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애인 인권 활동가 시각장애인 박승규

▲ 시각장애인 박승규씨 ⓒ투데이신문

멀티플렉스 상대 차별구제청구소송 승소
일상서 장애인 차별 만연…인식 개선 더뎌

“한국은 장애인 살기 어려운 나라”
정부서 장애인 자립 적극 지원해야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세대를 불문하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예술 장르를 꼽는다면 영화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영화 관람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시청각 장애인들은 상영관을 찾아 영화를 보는 일이 버겁기만 하다. 영화 상영정보를 확인하고 예매하기 위해 멀티플렉스의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야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는 제공되고 있지 않다. 또 영화를 관람할 때도 시각장애인의 경우 음성 화면해설이 필요하고, 청각장애인의 경우 모든 대사, 음향 등을 자막처리 해야 영화를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러한 서비스는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멀티플렉스 사업자들은 월 1회 ‘장애인 영화관람의 날’을 정해 ‘배리어프리(Barrier free·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등 소리정보를 알려주는 한글자막을 제공하는 영화)’ 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나 전국에서 한 달 80여회 정도 수준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영화 선택의 폭이 좁아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향유권(享有權)이 제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최근 시청각 장애인 4명이 CJ CGV·롯데쇼핑(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를 상대로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8일 이번 차별구제청구 소송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박승규(36)씨를 만나 소송을 진행하게 된 배경과 일상에서 겪는 차별에 대해 들어봤다.

▲ 시각장애인 박승규씨 ⓒ투데이신문

Q.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시각장애 3급, 저시력 장애 당사자다.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고, 안경을 쓰고 있지만 교정시력이 0.1을 넘지 못한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분은 시력은 괜찮은데 시야가 굉장히 좁기도 하고, 나 같은 경우는 시야는 괜찮은데 시력이 굉장히 낮다. 밝은 공간에서는 사물의 대략적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인데 어두운 공간에서는 활동이 제한적일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다.

Q. 이번 소송을 진행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시각장애인으로서 영화관을 이용하기가 매우 힘들다. 나는 그래도 앞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집에서 영화를 볼 수는 있다. 집에서 영화를 볼 경우에는 모니터를 굉장히 가까이 두고 본다거나, 화면을 밝게 하고 자막 크기를 크게 하는 등 내게 편한 환경을 만들어 볼 수는 있지만, 영화관은 그렇지 않다.

상영관의 스크린은 TV나 모니터보다 어둡게 보여 장면 자체가 어두운 화면이면 아예 인식을 할 수 없다. 또 전맹(全盲) 시각장애인 같은 경우는 화면 자체를 볼 수 없기에 스크린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음성으로 지원돼야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의 특성상 귀로 모든 정보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멀티플렉스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장애정도나 특성을 고려해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를 전혀 제공하지 않아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

Q. 소송 진행과정에서 중간에 청구취지가 변경됐는데.

당초 모든 영화에 대해 음성화면해설, 한국수어통역 등을 제공해달라고 청구했으나 멀티플렉스 3사의 법률 대리인단이 ‘우리에겐 너무 과도한 부담이다’라고 주장했다. 장애인들을 위해 음성화면해설이나 수어 등을 제공하는 것은 영화관이 아닌 영화 제작사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음성이나 자막 화면해설을 제공하는 영화에 한해서라도 제공을 하라고 취지를 변경하게 됐다. 이렇게만 해도 훨씬 영화 관람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지 않겠나 생각했다.

▲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박승규씨 등 원고와 시청각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이 시청각 장애인 영화관람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에서 승소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Q. 이번 승소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

사실 시각장애인들은 외국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외국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나마 듣고 이해할 수 있는 한국영화를 보는 것이다. 반대로 청각장애인들은 한국영화를 보지 않는다. 자막이 없는 한국영화와 달리 외국영화의 경우 자막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청각 장애인들은 영화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다. 그런데도 영화관은 ‘이미 영화관사업자로서 제공할 수 있는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영화 제작사나 배급사가 화면해설, 자막 등을 만들어 제공한다고 해도 영화관은 이를 제공할 수 있는 기기 등을 제대로 구비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미 기기들은 개발돼서 도입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피고들이 이 기기들을 구비하지 못할 만큼 수익이 없는 곳도 아닌데 이를 과도한 부담이라고 주장한다면 장애인을 전혀 고객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승소로 장애인 당사자들의 원활한 영화 관람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갖춰졌다. 영화관이 이를 갖춰야 하는 의무가 생긴 것이기에 관람환경이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서 비롯된 혐오

Q.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차별이 있다면.

나는 흰지팡이(도로교통법 11조는 시각장애인이 흰색 지팡이를 사용하도록 규정. 세계적으로도 흰색으로 통용)를 쓰지 않아 겉으로 보기에는 시각장애인이라는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한 점이 있었다. 초·중학교 시절은 어머니께서 학년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가 ‘애가 시력이 나쁘니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선생님을 설득했지만 몇몇 선생님들은 이를 무시하고 키가 크다는 이유로 뒷자리에 앉혔다. 고등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필기를 할 수 없어 나중에 친구 공책을 빌려 베끼려고 했는데 필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혼나야 했다. 어떤 선생님은 “이게 뭐가 안보여? 더 크게 써줘야 되나?”라며 비꼬기도 했다.

