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8일 한동대학교에서 진행된 ‘흡혈 사회에서 환대로 - 성노동과 페미니즘, 그리고 환대’ 강연현장. 강연 반대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독립언론 뉴담

학생처, 강연 주최 학생들에 진술서 요구
‘성노동’ 주제, 폴리아모리 등 문제 삼아

학생처장 “학교 방향과 어긋나 제재”
성적지향 해명 요구해 ‘인권침해’ 논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경북 포항의 기독교계 사립대학 한동대학교가 학생들이 학내에서 진행한 페미니즘 강연을 문제 삼아 징계 절차를 밟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한동대가 문제 삼은 강연은 학내 학술모임 ‘들꽃’이 지난해 12월 8일 주최한 ‘흡혈 사회에서 환대로 - 성노동과 페미니즘, 그리고 환대’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이날 강연에서는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주디스 버틀러 읽기>,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등을 펴낸 임옥희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의 저자 홍승은 작가, <붉은 선>의 저자 홍승희 작가가 강연 및 대담을 진행했다.

행정 절차 구실로 강연 취소 압박

들꽃 등에 따르면 강연 사흘 전인 구랍 5일, 들꽃 학생들은 강연 포스터 게시를 허락받기 위해 학생처를 찾아갔다. 학내에 게시물을 부착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허락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포스터 게시를 허락했고 학생들은 다음날 이를 학내에 부착했다.

그러나 학생처는 강연 당일 오전 학내 규정을 근거로 강연 불허를 통보했다. 한동대의 ‘학생단체 등록과 활동에 관한 규정’ 제9조 6항에 따르면 매 학기 기말시험 개시 1주일 전부터 종료 시까지 각 단체의 행사 및 집회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16주차(12월 15~19일)에 기말시험이 진행되기에 15주차에는 강연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들꽃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강연은 원래 전달인 11월 24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11월초 포항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2주 연기된 이날 진행하게 됐다.

들꽃 학생들은 강연 당일 오후 2시경 학생처장을 만났다. 학생들에 의하면 학생처장은 “학교의 방향과 어긋나는 모임은 학교가 제재할 수 있다”며 “어차피 취소하라고 해도 진행할 테니 강연 내용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보수 기독교계 학교인 한동대가 학교 규정이 아닌 강연의 성격을 문제 삼은 것을 시인한 꼴이다.

이날 강연자들의 저서는 퀴어(성소수자)-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 반면 한동대는 지난해 5월 24일 교수 채플에서 “동성애 행위가 성경적 진리와 윤리관에 반한다고 믿는다”며 ‘반동성애 대학’임을 천명한 바 있다.

학생처장과의 대화 자리에서 한 학생은 “헌법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헌법이 학칙보다 위에 있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학생처장은 “그러면 너는 헌법으로 가”라며 “나는 한동대학교 안에서 교수로서 학생과 대화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하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국민으로서 얘기하려면 학교 밖에서 얘기해”라고 말했다.

▲ 지난해 12월 8일 한동대학교 학생처장과 학생의 대화 <자료제공 = 한동대 학생 부당징계 및 인권침해 반대 공동대응>

일부 교수 특정학생 지목해 ‘아웃팅’

주최 측인 들꽃은 이날 저녁 7시 예정대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30여명의 학생이 강연을 듣기 위해 모였다. 또 강연을 ‘모니터링’ 하겠다고 한 학생처장을 비롯해 교목실장, A 교수 등 교직원과 강연에 반대하는 학생 등 약 20여명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자유섹스하라는 페미니즘 거부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인쇄물을 들고 있었다.

‘한동대 학생 부당징계 및 인권침해 반대 공동대응’에 따르면 학생처장은 강연 3일 후 전 교직원에게 해당 강연을 규탄하는 취지의 메일을 보냈다. 해당 메일에는 해당 강연이 “동성애 내용이 가득한 모임”이었고 “우리의 학생들이 온갖 가증스런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공유하는 모습을 봤다”며 “지난 금요일 밤, 한동대에는 땅이 흔들리는 염려보다 더 큰 영적 지진이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학교 측은 12월 14일 학생지도위원회를 열고 당시 강연 현장에 있던 학생들에게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들꽃 소속 학생 3명과 관련 학생 2명에게는 진술서를 추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진술서 요구 사유는 학생들마다 달랐다. 들꽃 소속 학생들에게는 ‘성노동’이라는 강연 주제를 선정한 이유와 금지 통보에도 불구하고 강연을 강행한 이유를, 다른 학생에게는 강연 당일 학생처장실에서의 대화 내용을 자신의 SNS에 언급하며 강연 후기를 남긴 이유를 진술할 것을 요구했다.

특정 학생에게는 들꽃의 강연 강행을 도운 점과 이 과정에서 교직원에 대해 불손한 언행을 한 점, 자신이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로 사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기독교대학으로서의 한동대학교 설립정신과 학칙에 위배되는 점을 강연 내용을 토대로 자유롭게 진술하라고 요구했다. 게다가 강연 이후 일부 한동대 교수들은 해당 학생의 폴리아모리라는 성향을 문제 삼아 이를 공론화하기도 했다.

진술서 제출을 요구받은 들꽃 소속 B 학생은 “학교의 진술서 요구는 SNS 검열과 감정에 대한 해명, 성적 지향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해당 강연의 사회를 맡았던 홍승은 작가는 자신의 SNS를 통해 “특정인을 지목해 아웃팅(당사자의 동의 없이 성적 지향을 공개)하는 것은 범죄”라고 비난했다.

온라인상에서도 한동대를 향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한동대 학생 부당징계 및 인권침해 반대 공동대응’ 페이지가 개설됐다. 이 페이지에는 ‘한동대는 대학이 맞습니까’라는 성명이 게시됐다. 성명은 ▲학생처장의 공식 사과와 보직해제 ▲성별·장애·성 정체성·성적 지향·인종·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학칙 제정 ▲반동성애 교육과정/관행 전면 폐지 및 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교육과정 신설 ▲학내 구성원의 인권 보호와 증진, 교육을 위한 인권센터 설립 및 지속적인 운영 등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9일 기준 이 성명에는 한동대 재학생 및 졸업생 104명과 한동대 외 727명 그리고 26개 단체가 참여했다. 그리고 이 성명은 온라인상에서 꾸준히 확산돼 참여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 <자료제공 = 들꽃>

한동대 “징계 위한 절차 아냐”

한동대 학생처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징계 여부를 판단하려는 차원은 아니다”라며 “학생들이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생각을 듣고 대화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적 지향에 대한 진술서 요구는 해당 학생의 요구에 따라 진행하지 않았다”며 “강연을 주최한 학생들 뿐 아니라 강연에 반대해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에게도 진술서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동대학교 학칙 ‘학생 상벌에 관한 규정’ 제10조에 따르면 징계사유가 발생했을 때 대상 학생의 진술서를 받아 학생지도위원회를 소집하고 징계를 발의하도록 돼 있다. 사실상 징계절차를 밟고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진술서를 받아 지도위원회에서 징계 사유가 된다고 판단하면 징계 처분을 내릴 것”이라며 '징계 여부를 판단하려는 차원이 아니'라는 말을 뒤집기도 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한동대는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지성·인성·영성 교육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교육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현행 교육기본법 제4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퀴어-페미니즘을 이유로 강연을 주최하고 참여한 학생들을 징계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을 따른다는 한동대의 교육이념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인권침해·사생활 검열 등의 비판을 받고 있는 한동대가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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