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종교와 정치와 연예와 교육을 단 한 사람이 총괄하던 시대를 우리는 제정일치 시대라고 부른다. 제사장인 단군할아버지는 종교인, 정치인, 선생님, 연예인의 역할을 당신 혼자서 모두 책임져야했다. 그러니까 단군 할아버지는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말 잘하고, 잘 생기고 유머 감각 넘치면서도 인기 아이돌처럼 춤과 노래에도 능하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팬덤이 형성되고 그들은 하나로 뭉치게 되었겠지.

백성을 가르치고 한 데 뜻을 모으게 하고, 또 즐거움을 주던 집단 종교의식은 공동체 구성원을 끈끈하게 묶어주었다.

대학 시절 <신화, 전설, 민담> 과목을 가르치시던 교수님께선 그러한 소속감, 혹은 정(情)의 원천이 ‘의식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디오니소스적 축제’에 있다고 하셨다.

자신의 소유 중 가장 좋은 가축과 소작물을 바쳤던 고대의 축제를 보자. 사실 신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신께 바치기 위해 소중하게 거두어진 그 많은 음식은 누구 차지인가. 결국 그것은 그 제례를 준비한 자들의 것이다. 실제로 종교 의식 후엔 인간계의 잔치, 축제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고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집안 제사나 차례가 끝나면 온 식구가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술도 마신다. 오래도록 준비한 행사나 공연이 끝나면 역시 구성원 모두가 함께 모여 먹고 마신다.

교수님께서는 이 어우러짐의 시간에 숨겨진 놀라운 힘 두 가지를 꼽아주셨다.

바로, 침과 땀.

교수님께선 조금 더 과학적이고 고상하기까지 한 ‘체액’이란 용어도 쓰셨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그것이 더 정확하고 광범위한 표현일 것이다.

공동체를 묶어주는 체액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아무리 깔끔 떠는 사람도 침 한 방울 안 섞이게 타인과 음식을 나누어 먹기는 불가능하다. 가족이란 결국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체액(침)을 섞는 관계다.

친구도, 연인도, 직장 동료도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가까워진다.

피구나, 농구, 축구 같은 학교 체육 시간의 활동은 학생들끼리 서로의 땀을 섞도록 만든다.

▲ ⓒ게티이미지뱅크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MT 프로그램 속에 포크 댄스 같은 게 들어있으면 참가자들은 이게 무슨 구시대적 발상인가 하며 난처함을 넘어 불쾌감을 드러내기까지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은 ‘뭔가 아는 똑똑한 사람’이 분명하다. 서로의 팔짱을 끼고 돌아나가는 동작, 손바닥을 마주 대는 동작, 그런 것들은 알게 모르게, 나노 단위의 마이크로 세계 속에서 우리의 체액을 마구 마구 섞어댄다.

처음으로 손을 잡고 나서, 혹은 첫 키스나 첫날 밤 이후에 연인들의 관계가 더 깊어지는 것도 마찬가지 논리다.

언제나 관계의 시작은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침 튀기며 얘기 나누는 것.

고대인들은 종교 의식 후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그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 설이고 추석이고 크리스마스다.(크리스마스는 연말에 서로 선물을 주고 받던 로마의 축제를 기독교에서 차용한 것)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상사가 집들이 얘기를 꺼내면 몹시 못마땅해 한다. 아이젠 세대(스마트폰을 분신처럼 여기는 젊은 세대를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는 아예 면대면(面對面) 소통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들 외롭다고 한다.

외로움의 반대는 끈적임이다. 외롭지 않으려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야한다. 그들과 침과 땀과 그것을 넘어서는 더 많은 것을 섞고 나누어야 한다.

외롭다면서 자꾸만 안으로 움츠러드는 젊은 세대에게 오늘의 내 얘기가 좀 더 스며들도록 다음 일화를 소개한다.

지난 해 가을이던가 해외 뉴스에서 본 한 쌍의 연인 이야기다. 호주인지, 대만인지 국적은 잊었지만 최근에 큰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진 한 여성이 수술 후, 우연히 한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특이하게도 그 둘은 똑같은 희귀 혈액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또, 그 남자가 정규적으로 헌혈 봉사를 해왔던 터라, 혹시나, 하고 수술 당시의 수혈 기록을 뒤졌더란다, 세상에나! 이 두 연인은 간단한 추적 조회만으로 그 여인이 수술 중 수혈 받은 피가 그 당시 그 남자가 헌혈했던 피였음을 알아내곤, ‘우리처럼 운명적인 만남이 또 있으면 나와 보라’고 온 세상을 향해 외치게 되었다.

우연, 혹은 운명이라고?

아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현상이다. 그 녀 몸 속에 들어온 그 남자의 피가 그 남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맘에 둔 누군가가 있는가?

그렇다면 2018년 새해엔 그를 직접 만나야 한다. 그리고 되도록 침을 섞을 수 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땀 낼 수 있는 활동을 해야만 한다.

우리를 가깝게 묶어주는 강력한 마법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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