱅킹 등을 통해 언제든지 거래내역을 조회할 수 있다. 그러나 “종이통장이 사라지면 불안할 것 같다”, “은행 컴퓨터에서 거래 내역이 지워지면 어떡하냐, 통장이 증거가 되는데 없어지면 안된다” 등 종이통장 폐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고령층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예외적으로 60대 이상의 고령층 경우에는 종이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러나 종이통장을 발급받지 않은 고객에게 주는 금리우대와 같은 혜택은 누릴 수 없어 불만이 예상된다.

또한 고령층뿐만 아니라 장애인, 저소득층도 마찬가지로 모바일, 인터넷 뱅킹 등 디지털 거래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저학력, 저소득층일수록 모바일뱅킹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16년6~7월 전국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대면조사를 실시한 결과 작년 기준 최근 6개월 내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이 43.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스마트폰 등 기기를 통해 계좌잔액조회, 계좌이체 등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최종 학력이 낮을수록 두드러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모바일결제 서비스 이용비율을 학력별로 살펴보면 한은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대학원 이상 61.2%, 대졸 56.5%, 고졸 37.7%, 중졸 이하 4.6%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득이 낮을수록 모바일금융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입출금내역, 자동이체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자산관리를 위한 모바일 부가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연간 2000만원 미만 소득자 12.8%, 2000~3000만원 소득자 26.8%, 3000~4000만원 소득자 32.3%, 6000만원 이상 소득자 46.6% 등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알림 서비스 이용비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종이통장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통장정리를 대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서비스인 만큼 소득에 따라 이용률 차이를 보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종이통장 보다 효율성이 높은 금융서비스로의 유도라고는 하지만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디지털 금융 문화가 익숙지 않은 금융소비자에게는 사실상 강제로 비춰질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은행권 관계자는 “‘통장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고객은 수수료를 내고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고객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금융소외계층 위한 디지털 서비스 개발 힘써야”

일각에서는 금융회사가 금융소외계층을 위한 디지털 서비스 개발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대표는 “모바일 거래가 확대되면서 은행들이 디지털 금융 업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디지털 금융이 낯선 금융소외자들은 역차별을 받는 꼴”이라며 “디지털 금융소외자들이 겪는 불편을 어떻게 최소화 할 것인가에 대해 금융회사가 고민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금융이라는 건 소외계층에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기에 공동연구를 통해서 단순화, 간소화한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해 디지털 금융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금융이 대세인 것은 현실이다. 이에 초점을 맞추고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거스를 순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일각에서는 디지털이 어려운 금융소외계층이 존재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배려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금융소외계층이 차별받지 않고 함께 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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