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전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展’

▲ ⓒ투데이신문

돈 많은 백수 꿈꾸는 사람들 위한 전시
지루한 일상 속 여유와 즐거움 찾길 바라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우리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아, 돈 많은 백수하고 싶다!!”

반복되는 업무와 지겨운 상사의 잔소리에 지친 직장인들부터 취업의 압박과 고된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는 대학생들까지 우리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꾸는 꿈은 바로 ‘돈 많은 백수’다. 하지만 소위 말해 돈벼락 맞거나 금수저가 아닌 이상 그저 꿈만 같은 일. 고로 우리는 오늘도 출근과 등교를 위해 지하철과 버스에 오른다.

이처럼 일상에 지친 우리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드러낸 전시회가 열렸다. 바로 전시회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展(이하 돈백전)’이다.

돈백전은 오늘도 돈 많은 백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시원한 웃음과 공감을 선물하는 이색 전시다. SNS를 통해 유명세를 치르면서 20·30대에게 젊은 층 사이에서 폭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10일 <투데이신문>은 돈백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강남미술관을 찾았다.

▲ ⓒ투데이신문

강남미술관 3층에서 열리고 있는 돈백전, 전시장으로 향하는 계단마저도 남달랐다. ‘오늘 왜 월요일?’, ‘왜 아직도 수요일?’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종종 쓰는 말들로 꾸며진 계단을 오르며 피식 웃다 보니 금세 전시회 입구에 다다랐다. 기자는 전시회 오픈 시간에 맞춰 조금 이른 오전 11시에 도착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전시회장이 붐볐다.

▲ ⓒ투데이신문

‘#워얼화아아수우모옥금퇼’, ‘#여름휴가 D-210’, '#개장 D-50' 등의 해시태그로 꾸며진 횡단보도를 연상케 하는 길을 따라 걸으면 출근길 ‘꾸역꾸역’ 4번 입구에 도달할 수 있다.

꾸역꾸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돈백전은 돈 많은 백수를 꿈꿀 수밖에 없는 직장, 학교 등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우리를 욱하게 하는 웃기고도 슬픈 상황들이 펼쳐진다.

▲ ⓒ투데이신문

꾸역꾸역에 들어서자 첫 번째 전시장인 ‘Hell of Metro’ 이른바 출근지옥이 펼쳐졌다. 출근지옥이란 표정 없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적재해 각자의 일터로 실어 나르는 지하철을 뜻한다. 출근지옥 속 사람들을 택배 상자로 형상화해 그들의 생각을 표현한 전시물들을 볼 수 있다. ‘침대가 기다릴 텐데’, ‘아~ 가기 싫어’, ‘금요일 회식이라니’ ‘앉고 싶다’ 등 매일 아침 우리가 지옥철에서 떠올리는 머릿속 생각들이 절로 웃음을 자아냈다.

▲ ⓒ투데이신문

다음 전시장으로 넘어가는 길 특이한 ATM 기계가 눈길을 끌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잔액이 ’또‘ 부족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ATM에 많은 사람들이 ‘텅장(텅텅 빈 통장을 표현하는 신조어)’을 운운하며 공감했다. 그리고 바로 아래 적혀있는 ‘티끌모아 티끌 - 적금통장’, ‘티끌모아 태산 - 카드 할부금’에 다시 한 번 웃음을 빵 터뜨렸다.

▲ ⓒ투데이신문

두 번째 전시장은 잘 참아왔는데 가끔 모든 걸 놓고 싶을 때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들’로 꾸며졌다. 가장 먼저 ‘몰래 보는 블랙리스트’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명단에는 중국집 가서 맘껏 시키라고 해놓곤 자장면 시키는 강 부장, 개그코드가 쌍팔년도에 머물고있는 백 과장, 자식같다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석 차장까지 어느 회사에나 한명씩 꼭 있다는 얄미운 상사들이 올라 있었다. 또 영혼 없는 리액션의 김 대리, 커피농도도 못 맞추는 정 주임, 회식만 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 유 사원, 대답이라곤 “네” 밖에 모르는 홍 인턴 등 후배 직원들도 이름을 올렸다. 직장인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만한 내용이었다.

▲ ⓒ투데이신문
▲ ⓒ투데이신문

바로 옆에는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사회악 ’팀플‘이라는 제목으로 단체 채팅방 속 대학생들의 조별과제 잔혹사가 그려졌다. 전시장을 방문한 많은 대학생들이 공감한다는 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기자 역시 과거 교양 수업에서 만났던 최악의 조별과제 팀원을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 ⓒ투데이신문

세 번째 전시장의 주제는 이직과 취업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버린 외국어를 소개하는 ‘제2외국어 배우기’였다. 일상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일본어들이라고 소개했지만 ‘조금, 약간’의 뜻을 가진 ‘좃또(ちょっと)’, ‘자주, 여러 차례’라는 의미의 ‘시바(しば)’ 등 한국 발음으로 욕은 연상케 하는 일본어들이 주를 이뤘다 기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단어들을 조용히 따라 읽고 있었다.

▲ ⓒ투데이신문
▲ ⓒ투데이신문

네 번째 전시장에는 'Kim's Secret Garden'이 펼쳐진다. 대학생 시절 조별과제에서 만난 수많은 프로불편러('불편하다'는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들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사회생활의 티저(Teaser)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건강을 위해 나는 ‘사육사’, 팀원들은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동·식물이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공간이다. ‘길앞잡이’, ‘조넨쉬름’, ‘아왜나무’ 등 재밌는 이름을 가진 실제 식물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장 한편에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석으로 만드는 쉬어가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 ⓒ투데이신문
▲ ⓒ투데이신문
▲ ⓒ투데이신문

다섯 번째 전시장에서는 앓다 죽을 그 이름 ‘로또’가 관람객들을 반겼다. 지역별 로또 당첨자 수를 한눈에 알려주는 로또 당첨 지도부터 서울 최다 당첨자 배출 Best 3 판매소 가는 법 등 돈 많은 백수가 되는 지름길인 로또 당첨을 위한 유용한 정보들이 안내돼 있었다. 전시장 한편에는 관람객들이 로또가 당첨됐을 때 하고 싶은 소망들을 적은 포스트잇이 장관을 이뤘다.

▲ ⓒ투데이신문

마지막 전시장에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전하는 희망찬 위로 ’It’s your turn!‘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당신 차례입니다‘라는 의미의 It’s your turn은 돈백전이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 어린 메시지이기도 하다.

▲ ⓒ투데이신문

최근 직장을 관두고 구직 중이라며 자신을 백수라고 소개한 김은경(34)씨는 “SNS를 통해 알게 됐고, 처음에는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글귀들을 보면서 힘도 나고 많이 공감했다”면서 “다만 볼거리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관람 후기를 전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왔다는 대학생 전고운(26)씨는 “사진 찍을 수 있는 포토 존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데이트 코스로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온 대학생 이유림(21)씨는 “공감되는 글귀가 많았다. 다만 공간이 조금 협소하고 가격 대비 볼거리가 적었던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 ⓒ투데이신문

이번 전시회가 우리의 팍팍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일하고, 밥 먹고, 공부하고, 일하는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소소한 여유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오늘 하루 원 없이 웃고 그동안 쌓아온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고 싶다면 돈백전을 관람해보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