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선정벌(羅禪征伐)의 이면
[칼럼] 나선정벌(羅禪征伐)의 이면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1.1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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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학창시절, 필자에게 “나선정벌”은 교과서나 개설서에 나온 것만으로는 무엇인가 속시원하지 않음이 남는 사건이었다. 교과서와 개설서, 사전에서 “나선정벌”은 “조선 효종(孝宗, 재위 1649∼1659) 때 조선이 청나라를 도와 러시아를 친 싸움. 효종의 북벌(北伐) 계획을 간접적으로 실현한 결과로서, 이때 비록 적은 수의 군사를 보냈으나 큰 성과를 올리게 된 것은 당시의 사격술과 전술이 우수했음을 보여주는 것” 정도로 간략하게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는 무엇인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군을 외국의 전쟁에 보내는 것은 국력의 낭비, 한 쪽 편을 듦으로 인한 외교적 문제 등이 생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우리 백성 혹은 국민을 전장으로 내모는 일이다. 이 때문에 외국 전쟁에 파병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매우 꺼려지는 일이다. 근대 이전 외국 전쟁에 우리 군이 파병된 사례 중, 원의 일본 정벌에 고려군이 참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원의 압력으로 고려군이 참전하면서 많은 고려 사람이 죽고, 전선(戰船)을 잃는 등의 손실이 있었고, 고려의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선정벌에 대한 기록은 『효종실록』에서도 그 기록이 매우 적게 남아있다. 논의의 과정, 파병 이후 전황, 파병 종료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에 관한 기록이 몇몇 남아있을 뿐이다. 기간이 짧고, 규모가 작았다는 것, 당시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우리 군을 파병하는 사건치고는 기록이 너무 적다. 아무래도 당시 조정이 북벌을 준비할 정도로 청에 대한 적대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기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효종실록』 12권, 효종 5년(1654) 2월 10일 신미 3번째 기사에 따르면, 정언(正言) 이상진(李尙眞, 1614∼1690)이 나선 정벌에 대해 군정(軍政)의 문제와 국경의 방어와 관련해서 염두에 둘 점을 건의하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 나선에 파병하는 일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형세가 있습니다. 만일 강변(江邊)이 함락되면 어느 군졸로써 방어하시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마땅히 문신(文臣) 중에서 청렴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북로(北路)의 병사(兵使)를 맡겨, 그 백성들로 하여금 조정에서 염려하고 구휼하는 덕(德)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민심을 거의 수습할 수 있고 군정(軍政)도 수선하고 정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효종은 ‘말이 대단히 절실하고 곧으니 내가 가상하게 여긴다’라고 칭찬한다. 병자호란 이후 청의 압력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우리 군을 보낼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하여 옳은 말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상진은 간언을 하는 정언의 직책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전쟁에 우리 군사를 보내는 과정에서 많은 사안을 고려하고 논의해야 됨을 확인할 수 있다.

나선정벌에 대한 기존의 간략한 정의와 달리, 나선정벌 과정에서 우리 군의 피해와 청에 의한 부당한 대우가 많았다. 이성주의 『조선미시사』에 따르면, 화력이 부족한 아군에게 조선의 파병군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청군 지휘관의 노획품 욕심으로 인해 청군이 무리한 작전을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우리 병사가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전리품도 제대로 얻지 못했고, 최신식 무기조차 조선군을 경계한 청군의 압력으로 인해 모두 빼앗겼다. 심지어 무리한 작전 중에 사망한 조선군을 모두 전쟁터에서 화장하라는 지시까지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외국으로의 파병은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치열한 논쟁과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전해지는 ‘아랍 에미레이트 유사시 우리 군이 자동 참전한다’는 내용의 이명박 정권 당시 아랍 에미레이트와의 “군사지원 양해각서”라는 원전 건설의 이면 합의는 이러한 사실과 헌법, 국민 생명의 보호 등을 모두 무시한 처사다. 마지막으로 팟캐스트 “김용민 브리핑”에서 정선태 교수가 “전쟁을 얘기하는 자들은 절대 자신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죽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면서 소개한 베르타 폰 주트너(Bertha von Suttner, 1843〜1914)의 소설 『무기를 내려놓으시오(Die Waffen Nieder)』의 대목을 인용한다.

생각해보세요. 영웅적인 용맹함을 가장 내세우는 사람들, 전쟁에서의 업적과 위험을 가장 열렬하게 찬양하는 사람들이 누굴까요? 바로 전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들입니다. 교수들, 정치가들, 술집에서 정치 얘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그야말로 노인들의 합창이지요. 『파우스트』에서처럼. 자기 일신의 안전함이 무너지면 그 합창도 뚝 그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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