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플 > 인터뷰
[노란리본이 말하다⑦] 영국인 닐 조지 감독 “세월호는 완벽한 인권참사”[특별 인터뷰]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만드는 영국인 닐 조지 감독
전소영 기자  |  jsy@ntoday.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1.02  18:20:1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세월호 다큐멘터리 만드는 영국인 감독
한국만의 문제 아님을 전 세계 알리고파 

참사, 안전보다 경제 이득 앞선 풍토 탓
세월호, 처음부터 끝까지 ‘인권참사’였다

피해자 위해 더 많은 일 할 수 있었으면
다른 ‘노란리본’들도 같은 마음이길 바라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지난 ‘노란리본이 말하다’ 4편 인터뷰에서는 진실마중대 자원봉사자 조미선씨가 노란리본을 달고 찾아온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처럼 ‘노란리본’과 함께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피부색도, 쓰는 말도 모두 다르지만 우리 모두가 세월호 참사를 함께 아파하고 기억하고 있다.

닐 조지(Neil George) 감독도 그러한 이들 중 한 명이다. 동아방송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영국인 닐 감독은  메튜 룻(Matt Root) 감독과 독립영상제작자 김한결 프로듀서와 함께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영화 ‘애프터 더 세월(After The Sewol)’, ‘세월 제너레이션(Sewol Generation, 가제)’ 등을 제작했다. 지난 3년간 닐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유가족을 만나기 위해 진도로 향하길 수차례, 무더운 여름날 진도 동거차도로 향하는 길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이 같은 행보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아픔·상처·흉터를 들여다보고 이로 인한 수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길 바랐다. 그리고 이 비극이 비단 한국이라는 한 국가의 문제만이 아님을 전 세계에게 알리고자 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닐 감독, <투데이신문>은 지난 22일 그를 만나 외국인이 바라보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 ⓒMarlies Gabriele Prinzl 작가

Q.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수업을 하러 갔었고 학생들을 통해서 처음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했다. 당시 많은 언론이 세월호 참사 보도를 쏟아냈지만 한국 언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나는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BBC 등 외신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다루기 시작하면서 정확히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Q.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본 적 있나.

있다. 사고 직후는 아니고 세월호 참사 영화 제작을 준비하면서 방문하게 됐다. 진도에 가기 앞서 희생된 학생들의 가족을 인터뷰했었다. 그들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다.

Q. 당시 세월호 참사를 대처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태도가 논란이 됐는데.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를 둘러싼 세월호 참사 7시간 의혹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세월호 참사가 당시 정부만의 문제로 발생한 사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지만 일어났다면 정부는 제대로 대응을 했어야만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가장 화가 난다.

Q.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싸웠다. 반면에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국민들의 모습은 굉장히 놀라웠다. 2015년에 접어들면서 언론에서는 왜곡된 보도가 나오고 국민들의 관심에서 많이 멀어지기도 했다. 심지어는 정치적인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했는데 그런 어려운 시기가 있었음에도 광화문에서 세월호 피해자 및 가족들과 함께 싸워준 사람들의 모습에 감동받았다.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태극기 집회 참가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들에게서는 연민과 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들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왔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배경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가 나는 한편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말고의 문제가 아님을 반드시 알았으면 좋겠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Q.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많은 외신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주목했는데. 영국 언론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보도했나.

외신 같은 경우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 언론에 비해 중립적인 보도가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언론에 굉장한 불신을 품고 있던 피해자와 유가족들도 외신에 대해서는 좀 더 믿음을 갖고 보도에 응했던 것 같다.

Q. 1989년 4월 15일 영국에서 발생한 ‘힐즈버러 참사’가 세월호 참사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하던데.

*힐즈버러 참사 : 1989년 4월 15일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는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리스트 FC 간의 FA컵 준결승전이 개최됐다. 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2만5000여명의 리버풀 FC 팬들이 해당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경찰이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관람객을 밀어 넣었고 이로 인해 96명이 압사, 800여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

세월호 참사와 힐즈버러 참사는 연관 지어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참 많다. 가장 먼저 안전규정 문제를 꼬집자면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대처와 대응이 매우 부족했다. 당시 앰뷸런스조차 현장에 제대로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불법적인 건축물 증·개축이 대형 참사의 원인 발생 원인이 됐다. 또한 힐즈버러 참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도 정부의 주도로 많이 감춰졌다. 정부는 참사 원인을 처음에는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훌리건(Hooligan·축구 등 스포츠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관중, 팬을 일컫는 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정부에서 출범한 진상조사위원회와 경찰도 그렇게 발표했다. 이후 피해자 가족들이 재수사를 요구했고 27년 만에야 진실이 밝혀지며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게 됐다. 공통점에 비해 차이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힐즈버러가 육지 참사라면 세월호는 해양 참사랄까. 그만큼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 <사진 제공 = 곰과올빼미 미디어 김한결>

Q. 본인이 제작한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애프터 더 세월’에 대해 간단히 소개 바란다.

영화 제작 초기에는 단순히 세월호 참사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로 인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를 담고자 했다. 그런데 제작을 진행하면서 세월호 참사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더 많은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났으며 사고 발생 원인에는 정경유착, 안전불감증 등과 같은 일련의 공통점이 존재했다. 그러면서 처음 기획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게 됐고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외국인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게 됐다.

