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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리본이 말하다⑥] 노란리본공작소 봉사자들 “더 나은 세상 물려주려 노란리본 만들어요”[특별 인터뷰] 광화문 노란리본공작소 자원봉사자들
김태규 기자  |  ssagazi@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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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8  10: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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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데이신문

봉사자, “행동으로 옮기는 깨어있는 양심”
시민후원만으로 운영되는 ‘자발적 모임’

촛불집회·세월호 인양 등 ‘봉사 계기’
노란리본과 함께 ‘주황리본’ 만들기도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길을 걷다보면 가방이나 옷에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노란리본은 어느덧 모두가 공유하는 ‘연대의 상징’이 됐다.

거리에서 무심코 마주치는 노란리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다. 일상에서도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고 다니는 이 노란리본은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고 있을까.

<투데이신문>은 지난 2일 광화문광장에 위치한 노란리본공작소(이하 공작소)에서 공작소 김현성(여) 회계와 자원봉사자 고희정(가명·여)씨와 전길호(남)씨를 만나 노란리본공작소에 대한 설명과 세월호참사에 대한 생각,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 등을 들어봤다.

   
▲ ⓒ투데이신문

Q.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고희정(이하 고) 전북 군산에 살다보니 광화문 광장에 올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촛불집회를 통해 광화문 광장에 오게 됐는데 이곳에 공작소가 있었다. 세월호참사로 너무 가슴 아팠지만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미 여기선 시민들이 모여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23차 촛불집회를 모두 참여하면서 이를 계기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나름 시간을 내서 매주 토요일 첫차를 타고 올라와 막차를 타고 내려간다.

전길호(이하 전) 이곳에서 봉사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지난해 민중총궐기에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보다가 광화문 공작소를 보고 참여하게 됐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내가 행동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세 명 있는데 각각 9살과 8살, 그리고 6살이다.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Q. 한 주 공작소에서 보내는 시간은.

 토요일은 최대한 나오려고 한다. 평일 중에는 하루 이틀 정도 나온다. 요즘엔 일이 바빠 주말에만 나오고 있다.

Q. 지금도 노란리본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지.

김현성(이하 김) 노란리본 수요가 가장 급증했던 시기는 매주 100만 인파가 모이던 지난해 민중총궐기 기간이었다. 광화문 공작소에서는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하루 1000여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봉사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하루에 몇만개씩 생산하게 됐다. 이후 세월호가 인양되고 세월호참사 3주기를 맞으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다시 한번 고조돼 리본이 부족해서 보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물량이 많이 나갔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이루고 난 다음에 국민들이 ‘이제 다 된 거 아닌가’라는 마음을 가져서 그런지 지금은 리본 수요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 노란리본공작소에서 고씨가 리본을 만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곳, ‘노란리본공작소’

Q. 공작소는 어떻게 시작됐는지.

 세월호참사 당시 광화문에서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시민들이 동조단식에 참여하면서 이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노란리본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광장을 지나던 시민들이 하나둘씩 노란리본 만들기에 동참하면서 자리를 잡게 됐다. 이후 천막과 분향소가 설치됐는데 노란리본공작소는 천막을 배정 받지 못해서 비닐 텐트를 치고 작업했다. 분향소, 진실마중대 등은 4·16연대에 소속돼 같이 활동하고 있지만 노란리본공작소는 아무런 단체나 조직 없이 시민들이 나와서 그냥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부스를 배정받아서 활동하고 있지만 노란리본공작소는 어떤 단체나 외부의 지원 없이 오로지 시민들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Q. 후원으로 운영하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는지.

 노란리본 공작소에는 후원금 통을 구비하고 있지 않다. 노란리본을 판매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두지 않은 것이다. 봉사자들이 푼돈을 모아가면서, 주변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모아 와서 운영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후원금을 모으기도 한다. 실제로 10월 초에는 후원금 잔고가 0원이 될 뻔해 광화문 공작소 문을 닫을 뻔 했다. 그래서 시민들께 ‘상황이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더니 후원금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해 기사회생 했다. 이렇게 시민들이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매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입금 내역과 사용 내역, 잔고 등을 영수증까지 첨부해 공개한다.

Q. ‘노란리본공작소’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공작소(工作所)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만드는 장소’를 뜻하는 것이다. 특정한 단체가 아닌 시민들이 모이는 ‘장소’를 나타낸 것이다. 시민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리본을 만드는 곳을 말한다.

Q. 노란리본공작소가 전국에 퍼져 있는 것으로 안다.

 지역별로 다른데, 이 중 광화문 공작소와 연계된 곳도 있다. 노란리본을 만드는 재료를 맞추기가 어렵다는 곳에는 재료를 재단해 보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용인과 수원 영통 공작소다. 이런 곳은 광화문 공작소와 똑같은 규격의 노란리본을 만든다. 또 자체적으로 재료 조달이 가능한 전주, 청주, 안양, 군포, 서울 서촌 공작소 등 많은 지역단위에서 운영하고 있다.

   
▲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 노란리본공작소에서 김현성씨가 노란리본을 만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Q. 노란리본공작소가 세월호참사를 알리고 진상규명을 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광화문 뿐 아니라 수원 영통 공작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수원에서는 영통 공작소를 시작으로 4개의 공작소가 생겼다. 공작소 활동이 확장되고 지역단위별로 뿌리 깊게 자리매김하면서 아파트 단지나 관공서 등에 노란리본을 놓기도 한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전국에서 노란리본공작소 활동이 이어져 미처 조달하지 못하는 수요를 채워해주기도 하고 지역별 나눔을 실천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시민들이 자칫 잊을 수 있는 기억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Q. 이곳에 노란리본공작소가 만들어진 지도 3년이 지났다.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이 길어질 것을 예상했는지.

