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브리엘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의 핵심은 에이즈”
윤가브리엘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의 핵심은 에이즈”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8.01.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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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동성애자·HIV/AIDS 감염인·장애인 ‘3중 소수자’
성소수자·감염인 죄악시하는 시민의식 개선돼야

장애인 ‘불편한 존재’로 만드는 부당한 사회
에이즈에 대한 억압이 오히려 감염률 높여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해 12월 1일,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과 한국가족보건협회는 에이즈의 날을 맞아 기념행사를 열었다. 표면적으로는 ‘에이즈 예방’ 행사였으나 실제로는 보수 기독교 단체가 참석한 반(反)동성애 행사였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이날 행사장을 찾아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발언 기회를 요청했고, 주최 측은 발언을 허락했다.

1분의 발언 기회를 얻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는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예방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에이즈가 공포를 조장하고 예방했지만 오히려 확산됐다. 예방의 지름길은 감염인 인권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예방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HIV/AIDS 감염 당사자이며 성소수자, 시청각 장애인이다. 이날 그의 발언은 절규에 가까웠다.

윤 대표는 지난 2000년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았다. 그는 감염 사실을 알게 된 후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가브리엘은 그의 세례명이다.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천사’라는 뜻의 가브리엘처럼 윤가브리엘은 HIV/AIDS 감염인들의 인권실태를 세상에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발언 당시 상황은 어땠나.

“당시 발언할 계획을 갖고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기습시위를 하기로 했는데, 현장에서 쫓겨날 것에 대비해 발언 기회를 요청하기로 했다. 준비된 발언은 아니었지만 겨우 발언기회를 얻어 평소 보수 기독교의 혐오 발언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얘기했다.“

―당시 현장에서 HIV/AIDS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에 에이즈 관련 사건·사고가 굉장히 많았다. 마침 당시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 참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단체의 활동가들이 내 감염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보건의료단체연합이란 곳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보건포럼’에서 한국의 문제에 대해 발언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사람들 앞에서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됐지만 이 문제에 대해 아무도 나서서 잘못된 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나라도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분노가 HIV/AIDS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시각장애 2급, 청각장애 3급의 장애를 가진 그는 에이즈 투병 중 2006년 거대세포바이러스(CMV)에 감염돼 오른쪽 눈이 실명되고 왼쪽 눈도 사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게 됐다. 또 같은 해 만성 중이염으로 인해 청력도 많이 약해져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다. 재작년에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최근 증상이 더 악화됐다고 한다.

▲ 지난 2008년 12월 1일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 거리행동에서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 나누리+>

사춘기 시절 시작된 성 정체성 고민

윤가브리엘은 혼외자로 태어났다. 엄하고 폭력적인 아버지는 본부인에게 그를 키우게 하면서도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본부인인 어머니와 이복형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그에게 해소했다. 형들과 어머니는 아버지가 계실 때만 위해주는 척하다가 아버지가 안 계시면 돌변해 때리기도 하고 벌을 주는 등 그를 괴롭혔다. 폭력적인 상황을 견디다 못한 그는 공장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공장에서 일하면 월급도 3만원이나 주고,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말을 듣고 집을 나와 살기로 결심했다. 그가 중학교 2학년에 진학하던 1982년의 이야기다.

―청소년기에 집을 나와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당시에는 나 같은 어린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가 일했던 봉제공장 같은 경우도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상경한 친구들이 ‘시다(보조)’ 일을 많이 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한 것인데, 공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그런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다만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것을 몸으로는 느끼고 있었다.”

―처음 성 정체성을 고민한 시기는.

“사춘기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성인잡지를 보면 친구들은 여성의 나체를 보고 열광하는데 나는 남성의 나체를 보고 더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면서 내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장 기숙사에서 동성 동료들과 어울려 살면서 내게 조금이라도 잘 해주는 형들, 멋있는 형들에게 마음이 가고 좋아하기도 했다. 그때는 ‘나는 왜 친구들과 다를까’라는 생각에 너무 힘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언젠가 국어사전을 찾다 ‘동성연애’라는 단어를 보게 됐는데 이 단어를 읽는 순간 나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런데 뜻풀이가 ‘동성 간에 하는 변태적인 성행위’라고 돼 있었다. 이를 보고는 ‘그럼 내가 변태인가’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다고. 성소수자들의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다. 잡지에서 게이 커뮤니티를 알게 돼 동성애자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연애도 했다. 그때까지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고 있었다. ‘노력하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는데, 내가 이상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나는 변태였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했다. 지금도 손목에 흉터가 남아있다. 차별과 혐오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건 이미 국내외 연구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으니 스스로를 부정하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을 ‘치료 가능한’ 대상(정신질환자)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그들은 ‘아이들이 동성애를 접하게 되면 그 영향으로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거나 ‘치료를 통해 동성애를 끊고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왜곡된 주장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치료를 통해 바뀌지 않는다.”