Q.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나.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 단순히 선장 한 명이 잘못해서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가 연관돼 벌어진 사고라는 것을 알길 바랐다. 또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자식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왜 거리에 나와서 투쟁을 하고 섬과 국회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지, 정상적인 국가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해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Q. 영화를 제작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감정적인 측면에서는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힘들었다. 촬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영화가 완성단계에 다다랐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고, 태블릿PC 논란 등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추가할 내용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이는 세월호 참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의 마침표를 찍고도 나는 추적을 계속할 생각이다. 이것이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Q.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지난해 8월 동수 아버님께서 동거차도에 함께 갈 것을 제안하셨다. 동거차도에 머물던 가족분들을 위해 물자를 보급하러 가는 여정이었는데 그때 그분들이 처한 지난 3년의 시간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다면 굉장히 평범한 삶을 살았을 분들인데 이분들이 왜 거리에 나서서 투쟁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Q. 후속작 ‘세월 제너레이션’을 준비 중이라던데.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첫 번째 영화에서 연결되는 내용인데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른바 ‘세월호 세대’라고 불리는 20대 초반 국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와 실제 생존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기억에 대해 녹여냈다. 세월호 세대에게 바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영화를 통해 돈을 벌거나 이름을 알리려는 목적은 없었다. 배급사와 얽힌 첫 번째 영화와는 달리 두 번째 영화는 무료 공개를 할지 유료 상영을 하고 수익금을 세월호 참사를 위해 사용할지 논의 중에 있다.

   
▲ ⓒMarlies Gabriele Prinzl 작가

Q.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가 있겠다. 먼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경제적인 이득을 더 중요시 여기는 풍토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에서 필요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안전규제를 말할 수 있겠다. 또한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를 말할 수 있다. 물론 아이들의 투표를 통해 배를 타고 가는 것으로 결정됐겠지만 분명히 좀 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한 것은 경제적인 부분이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Q. 세월호 참사를 ‘인권참사’라고 평가했다. 어떤 의미인가.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는 생명권, 즉 살 권리와 구조 받을 권리를 잃고 많은 사람들이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또한 사건 발생 자체도 인권문제와 관련이 있지만 사고 이후에 발생한 문제들을 봤을 때도 완벽한 인권참사라고 볼 수 있다. 언론에 무자비하게 노출되면서 프라이버시를 박탈당하고, 내 가족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 권리도 잃었다. 때문에 세월호는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도 참사일 수밖에 없다.

Q.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 세월호 참사 등 비극적인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안전사고는 일어날지 안 날지도 모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본이 뒤따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용과 경제성을 따지다 보니 안전에 있어 저렴하고 신속한 대처 문화가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쌓이고 쌓여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Q.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국가적 크게는 세계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세월호 참사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발생한 그렌펠 타워 화재 사건을 보며 더욱 확신했다. 이를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또한 개개인이 어떤 일을 대하는 데 있어 원칙과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다.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Q. 세월호 참사가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어온 지난 4년에 가까운 시간에 대해 굉장히 큰 감동을 받음과 동시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하나로 압축돼 나에게 ‘한국’이 돼 돌아온 것 같다.

Q. 세월호 참사를 함께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기억하는 ‘노란리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해 뭔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신의 자리에서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싸워줬으면 좋겠다. 이는 비단 세월호 참사를 위해서만은 아니어야 한다. 탄핵이 되고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관련기사]

전소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icon인기기사
SPONSORED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투데이신문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63로 32 1024호·1014호 (여의도동, 콤비빌딩)  |  대표전화 : 02)739-2711  |  팩스 : 02)739-2702
제호 : 투데이신문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2077  |  등록일 : 2012년 4월 18일  |  발행일 : 2012년 5월 28일  |  법률고문 : 법무법인 길도
발행·편집인:박애경  |  전무:이정수  |  광고국장:장현당  |  편집국장:강지혜  |  청소년보호책임자:박애경  |  이메일:todaynews@ntoday.co.kr
Copyright © 2013 투데이신문. All rights reserved.
투데이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