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몇 년 전 여름밤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어느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검은 풍경들이 스쳐지나갔고, 나는 그 위에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보았던 해외 카툰 하나를 슬며시 띄워보았다.

카툰은 위아래 두 개의 장면으로 이뤄졌다. 위에는 Juan이라는 사람의 SNS 대문 캡쳐와 함께 무려 3,450명의 가상 세계의 친구가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래에는 그의 장례식 모습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이는 오직 현실 세계의 친구 한 명뿐이었다. ‘현실은 키보드의 세계 바깥에 존재하고 있다’는 냉소적인 메시지였다.

그런데 나는 그날 밤 SNS를 통해 알게 된 분의 아버님, 그러니까 당사자도 아닌 그분의 아버님 장례식에 가고 있는 중이었다. 좀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SNS를 통한 인간관계의 형성은 이제 한 때의 유행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오프라인과 온라인, 입체적 관계와 평면적 관계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한 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보여주는 자신의 모습은 이제 일정 수준을 넘어버린 지 오래이다. 아예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그 세계로 일단 들어서게 되면 오프라인의 모습을 온라인에서 세탁하는 것 역시 더 이상 쉽지 않다. 물론 현실과 가상의 자아를 완벽하게 분리한 뒤에 타인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미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본래, 자신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지 않으며, 현실에서 알게 된 지인이라 해서 그의 모든 면을 알고 지내는 것도 아니다. 자아의 선택적 발현과 단면적 인식은 인터넷 공간만의 특성이 아닌 셈이다. 여담이지만 사람에 대한 평가의 옳고 그름은 대개 그 사람이 얼마나 자신을 드러냈는가보다, 평가하는 이의 혜안이 얼마나 깊고 넓은가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SNS에서의 관계는 더 이상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나 하위개념이 아니다. 그곳에서의 논쟁이나 악담, 따돌림 등으로 인해 불쾌해 하는 이에게 “왜 굳이 인터넷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래”라고 말을 건네 보았자 그것은 당사자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감정들은 모두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집에서 혼자 끙끙대며 앓고 있던 때였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통화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전화를 받았다. 몸이 좀 좋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상대방은 통화하기 힘들 정도로 아픈 건가, 라고 말을 꺼낸 뒤에 이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다는 듯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만 줄줄 이어갔다. 머리가 멍한 상태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 내내, 내가 그동안 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가져왔던가, 이 서운한 감정은 혹여 나의 예민함 때문은 아닐까, 여러 모로 생각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 기운을 약간 차린 뒤에 페이스북에 당시의 몸 상태를 조심스레 올려보았다. 곧바로 많은 분들께서 진심어린 걱정이 담긴 댓글을 달아주셨다. 그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실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내가 느꼈던 감정들 중에서 오프라인에서의 서운함만이 진짜 나의 것이며, 온라인에서의 따스함은 허상이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온라인 관계의 단절은 여전히 매우 가벼운 방식으로 이뤄진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상대의 세계를 차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단절하는 사람이나 단절을 당하는 사람이나 그 행위가 서로에게 전해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몇 년 전 여름밤에 문상을 갔던 그분과의 관계는 그로부터 얼마 뒤에 끊어졌다. 몇몇 사안에 대한 가치판단의 차이로 인해 일방적으로 차단을 당했다. 나는 그 정도 입장 차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분께는 그럴 수 없는 문제였던 것 같다. 나의 이견이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때까지의 교류에 비춰보면 허망한 단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접속의 무게가 상당했던 것 같다. 그 무게 덕분에 관계의 끈 역시 팽팽히 당겨지게 되었고, 그렇기에 일순간에 끊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느슨한 관계는 오히려 쉽게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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