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주도 의혹

▲ 지난 2013년 9월 2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범국민대회’ ⓒ뉴시스

“우리 사람 철저히 가려 뽑아야”
MB, 여론 조작에 직접 개입했나

최측근 김태효에 집중하는 검찰
청와대-국방부 연결고리 밝히나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18대 대선을 코앞에 둔 2012년 12월 11일, 국가정보원 여직원 ‘셀프감금’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18대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한 비방글을 올리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면서 벌어진 이 사건으로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때 시작된 수사는 수많은 의혹과 함께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그렇게 4년이 흐르고 정권은 바뀌었다. 그리고 MB정부 초기인 2009년부터 시작된 ‘국정원-사이버사령부 여론 조작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처럼 지난 2009~2012년 대선까지 MB정부 당시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가 저지른 일련의 여론 조작 사건이 드러나면서 이 전 대통령이 이를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드러난 국정원 여론 조작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국정원 적폐청산TF와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댓글사건 재조사TF(재조사TF), 검찰의 조사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정원 적폐청산TF에 따르면 지난 2009년 5월 국정원이 심리전단 산하에 아고라 대응팀 9개로 사이버 외곽팀을 조직했고, 지속적인 확대 끝에 2011년 1월에는 24개 팀을 운영했다.

이어 트위터 담당팀, 민간인팀까지 추가로 확인되면서 현재 밝혀진 팀은 48개에 달한다.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에는 3500여명의 민간인이 사이버 외곽팀에서 활동했으며 이들 팀에는 2012년 기준 3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들은 주요 언론사 인터넷사이트의 정치 기사에 집중적으로 댓글을 달거나 SNS를 통해 여론조작용 글을 유포하는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시 국정원은 특수활동비를 이용,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응방향 등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도 파악됐다.

▲ 지난 2010년 12월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김관진 국방부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사이버사·기무사도 여론조작

국정원에 대한 적폐청산TF의 조사가 이어지면서 사이버사가 여론 조작 사건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함께 기무사도 2008~2010년까지 사이버첩보수집팀에서 ‘스파르타’라는 댓글부대를 운영해 여론 조작 활동을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재조사TF에 따르면 사이버사 530심리전단은 KJCCS(한국군 합동 지휘통제체계)와 국방망을 이용해 청와대 국방비서관실, 경호상황실, 국가위기상황센터 등으로 보고했다.

보고된 문건은 일일 국내외 사이버 동향보고서와 사이버대응작전결과보고서 등으로 동향보고서에는 일부 정치인, 연예인 등에 대한 동향과 SNS 동향과 4.27 재보궐선거 당선 결과와 광우병 촛불시위 관련 동향 보고 등이, 대응작전결과보고서에는 천안함 폭침사건, G20 정상회담 홍보, FTA 협상지지 여론조성 등에 대한 댓글 대응 내용이 포함됐다.

더불어 사이버사가 댓글뿐 아니라 일부 연예인과 정치인을 희화화하고 김 전 장관을 영웅시하는 그림 등 이미지 합성비방물을 제작한 사실도 발견됐다.

또 사이버사가 2012년 5월 14일~2014년 4월 25일까지 ‘포인트뉴스’라는 인터넷매체를 설립해 운영했으며, 운영예산은 국정원의 승인 하에 군사정보활동비에서 충당한 사실도 드러났다.

기무사에서도 현재까지 470여명의 부대원들이 댓글활동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이나 친척 등의 명의로 계정을 만들어 댓글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과거 사이버사의 대선개입 의혹 수사와 관련해 해당 의혹을 축소하려 한 시도도 확인됐다. 재조사TF는 당시 조사본부 수사팀 관계자가 대선개입 지시여부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려던 헌병 수사관에게 ‘왜 대선개입 수사를 하냐’며 질책했고 해당 수사관은 이후 댓글사건 수사본부에서 제외된 사실도 파악했다.

또 재조사TF는 김 전 장관에게 530단 상황일지와 대응결과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서들이 보고됐다는 진술을 확인했으며, ‘2012년 사이버 심리전 작전지침’, ‘북한·종북 세력의 선거개입에 대응하기 위한 심리전 작전지침’ 등에 김 전 장관의 결재가 돼 있는 사실도 파악했다.

이처럼 국정원과 사이버사, 기무사 등 국가기관은 철저하게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작전을 벌여왔다. 이를 통해 MB정부는 선거 등 정치적 이벤트나 FTA 협상 등 국가적 중대사와 관련해 우호적인 여론 형성을 꾀했다.

이 과정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종북·좌파로 매도, 뿌리 깊은 레드콤플렉스를 자극하며 적으로 몰았다. 결국 그들이 이런 수고를 들여가면서 만들려했던 세상은 정권과 대치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오로지 정권이 듣고 싶은 우호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세상이었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지난 13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뉴시스

MB 향하는 검찰

사이버사 댓글 공작을 주도한 혐의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의 구속까지 거침없이 향한 검찰의 칼날은 각각 지난 11월 23일, 24일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이 잇따라 석방되면서 벽에 부딪혔다.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사이버사령부 관련 BH(Blue House, 청와대) 협조 회의 결과’ 문건을 공개하고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의 요청으로 사이버사령부 전력 증강 및 작전임무 관련 회의결과 보고라고 명시돼 있다며 사이버사령부 선거 개입 댓글공작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3월 10일 작성된 해당 문건에는 이례적 채용으로 논란이 됐던 2012년 사이버사령부 군무원 선발과 관련해 군무원 순수 증편은 기재부 검토 사항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시라며 ‘대통령께서 두 차례 지시하신 사항’이라고 강조돼 있다.

또 청와대가 사이버사령부에 한미FTA, 제주 해군기지, 탈북자 인권 유린 등을 예로 들며 국내 주요 이슈에 대해 집중 대응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의원은 해당 문건의 향후 추진 계획에는 19대 총선을 꼭 한달 앞둔 2012년 3월 12일 ‘총력 대응 체제 전환’이라고 돼 있는 부분을 지적하며 사이버사령부가 선거 개입 여론전에 깊게 관여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재조사TF도 KJCCS에서 발견한 530단의 청와대 보고문서에서 ‘VIP 강조사항’이란 문구와 함께 ‘우리 사람을 철저하게 가려 뽑아야 한다’고 적힌 국방부 내부 문건을 확보하며 이 전 대통령의 직접 개입 여부가 다시 주목받았다.

이에 대해 김 전 장관은 11월 9일 검찰 조사에서 ‘우리 사람’을 뽑으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건 사실이라면서도 대북 사이버전 수행에 적합한 국가관이 투철한 인물을 가려 뽑으라는 취지로 이해했으며 자신도 구체적으로 차별적인 선발을 지시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의 석방에 잠시 주춤했던 검찰 수사는 MB정부 당시 청와대를 계속 향하고 있다. 검찰은 11월 28일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과 관련해 청와대와 국방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김태효 전 대외전략기획관의 사무실 등에 압수수색을 벌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결국 기각됐다.

핵심 인물들에 대한 구속수사는 어려워졌지만 검찰의 칼날이 계속 MB정부 당시 청와대를 향하고 있는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의 직접 개입 여부는 아직 의혹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태효 전 대외전략기획관에 대한 수사가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사이버사의 여론 조작을 주도했는지까지 연결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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