 사실 처음엔 희생자들의 시신을 찾고 해서 세월호가 빨리 인양되고 수습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인양상황이 점점 지연되는 것을 보고 ‘아 길어지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3년이 넘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Q. 언론의 세월호참사 보도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당시 종편채널이 편성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종편에서 세월호참사를 유병언과 연관해 3개월간 하루 종일 집중적으로 다뤘다. 세월호참사의 원인을 보도하기보다 유병언의 사망사건에 초점을 맞추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3개월간 보수언론은 진상규명을 위한 보도가 아닌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기 위한 방송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Q. 지난 3년간 진상규명의 진척이 없다가 11월 25일 ‘사회적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등 이제야 실마리가 풀릴 기미가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희망적으로 본다. 1기 특조위는 지난 정권의 방해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촛불 시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과 적폐청산 등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의지가 강하다. 또 여야가 4명씩 추천하고 국회의장이 추천한 1명의 위원으로 특조위가 구성된다. 이렇게 볼 때 2기 특조위는 반드시 진상규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 노란리본공작소에서 전길호씨가 주황리본을 만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파랑리본·주황리본도 만들어…사회 문제 연대

Q. 최근 ‘주황리본’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황리본의 의미는.

 사실 노란리본공작소는 노란리본 뿐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리본을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사드배치 반대를 상징하는 파란리본을 만들기도 했었다.

주황리본의 경우 올해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던 날 남대서양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사고가 난 지역에 구조선을 보내 수색작업을 했다면 구조됐을 거라고 예상되는 선원들의 실종 소식이 사고가 난 지 한참 뒤에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를 어떻게 알려야 국민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께서 선원들이 타고 있을 구명벌이 오렌지색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상징성을 위해 주황색 리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지역으로 리본을 보낼 때 주황리본을 함께 보내며 설명하기도 하고 실종자 가족들이 서명을 받을 때 도와드리기도 한다.

Q. 초기에는 천으로 된 리본을 나눠준 것으로 안다. 노란리본의 변천사를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처음엔 노란리본을 대량생산한다기보다는 지나가는 시민들이나 세월호 희생자들의 생환을 기원하며 만들었기 때문에 순수한 ‘리본’의 의미로 천으로 만들었다. 현재의 재질(EVA)은 노란리본을 찾는 시민들이 많아지면서 빠른 생산을 위해 바꾼 것이다. 광화문 공작소에서는 노란리본을 규격화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각 지역의 노란리본을 모아보면 모양이나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광화문 공작소는 재료를 한 곳에서 조달받아 쓰기 때문에 거의 일정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재질과 두께가 조금 다르다.

Q. 공작소 봉사자 수는 얼마나 되는지.

 본인 일정이나 거리상의 문제로 정기적인 봉사를 하지 못하는 분들의 경우 50~60명 정도 된다. 매주 오시는 분들도 많다. 주말 저녁시간 같은 경우는 20명 정도 모인다. 평일은 요일별로 시간이 되는 분들이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Q. 여태까지 광화문 공작소에서 만든 노란리본의 개수는 대략 얼마나 되는지.

 올해 하반기에 회계 업무를 맡게 됐는데, 업무 중 가장 힘든 것이 노란리본을 거는 10cm짜리 군번줄 구입비용을 조달하는 것이다. 단가가 높아서 지출이 가장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회계 업무를 맡은 기간만 보면 군번줄이 한 달에 대략 15만개 정도 나간다. 주문 수량이 밀려들 때는 매주 5만개씩 한 달에 20만개 정도 쓰기도 했다. 세월호 인양·참사 3주기·촛불집회가 있던 상반기에는 하반기의 두 배가 필요했다고 보면 된다. 지난 1년간은 군번줄 비용 조달과의 전쟁이었다.(웃음) 요즘처럼 주문수량이 줄었을 때는 한 달에 10만개 정도 쓴다.  수치상으로 헤아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Q. 세월호가 인양되던 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어이가 없었다. 인양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올리지 않았나. 이렇게 금방 될 것을 이전 정권에서는 왜 3년 동안 묵혀놨을까. 의도적으로 인양을 지연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Q. 지난 정권에서는 진상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 변화를 실감하는지.

 박근혜 정권에서는 지상파는 물론 종편까지 더해져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더 힘을 받았다. 유가족과 진보성향 시민들의 주장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언론이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다행히 현 정부는 진상규명의지가 강해 진상규명이 될 것이다.

 이번 정부는 일단 뭐라도 추진을 하려고 하니까, 특조위도 마찬가지고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고 조금씩 진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부가 뭘 할 수 있었겠나. 현재는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의 요구가 이뤄지도록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켜볼 건 더 지켜보고, 그리고 나서도 안 된다면 다시 국민들이 움직여야겠지만 지금 해나가는 게 틀린 길이 아니라고 본다. 아직은 잘 하고 있다고 본다.

   
▲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 노란리본공작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리본을 만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사회적참사 해결의 ‘시작’

Q. 노란리본은 나에게 OO이다. 간단히 표현한다면.

 노란리본은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노란리본은 결국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기틀’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세월호참사가 제대로 규명돼야 다른 참사들도 규명될 수 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후손들도 노란리본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Q.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부라기보다는 생각을 말하자면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는 시민들이 다른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더 참여하면 좋겠다.

 우리 후손들에게 좀 더 안전한 나라를 물려줄 수 있도록 노란리본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세월호참사로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음에도 3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돼야 삼성 반도체 노동자 집단 백혈병 발병 사건,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때문에 세월호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행히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진상규명 의지를 가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온 국민이 힘을 합해야 된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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