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성우, 방송 MC, 수필가▷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오늘은 레드라이트다. 스스로의 비겁을 고발하는,

성우도 연기자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간혹 있지만 내 직업인 성우는 연기자가 맞다. 나도 한때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했었고 현재는 연예인 노조 소속 연예인이다. 그런 내 눈에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자기 힘으로 쟁취한 미국의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으로 보인다. 예컨대 안젤리나 졸리, 메릴 스트립 같은 여성들... 나와 같은 빛깔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비슷한 꿈을 간직하고 노력했지만 그들이 이룬 것과 나의 처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라디오 드라마 속의 여배우, 누가 들을까 싶은 프로그램의 라디오 MC...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내 처지를 처량하게 느껴본 일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을 넘어 축복에 가깝다.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어쨌든 내 눈에는 세계 최고인 그녀들조차도 21세기를 20년 가까이 흘려보내고 나서야 겨우 용기 내어 시작한 것이 지금의 <미투>운동이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남성 우위의 지배구조는 (내 생각이 아니고 21C 최고의 석학 유발 하라리가 지신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한 말이다. 남성위주의 지배구조가 이토록 오래 지속된 근본적 원인을 알 수가 없다고.) 역사가 기록된 이래 굳건히 세상의 여성들을 옭아매어 왔고, 이제 겨우 선진국의 선진 문화 속에서나 조금씩 평등의 흉내를 내어가고는 있지만... 보라,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조차도 부끄러워 침묵했던 것이 성희롱이요 성추행, 나아가 성폭력이다.

우리나라에선 서지현 검사가 첫 횃불을 들었다. 그녀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여기 저기서 <미투>를 외치고 또 지지한다. 그들의 슬로건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물론 나도 그들의 용기에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다 털어놓아도 된다고 어깨 토닥여주고 싶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는 그럴 수 없다.

왜?

나는 헐리웃 여배우도, 대한민국의 검사님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주저리 주저리 까발리고 싶은 남성들의 수준도 방송사의 이름 없는 PD이거나 오가며 만난 외주 제작사의 파리 목숨 사내들이다. 혹은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누군가이겠지. 내가 아무리 악다구니를 써도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아니 할 무명씨들... 그러니 나는 별 효과도 없을 일에 내 불쾌한 과거를 돌이켜 들춰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느낌이... 과연 나만의 것일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학원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언론홍보대학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대학원엔 방송과 광고쪽 사람 외에도 각 기관, 예를 들자면 국정원, 경찰, 은행, 대사관 등에서 홍보 업무를 보는 사람들도 꽤 재학하고 있었다. 그중 내가 ‘형’이라고 불렀던, 연배가 나보다 너 댓살 위인 한 공무원 동기생이 술자리 2차였던 신촌의 어느 노래방에서 나를 강제로 자기 무릎 위에 앉히려고 한 일이 있다. 원래 나쁜 사이가 아니었기에 웃으면서 “왜 이래요, 형!”하며 한두 번 만류했지만 덩치가 산만한 그 남자는 강제로 나를 무릎에 앉히고야 말았고 그대로 튕겨 일어난 나는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고 큰 소리로 화를 냈다. 그리고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 내 편을 들어주리라 기대하면서. 그러나, ‘형님 그러지 마세요’ 하고 말리는 시늉이라도 했었던 나머지 동기 중 그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오히려 나를 힐책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흥겹던 판을 깬’ 억센 여자일 뿐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공중파 PD가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으면 자기 부서 전체에서 일을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을 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젊고 예뻤던 20여 년 전 얘기다. 모든 것이 그의 말씀대로 되었다. 나는 그 부서에서 일하지 못했다.

글쎄... 그의 이름과 소속을 공개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저런 것들이 부끄럽고 두렵다.

대체 내가 어떻게 보여졌길래 그런 말이나 들었을까...

당시 그 얘길 듣고 분노한 친오빠는 그 문제를 언론에 터뜨리자고 했었다. 그때도 지금도 방송기자인 오빠에게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현재는 방송기자협회 협회장님이시다)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나는 어디에서도 밥벌이를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그 일이 있은 후 6~7년쯤 후, 정말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던, 한 원로 PD에게 그 놈의 만행을 고자질한 적이 있다. 나에게 해코지를 한 그 놈과는 다른 사람이라 믿었기에, 그저 누군가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에 얘길 꺼냈던 건데... 그 대화 이후, 나는 다시는 그 원로 PD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 분 어머님 장례식장에 찾아갔을 때도 상주인 그는 잠이 들었다는 핑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심한 그 어르신에게 나는 언제 어디서 무슨 시한폭탄을 터뜨릴지 모르는 위험한 여자였던 모양이다. 비록 자기는 현업을 거의 떠났고 그 후배 PD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런 얘기를 떠드는 여자는 피해야 할 골치 아픈 존재라고 여겼던 거겠지.

결국 이렇게 떠벌이고 있지 않은가!

글쎄... 설마 자기도 비슷한 제안을 하려던 참이었을까? 네가 나에게 잘 보이면 후배들이 만든 금줄을 내가 풀어줄 수도 있는데. 하고?

아니 아니, 그 어른은 그 정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믿는다.

어찌됐든, 혹시라도 위 등장인물들께서 이글을 읽는다면 본인들만큼은 자기 얘기란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대로 어떤 핑계로건 나를 음해하고 다니겠지.

명예훼손이라고, 자기가 그렇게 했다는 증거가 있냐며 소송을 걸어오는 건 아닐까?

나는 이 글 속에서 그들의 이름 한 자 밝히지 않았는데?

아... 이것이 현실이다.

내가 이렇게 겁 많고 소심한 여자라는 것.

나는 <미투> 대열에 합류할 용기도 없고,

설사 한다 해도 아무 파급력이 없을, 그럼에도 그 피해만큼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올, 그냥 평범한 여자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 땅에

수많은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

그나마 나는 직업 특성상 조직 생활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 험한 꼴들을 겪고 난 후엔 좋은 사람들만 선택해서 일할 수 있었다.

조금 적게 버는 건 괜찮았다. 굴욕을 견디는 것 보단 나았으니까. 하지만 조직 생활을 하는, 그래서 매일 매일 그 불쾌한 상대의 얼굴을 억지웃음으로 마주해야하는 여성들은 어떤 심정일까...

힘없는 여성들은 알고 있다.

나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내 밥줄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것을.

오늘 나는 나를 고발한다.

<미투>할 수 없는 나의 비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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