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란원서 만난 미혼모 이야기

▲ ⓒ투데이신문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 17살 소녀
“시간을 돌려도 같은 선택할 거예요”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올해로 21살이 된 세 아이의 엄마 김예지(가명)입니다”

화장기 있는 얼굴이 아직은 조금 어색한 21살의 예지씨의 방 한편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아기들 장난감과 옷들이 정리정돈돼 있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옷걸이에 걸린 아이 옷을 꺼내 보여주며 “예쁜 옷이 요즘 너무 많아요. 마음 같아선 다 사주고 싶어요”라는 예지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슬하에 4살짜리 딸 해나(가명), 2살 아들 해준이(가명), 그리고 오는 2월에 태어날 막내아들까지 삼 남매의 엄마인 예지씨를 사람들은 ‘미혼모’라고 부른다.

▲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세 아이의 아빠는 모두 다르다. 첫째 해나를 임신한 건 예지씨의 나이 17살 때였다. 아이 아빠인 당시 남자친구는 그보다 한 살 많은 오빠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소개로 만나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두 사람은 1년여의 교재 끝에 해나라는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됐다. 처음에는 임신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예지씨의 임신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그의 부모님이다. 생리를 하지 않는 딸을 이상히 여긴 어머니는 그의 손을 잡고 산부인과로 향했고 임신 6개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기 원한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지원은 해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남자친구도 “공부도 해야 하고 놀고도 싶다. 너희 부모님께 알리면 알아서 해주실 거다”라며 예지씨를 외면했다.

해준이는 18살에 만나던 6살 연상의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생겼다. 그는 해나를 참 예뻐했다고 한다. 예지씨는 그런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더욱 마음이 커졌다.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 사이에 해준이가 생겼다. 그런데 해나를 한없이 예뻐하던 그는 임신 소식에 돌연 태도가 변했다. 내 아이는 소중하지만 해나까지 책임질 순 없다는 것.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자식이 없던 예지씨 입장에서는 그와의 만남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20살, 해나와 해준이를 기르다 만난 8살 연상의 셋째 아이 아빠는 예지씨와 마찬가지로 홀로 아이를 기르던 돌싱(돌아온 싱글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는 예지씨와 알고 지내던 언니와 바람이 났다. 그러던 중 임신 소식을 알게 됐다. 현재 그와의 만남은 끝이 났지만 아이에 대한 소식은 종종 주고받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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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씨의 임신 소식에 주변인들은 아이를 지울 것을 권유했다. 예지씨가 양육을 결심했을 때도 더 나은 가정에 입양 보내는 것이 아이와 엄마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며 만류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할 나이의 예지씨 역시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해나를 출산하기 전에는 출산 후 입양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막상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느껴지며 아이를 차마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미혼모의 길을 선택했다.

예지씨의 굳건한 의지와는 달리 세상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없던 예지씨는 해나와 해준이 모두 미혼모 시설의 도움을 받아 출산했다. 셋째를 임신하고는 해나와 해준이 때문에 미혼모 시설 입소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찜질방을 전전하던 예지씨를 받아준 곳은 ‘애란원’이었다.

애란원은 출산 전후 임신으로 위기에 놓여있는 미혼모에게 기본적인 숙식과 분만, 산후조리, 양육을 지원한다. 그리고 임신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미혼모들을 위해 위탁교육 시설인 ‘나래대한학교’에서 학업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년 6개월의 애란원 생활을 마치고 나면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애란영스빌’ 같은 2차 시설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애란원에서는 미혼모들이 시설을 떠나 사회로 나갔을 때 필요한 부분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 예지씨가 애란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공간  ⓒ투데이신문

애란원에 입소한 지 한 달 남짓 된 예지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미혼모 20여명과 함께 살고 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고충을 잘 아는 그들은 서로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고 있다.

“처음에 제가 애란원에 왔을 때 먼저 생활하고 있던 분들이 무척 반겨줬어요. 서로 사정을 제일 잘 아니까 도움을 많이 주려고 하죠. 다들 만삭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미혼모가 출산하고 돌아오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줘요. 외롭지 않고 기댈 사람이 있다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예지씨는 엄마가 되고 나서 스스로 어른이 돼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 저처럼 일찍 아이를 낳아 기르는 친구들이 늘었어요. 저희끼리 말하길 엄마가 되면서 철들었다고 해요. 그 전에는 연락하면 거친 언어로 노는 얘기 하기 바빴지만 이제는 아이를 기르며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에 바빠요. 어른이 돼가는 과정인 거 같아요.”

▲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애란원 가족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나 먹고사는 문제다. 부모님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 다행이지만 홀로 세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예지씨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은 시설과 국가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시설을 떠나 온전히 자기만의 힘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때문에 예지씨는 현재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예지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해나 어린이집을 등록하려는데 왜 혼자 아이를 키우는지, 아이 아빠와 같이 살지 않는지에 대해서 캐묻더라고요. 그리고 해나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 날이었어요. 보통 학부모들 연령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였어요. 아무래도 제가 어려 보이니 ‘언니가 왔네, 엄마가 바쁘신가 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엄마예요’라고 밝혔죠. 그랬더니 대놓고 비난하진 않지만 ‘남편하고 너무 잘 맞아 일찍 결혼했나 보네’, ‘엄마가 너무 어리다’라고 수군거리더라고요. 웃어넘겼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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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향한 비난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에 감수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타이틀이 주홍글씨가 되지 않을까 걱정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굳이 미혼모라는 사실을 밝히진 않아요. 아이들이 걱정스러워서요. 내년이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텐데 혹시나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걸로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저는 괜찮지만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지씨는 아이를 낳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했다.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그가 진짜 엄마로 느껴졌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있다. 특히나 청소년 미혼모에 대해서는 ‘무책임’과 ‘부주의’ 등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현실. 하지만 이날 기자가 만난 예지씨는 그 누구보다 책임감 있는 훌륭한 엄마였다. 나이와 책임감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예지씨를 통해 깨우쳤다.

아이들이 건강하게만 자라고 자신은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다던 그의 소박한 꿈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예지씨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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