―커밍아웃하는 성소수자들에게 비성소수자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상처를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지.

“성소수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가 커밍아웃이다. 보통 커밍아웃하기 전에 신뢰감이 어느 정도 형성된 친구에게 동성애에 대한 영화나 사건 얘기를 슬쩍 꺼내면서 이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본다. 그리고 나서 ‘얘기해도 되겠다’ 싶으면 그때 정체성을 밝힌다. 성소수자가 자신에게 커밍아웃한다면 그만큼 본인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친구가 나를 믿고 있구나’라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네가 원한다면 비밀을 지키겠다’고 말해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에이즈 예방 위해 인권 개선부터 이뤄져야

성소수자들은 자신을 드러내놓고 생활하기 어렵다. 윤 대표 역시 HIV/AIDS 인권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몇몇 친구들에게만 알렸을 뿐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과 압박 때문이다. 이는 성소수자들을 에이즈에 더 취약한 상황으로 내몬다. 때문에 윤 대표는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말한다면.

“편견이나 혐오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차별이다. 성소수자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낮에는 이성애자처럼 살다가 밤에, 특정 공간에서만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동성애는 죄가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사회적 차별 때문에 정체성을 숨기고 스스로 죄악시한다. 사회의 억압이 정체성, 욕구와 충돌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즈를 예방하는 등 안전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긴 매우 어렵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조건이 인권적으로도, 에이즈에도 취약한 상황에 내모는 것이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의 핵심이 에이즈다. 에이즈의 원인을 동성애로 모는 것은 에이즈를 예방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계상으로도 감염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방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에이즈 진단 후 동성애자인권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3년 아시아 보건포럼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나는 HIV/AIDS 감염 사실을 알기 전엔 성소수자로서 직접적인 차별을 겪진 않았다. 정체성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염 사실을 알고 나서는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감염인으로서 차별을 겪다 보니 당연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직면하게 됐다. 포럼에서 발언한 이후 동인련과 민중의료연합, 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 등이 모여 논의를 하던 중 같은 해 에이즈 인권운동을 위한 연대체 ‘나누리+’를 조직하고 활동하게 됐다.”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는 어떤 차이가 있나.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동성애자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거나 ‘에이즈는 신이 내린 천형(天刑)’이라는 등의 말로 성소수자를 공격한다. 그러나 이는 HIV/AIDS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말이다. HIV는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를 뜻한다. HIV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고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를 HIV 감염이라고 한다. HIV에 감염되면 면역세포인 CD4 양성 T-림프구가 파괴돼 면역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 각종 감염성 질환과 종양이 발생한다. 이 상태를 에이즈라고 한다. 즉, 에이즈에 감염되는 게 아니라 HIV에 감염되는 것이고 HIV에 감염돼 병증이 나타나는 상태가 에이즈인 것이다. 전에는 에이즈가 죽을병이었지만, 지금은 약이 개발돼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 정도다. 약을 꾸준히 투여하고 성관계 시 콘돔을 사용하면 100%에 가까운 예방을 할 수 있다.”

―HIV/AIDS로 인한 차별 경험이나 주변의 사례가 있다면.

