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리본이 말하다⑨] “우리 모두가 노란리본입니다”
[노란리본이 말하다⑨] “우리 모두가 노란리본입니다”
  • 투데이신문 사회부
  • 승인 2018.01.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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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노란리본들의 목소리
▲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사회부】 <투데이신문>은 그동안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노란리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세월호의 아픔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들의 못다 한 이야기에 함께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됐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달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함께 싸워달라”.

때문에 ‘노란리본이 말하다’ 그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 주변 가까이에 살고 있는 노란리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늘 세월호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노란리본이 말하다

▲ <사진제공 = 권민수씨>

노란리본 민수(28·남)

“세월호 사건 이전에는 정치나 사회문제에 어떤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살았습니다. 길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이나 행진하는 무리를 보며 혀를 차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통해 불의한 사회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삶의 낭떠러지로 내몰아가고 생명을 앗아가는지 목격하게 되면서 사회인식의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저는 매일같이 노란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불의한 이 사회에 보내는 경종이 되어 오늘까지도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곳곳에서 생의 투쟁을 이어가는 모든 이들과의 연대의 상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 <사진제공 = 권민수씨>

노란리본 김종혁(30·남)

“세월호 참사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마 4월 16일 그 사건을 목도하고, 그 사건을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삶은 더 이상 이전의 삶과는 동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그러한 일이 동일하게 일어났으니까요.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정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란 리본은 그 가치를 담고 있는 기호이고, 노란리본을 볼 때 마다 우리는 그 의미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달고 있습니다.”

▲ <사진제공 = 진지한씨>

노란리본 진지한(28·남)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이 되어가는 지금, 어느새 대중들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사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미수습자 수습 그 어느 하나도 속 시원하게 된 것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제가 속한 학교, 교회, 광장에서 세월호의 아픔을 알리고, 노란 리본을 제 몸에 항상 지니고 있을 겁니다. 한 사람이라도 잊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제공 = 김채리씨>

노란리본 김채리(26·여)

“올해로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맨 처음 뉴스속보에서 봤던 전원 구조. 그리고 오보. 세월호 사건은 개개인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큰 과제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풀리지 않는 의혹이 너무나도 많고,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사람 또한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 수많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주세요. Remember 0416.”

▲ <사진제공 = 권민수씨>

노란리본 최이형순(23·남)

“세월호가 끝나지 않았냐고, 배상이 끝나지 않았냐고, 문재인 정부가 잘 해결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유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세월호의 진상조사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4년째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세월호가 안 좋은 기상 상황 속에서 출발했는지, 왜 배가 침몰했는지, 구조는 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월호 참사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 참사 속에서 죽어야만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죽고자 원했던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그 중 5명의 미수습자는 시신의 일부도 발견하지 못한 채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이런 희생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세월호 노란 리본은 내게 있어 잊지 말자는 다짐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밝혀지는 그 때를 넘어서 대한민국 땅에서 일어난 어떤 사고 속에서도 안전하게 모두 구출될 수 있는 제도와 환경 등이 이뤄지는 그 날까지, 그리고 우리의 미래들에게도 세월호는 잊힐 수 없는, 잊히면 안 되는 비극입니다. 왜 아직도 달고 다니냐는 말이 아닌, 함께 기억하자는 말로 함께 했음 좋겠습니다.”

▲ <사진제공 = 전민주씨>

노란리본 전민주(50·여)

“어른들이 구해주러 올 거라고 믿고 기다렸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턱 막혀요. 물 속에 잠겨 죽어가면서 얼마나 원망했을까요. 제 딸이 그 애들과 동갑이에요. 세월호 세대라고 불리우는 그 아이들, 살아 있는 그 아이들은 이제 어른들을 믿지 않아요. 친구들이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걸 봐 버렸잖아요. 정말 너무 기가 막히고 부끄러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서명운동을 나가기 시작했죠.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정기적으로 모이는 강남서명팀에 시간이 되는 대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피켓만 들었는데 나중엔 어떻게든 더 시선을 끌어보려고 한 달에 한 번씩 버스킹도 했습니다. 가수는 아니지만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의미있는 노래들을 정성껏 불렀지요. 사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무력감이 들 때도 많았었는데 3주년 즈음 한 사람이 쭈뼛쭈뼛 다가와서 그러는 거에요. 그 동안 자기가 너무 몰랐다고, 부끄럽다고, 고맙다고.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서로 얼굴 마주보고 말없이 한참 울었어요. 세상을 바꾸는 데 제가 작은 물방울 하나쯤은 된 거 같아요. 지금도 집을 나설 땐 노란 기억팔찌를 손목에 차고 옷깃에도 노란 리본을 달아요.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할 겁니다. 잊지 않을 겁니다.”

▲ <사진제공 = 김서진양>

노란리본 김서진(17·여)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은 제가 중학교 1학년이었고 처음 뉴스를 본 건 등교하기 전 아침이었습니다. 등교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텔레비전 앞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옆에서 봤더니 침몰하고 있는 배가 화면을 통해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집을 나오면서 ‘제발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으면 좋겠다.’ 했던 제 바람과는 다르게 304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로 세월호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내가 희생자의 가족이었다면 도대체 무슨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사무치게 슬펐습니다.”

“이 시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방학선택과제로 쓴 시입니다. 1년이 넘은 시간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과 ‘하는 척’ 만 했던 정부의 무책임함,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저에게 “아직도 이거(노란리본) 하고 다니냐?”, “이게 유행이야?” 등의 말을 주변에서 하는 것에 너무 화가 나서 세월호를 주제로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기억해달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시화가 뽑힐 줄은 전혀 몰랐는데 선정되어 전교생들에게 세월호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킬 수 있게 되어서 뿌듯했습니다. 그림에는 소질이 없어서 뭘 그릴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간단하게 제가 뉴스에서 본 세월호의 모습을 그리고 희생자분들을 바다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별로 표현했습니다. 또 가장자리의 모은 두 손은 실종자분들의 무사귀환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거의 4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세월호를 떠올리면 눈물이 고이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뿐이라 죄송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보다 많은 분들께 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연재를 마치며

▲ <사진제공 = 투데이신문 강지혜 편집국장>

노란리본 강지혜(37·여)

“저는 가라앉은 배를 떠올릴 수 있는 힘도, 참사의 책임 소재를 물어 처벌을 내릴 수 있는 힘도,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저는 누군가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무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입니다. 아픔을 잊지 말자,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자. 노란리본은 저의 다짐입니다.”

▲ <사진제공 =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노란리본 김태규(30·남)

“기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리본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노란리본을 달고 있다는 이유로 전철 등에서 어르신들께 ‘훈계’를 듣기도 하고 취재현장에서 폭행을 당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항상 노란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추모’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자본을 인명보다 중히 여기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세월호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기자는 약자의 편을 드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들과 같이 권력과 자본에 짓밟힌 약자의 편을 드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옳은 일입니다.”

▲ <사진제공 =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노란리본 전소영(26·여)

“기자의 왼쪽 팔목에 노란팔찌가 함께한지도 어느덧 4년에 가까워졌습니다. 씻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일을 할 때도 단 한순간도 노란팔찌를 뺀 적이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날의 비극으로 저 하늘의 별이 된 희생자들에게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았음을, 세월호를 둘러싼 모든 의혹이 풀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그날까지 늘 함께할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와 같은 많은 노란리본들이 끝을 알 수 없는 이 싸움에 끝까지 동행해줬으면 좋겠습니다. 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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