대학에서도 교수가 작은 글씨로 된 자료를 주고 ‘언제까지 레포트를 써 와라’고 하기에 큰 글자로 된 자료를 요구하고 활자를 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기한을 늘려달라고 했으나 교수는 자료제공도 하지 않고 기간도 비장애인 학생과 똑같이 했다. 정당한 편의를 요구함에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대학 입학 후 학과 사무실에서 조교, 선배들과 자주 대화를 나눴는데, 어느 날 처음 보는 선배가 사무실에 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시각장애인이라고 밝혔는데 그 선배가 ‘야, 그럼 이마에다 시각장애인이라고 써 붙이고 다녀야겠네’라고 말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굉장한 차별적 발언이고 비하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학교생활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제제기도 못했다.

▲ 시각장애인 박승규씨가 업무를 위해 컴퓨터 모니터로 문서를 확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Q.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차별이 있다면

사실 장애인들은 취업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열심히 노력해 나름 대기업에 취업했다.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의 기업은 장애인을 고용할 의무가 있는 덕분이다. 그런데 저시력 장애인이 일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 사항(인적, 물적 지원)이 있지만 이를 전혀 지원해주지 않아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나왔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은 장애인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들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저 장애인 채용이 의무사항이기에 그저 뽑아두기만 하는 것이다. 장애인이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르겠으니 알아서 살 길 찾으라’는 식이다.

Q. 일상에서 겪는 불편이 있다면.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익숙한 곳을 주로 다니려고 한다. 이동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생소한 곳에 가면 장소를 찾기 어렵다. 보통 장소를 설명할 때 상호나 간판 등으로 길을 알려주는데, 이를 볼 수가 없으니 길을 찾기가 어렵다. 물론 물어물어 갈 수는 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또 ‘볼라드(bollard·보행자용 도로에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되는 철·콘크리트 등으로 만든 장애물)’때문에 정강이가 남아날 일이 없다. 자주 부딪히기 때문이다. 안전장치 등 설치 기준이 있긴 하지만 이에 맞춰서 제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볼라드를 피하려고 움직이다보면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 횡단보도 앞에 설치된 석재 볼라드 ⓒ뉴시스

장애인 차별 개선 위해 시민의식 제고돼야

Q. 장애인 차별을 위해 개선해야할 것이 있다면.

장애인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내가 어디 가서 장애인임을 밝히면 불쌍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 같다. 아직도 장애인을 ‘장애자’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비장애인을 ‘정상인’, ‘보통사람’ 등으로 표현해 장애인을 차별하는 언론도 있다. 또 장애인에 대한 지원 확대를 말하면 ‘하루에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 수도 없이 많은데 언제 장애인들까지 챙겨’라는 말도 하더라. 장애인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Q. 한국은 장애인이 살기 어려운 나라인가.

그렇다. 일상에서 겪는 일을 말하자면 시각장애인은 점자유도블록을 통해 보행하는데, 이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통행하기 어렵다. 또 나 같은 저시력 장애인의 경우 야간에는 앞이 전혀 보이기 않아 통행하기 어렵다. 현 시점에서는 저시력 장애인을 위한 대안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또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보형 내비게이션 개발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휠체어 이용인들의 경우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휠체어가 진입하기 어려운 곳도 있고, 전철역에서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없어 위험한 리프트를 사용해야 하는 곳도 있다. 장애인에게는 활동, 시설이용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대한민국 사회는 장애인이 원활하게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나라다. 장애인들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사회다.

▲ 시각장애인 박승규씨 ⓒ투데이신문

장애인 권리 개선 마련에 힘쓸 것

Q. 이후 나서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나.

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권 개선에 더 힘쓰고 싶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싶다는 작은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영화관에 혼자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번 소송에도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재판을 이겼으니 이 승소결과를 가지고 앞으로 더 바꿔나갈 것이다. 실제로 영화관에 가서 모니터링 할 것이다. 어느 정도의 편의제공이 되는지, 얼마나 이행이 되는지 지켜보고 결과를 공유할 것이다. 또 장애인의 이동권을 개선하고 싶다. 나는 KTX 좌석을 예매할 때 항상 해당 호차의 가장 앞자리나 뒷자리를 예매한다. 좌석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문과 가까운 자리를 예매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나 같은 저시력 장애인뿐 아니라 전맹 장애인도 좌석을 확인하고 앉을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할 것이다. 전철역의 휠체어리프트도 개선돼야 할 문제다. 아직도 휠체어리프트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철 역마다 필요하다.

Q. 시민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장애인들은 어떤 혜택이나 특별대우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장애의 유형, 정도, 특성에 맞는 지원을 받고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뿐이다. 국가는 장애인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장애 당사자와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면 좋겠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장애인을 혐오, 시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같은 ‘사람’으로 대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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