“직장 건강검진에서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온 사람이 해고된 사례가 있다. 이를 알게 된 직장 상사가 처음에는 “계속 일 할 수 있겠냐”며 좋게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근무하겠다고 하고 일하던 어느 날 갑자기 창고 관리직으로 발령이 났다. 그래도 참고 버텼는데 결국 상사가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얘기해서 퇴사했다고 한다. 형식이 퇴사일 뿐 사실상 해고다. HIV/AIDS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상사가 알게 되면 소문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직장 내에서는 따돌림이 있을 것이고, 모든 사회적 관계가 끊기기 때문에 감당하기 힘들다. 이밖에도 대학병원에서 혈액 투석을 거부하거나 개인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거부하고, 심지어 국립재활원에서도 감염인의 입원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작년과 올해만 해도 에이즈를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 인권위에 진정돼 조사 중인 사례가 4건이나 있다.“

▲ 지난해 11월 6일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국립재활원 HIV 환자의 입원 거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 나누리+>

장애인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돼야

2000년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은 윤 대표는 투병 6년째 되던 해 시청각 장애를 갖게 됐다. 치료약에 대한 부작용으로 다른 치료약을 구해야 했지만 너무 비싸 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청각 장애를 갖게 된 후 그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장애인을 ‘불편한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장애를 갖게 된 계기는.

“2006년 기존에 쓰던 치료약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때 면역력이 떨어져 거대세포바이러스(CMV)에 감염됐다. 당시 ‘푸제온’이라는 약을 구해야 했는데, 이게 너무 비싸서 구할 수가 없었다. 제때 치료하지 못해 오른쪽 시력을 잃게 됐고, 왼쪽 눈마저 잘 보이지 않게 됐다. 또 그해 만성 중이염이 심해져 청력마저 잃었다. 푸제온을 만든 회사인 로슈는 1년치 약값으로 3200만원을 요구했다. 정부는 2500만원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로슈가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다. 다행히 외국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푸제온을 투여할 수 있게 돼 치료를 이어가게 됐지만 이미 시력을 잃은 뒤였다. 이 약을 구하지 못해 죽는 감염인이 한 해 전 세계에서 150만명이다. 국제기구나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저개발국가 중심이고, 이마저도 전 세계 감염인의 절반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청각장애를 갖게 되면서 겪은 어려움이나 차별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장애인을 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도로나 보행로의 턱을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누가 들어주거나 밀어주는 등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갈 길 바쁜 사람들이 장애인을 선뜻 도와주겠나. 장애인을 돕지 않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이 도움을 요청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문제다. 다른 예로 기차를 이용할 때, 장애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서비스를 요청하면 직원이 와서 좌석까지 안내해 주고, 내릴 때도 택시나 버스를 타는 곳까지 안내하는 서비스다. 이런 얘기를 비장애인들에게 하면 “좋다”거나 “시스템 잘 돼 있네”라고 하는데, 이는 ‘좋은’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장애인을 위해 굉장히 특별한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장애인을 스스로 행동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스템 자체가 결국 차별이다. 비장애인이 스스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처럼 장애인도 스스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윤가브리엘 대표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차별금지법 등 제도적 장치 필요

윤 대표는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때문에 한국은 소수자가 살기 어려운 사회라고 말한다. 

그는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막기 위해 인권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성소수자·장애인과 같은 소수자들과 어울리며 함께 사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누리+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혐오는.

“차별과 혐오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보수 기독교를 대표로 하는 그들은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시키려고 한다. 이를 추진하는 단체도 있는 것으로 안다. 게다가 보수 정치세력과 결탁해 더 공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후보들을 불러다 대화도 할 텐데, ‘퀴어문화축제 장소사용 불허하라’는 등의 주장을 하고 약속을 받아낼 것이다. 자본과 권력을 갖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국은 소수자들이 살기 어려운 나라인가.

“그렇다. 차별은 결국 교육의 문제다. 우리는 성소수자, 장애인, HIV/AIDS 감염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교육받지 못했다. 권력이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인권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얘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된다. 모두가 동등한 시민이고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에이즈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질병 자체가 아니라 차별 때문이다.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자살을 택하는 이유도 사회적 차별과 이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다. 약만 잘 먹으면 살 수 있는데 자살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그러나 감염인들은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고 살아가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막을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에이즈만 얘기하자면,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감염될 일이 없다. 수혈로 인한 감염의 경우도 2005년 이후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는 검사 기계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일이 발생했지만, 지금은 모두 최신 기계로 교체돼 수혈로 인한 감염은 이제 없다. 유일한 감염 경로는 성관계인데, 콘돔을 사용한다면 예방된다. HIV/AIDS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이성애자도 감염될 수 있다. 동성애자가 걸리든 이성애자가 걸리든 같은 문제다. 동성애자만을 문제 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조금만 에이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바른 정보들을 찾아본다면 막연한 공포를 해소하고 예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