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추석과 함께 흔히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일컬어지는 설이 다가오고 있다. 많이 알려진 것과 같이 음력설은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 근대화를 막는 사라져야 할 구습으로 낙인찍혀서 제대로 명절 대접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음력설을 쇠는 것은 단속의 대상이 되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등 음력설을 쇠었다. 정책에 대한 의도적인 저항이었을 수도,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했던 의례를 계속 수행한 것일 수도, 돌아가신 조상이 신정을 모를 수도 있다는 비과학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의도가 무엇이었던지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민속의 날”, “구정등의 이상한(?) 용어들을 거쳐서 결국 설날로 정착되었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아니더라도 소위 어르신의 생일을 음력 생일로 챙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점집이나 토정비결로 한 해 운세를 보고나 점을 칠 때, 음력 생일을 알면 양력을 음력으로 환산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양력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에게 음력은 아직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하다못해 달력을 보면 5일에 한 번씩 작은 글씨로 음력이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역사학자 전우용은 그 기원을 구한말 을미개혁에서 찾고 있다. 을미개혁 당시 정부는 음력이 아닌 양력을 사용할 것을 공포하였다. 그런데 음력을 사용해왔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양력을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종은 고심 끝에 양력과 음력을 함께 사용할 것을 결정했다. 즉 지금과 유사하게 양력을 사용하되 음력 날짜도 5일 단위로 달력에 함께 쓸 것을 결정한 것이다.

지금이야 휴대전화나 시계를 통해서 시간과 날짜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연말이면 은행이나 단골 업체에서 만든 달력을 쉽게 구하지만, 이러한 것이 없었던 시절에는 시간을 파악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찰이나 종각에 있는 종소리를 듣는 것으로, 그리고 하늘에 태양이 떠 있는 위치를 통해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전에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가 뜨면 일하고 지면 귀가하면 되는데, 굳이 정확한 시간을 알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근대화가 거듭되면서 사람들이 시간을 알 필요가 있었고, 시계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간을 알고 시간을 지키는문화가 정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한동안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사람들은 시간 좀 내줄래?’, ‘시간 있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우용은 일련의 현상들을 일컬어서 시간을 소유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하였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것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 당장 시간은 얼마 전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도,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문재인 현 대통령에게도, 필자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고, 똑같이 흘러간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사가 흘러가면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났고, 전등의 발명으로 밤에도 불을 켜고 무엇인가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소유한다는 것은 과거에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선사시대부터 시간을 아는 것은 하늘의 후손들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고, 달이 차거나 기울고, 별자리가 회전하는 모습 등 하늘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서양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1년을 계산하는 서기가 탄생했다. 또한 중국의 황제는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달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황제의 특권이었다. 조공으로 번방(藩邦)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우리나라는 매해 동지 때마다 사절단을 보내서 중국 황제가 만든 책력을 받아왔다. 그리고 고대 천문대는 하늘과 최대한 가깝게, 즉 높이 만들어야 되었고, 그러한 천문대는 세속 권력만이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을 고려했을 때 세종이 앙부일구(仰釜日晷, 해시계), 자격루(自擊漏, 물시계)를 만든 것은 애민(愛民)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농업 발전을 위한 것 이외에도, 굉장히 독자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이라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이제 시간은 누구나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을 소유하고 있을까? 시간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이길 순 없지만, 시간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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