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테니스의 부침(浮沈)과 그 문화적 의미
[칼럼] 테니스의 부침(浮沈)과 그 문화적 의미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1.26 11: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요즈음 테니스 선수 정현이 호주 오픈에서 세계 톱 랭커들을 차례로 이기고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5일 목요일 현재까지의 정현의 이번 호주 오픈 성적을 고려하면, 정현은 한국 테니스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르고, 가장 많은 상금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성적뿐만 아니라 정현의 냉정한 경기 운영, 지칠 줄 모르는 체력, 승리한 뒤의 겸손함과 위트, 따뜻한 인성을 보여준 인터뷰는 많은 칭송을 받고 있다.(인터뷰를 영어로 한 것이 이러한 모습을 더 부각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정현 선수와의 “간접적”인연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로 정현 선수가 잠시 재학했던 학교가 현재 필자가 재직 중인 상지대학교이다. 그래서 학교에 오고 가는 길에 정현 선수와 관련된 각종 홍보물을 본 기억이 있다. 정현 선수의 팬인 필자에게 정현 선수가 올리고 있는 성적은 우리나라 테니스 선수가 거둔 성적 중 가장 좋은 성적인 것은 물론이고, 그 범위를 아시아 국적, 혹은 아시아계로 넓혀도 손가락 안에 드는 굉장히 감격스러운 결과이다.

우리나라 선수나 아시아 국적 혹은 아시아계 선수가 테니스계에서 활약할 수 없는 것은 테니스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테니스가 프랑스와 영국에서 시작된 운동이고 수도사와 귀족들의 운동이다. 그렇다보니 오랜 시간 식민지를 겪었던 아시아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접하기 힘든 운동이었다. 그 결과 테니스의 기술과 전략 발전은 유럽이나 미국의 백인들에게 맞게 발전할 수 없었고, 경기 방식 역시 그들이 주도했고, 아시아 선수들이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시아 테니스 선수들은 국제 테니스 무대에서 항상 변방이었다. 심지어 정현 선수 전까지 가장 순위가 높았던 이형택의 경우 US오픈에서 16강에 진출했을 때, 처음에는 다른 선수들이 연습 상대조차 되어주지 않았는데, 1회전을 통과하자 그 다음부터 다른 선수가 먼저 연습을 제안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정현 선수와의 두 번째 “간접적” 인연은 필자 역시 2010년까지 약 5~6년 동안 테니스를 열심히 쳤던 테니스 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현 선수가 테니스 유망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할 때부터 기대를 가지고 응원했다. 실제로 테니스라는 운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였다. 필자가 어린 시절이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학교에 테니스 코트가 있었고, 심지어 아파트 안에서 테니스 코트를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필자의 경우 강원도 횡성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이곳에도 특별활동으로 테니스부가 있었고, 교사와 직원이 테니스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에 테니스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0년을 전후해서 미국 선교사와 의사에 의해서였고, 이어서 미국 대사관에 처음으로 테니스 코트가 생겼다. 국민생활체육회가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1908년 4월 탁지부(현재 재경부) 관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회동구락부를 조직한 뒤 테니스 코트를 마련해 경기를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테니스의 시초이며. 1970년대 테니스 붐이 일어나면서 테니스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고 전한다. 필자가 어린 시절 봤던 광경은 1970년대 테니스 붐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테니스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필자가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던 2005년쯤에 대학원에서 테니스를 쳤다. 그러나 이 코트는 나중에 대학원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없어졌다. 그리고 테니스 코트를 찾아서 많은 곳을 물색했으나, 테니스 코트의 관리가 매우 어렵고, 테니스 코트를 지을 공간에 주차장과 상가를 짓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아파트에서 테니스 코트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공립 체육 시절에 테니스코트가 있었으나, 테니스라는 운동이 외부인이나 초보자가 진입하기 쉽지 않다는 특성 때문인지 정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세월이 더 흘러서 2010년 이후 잠시 테니스를 치러 다른 대학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서 코트에는 이끼가 끼고, 잡초가 자라서 거의 잔디코트 수준이 되어 있었다. 또한 출근 중에 지나치는 아파트 안의 테니스 코트에는 “수강자 모집”이라고 적힌 낡은 홍보물 하나만 펄럭이고 있었고, 그나마 코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테니스코트가 없어지는 모습은 다른 스포츠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 때 상가마다 당구장이 있었고, 커다란 볼링핀 모양의 구조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탁구장 두 세 개는 있었고, 태권도장과 권투 도장은 무척 많았다. 그런데 당구장과 탁구장 자리를 PC방이 대신하다가,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PC방도 줄어들었다. 지금은 PC방과 당구장, 탁구장은 어느 정도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권도장이나 권투 도장의 경우 주짓수나 종합격투기 훈련장, 헬스 클럽이 그 자리를 많이 대신하고 있다. 어떤 운동이 더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테니스코트보다 주차장과 실내 운동 시설, 상가를 더 좋아하게 되는 모습, 태권도나 권투 대신 새로운 격투기가 주목받기 시작하는 모습, 당구장에서 짜장면이나 커피를 시켜 먹는 대신 PC방에서 라면을 먹는 문화의 변화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유행의 변화 속에서 정현 선수가 거두는 성적은 분명 가치가 있을 것이다. 향후 그의 발전이 궁금해진다.


인기기사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