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년’ 운용 우리은행 재유치 여부 촉각
금고 체제 선정 복수-단수 의견 ‘팽팽’
우리 vs. KB vs. 신한…자존심 대결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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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최근 은행업계는 기관영업 사원권 확보를 두고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자산 규모 6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주거래 은행 선정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은행들이 올 연초 ‘서울시금고’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아직 입찰 공고가 나오기 전이지만 100년 넘게 서울시금고를 운영해온 우리은행과 이에 도전장을 내민 다른 은행들의 날선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번 서울시금고를 유치전이 새내기 은행장들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어느 은행이 서울시금고지기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2조 서울시금고’ 둘러싼 은행권 경쟁 치열

지자체 금고은행은 지방자치단체(지자체)로부터 정부 교부금과 지방세 세입, 각종 기금 등을 예치 받고 세출, 교부금 등의 출납 업무를 담당한다. 지자체 시금고를 유치하게 되면 지자체의 대규모 예금 확보뿐 아니라 공무원 등 안정적 고객을 유치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중에서도 서울시의 시금고 운영 규모는 다른 지자체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이번에 서울시금고로 선정되면 오는 2019~2022년까지 4년간 서울시 예산과 정부 교부금, 지방세, 각종 기금 등을 예치 받고 세출, 교부금 등의 출납업무로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된다. 서울시의 올해 예산이 31조8000억원(기금 포함)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32조원대의 금액을 굴릴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서울시금고 은행이라는 브랜드 가치와 함께 공무원 등을 상대로 영업활동이 유리해지기 때문에 주요 은행들은 금고에 눈독을 들일 수 밖에 없다.

지자체들은 일정 기간 동안 특정은행에게 지방금고업무를 위탁하는데 은행들이 운영 계획을 포함한 제안서를 제출하면 지자체 공무원과 시·도의원, 교수,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금고은행을 최종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는 주로 은행 신용도와 지역민의 이용 편의성, 금고 업무 관리능력, 예치금 금리, 지역 기여도 등의 항목을 살펴본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지역 거점이 많은 농협은행과 지역은행들이 금고은행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나 2012년 정부가 투명성 확보를 위해 금고은행 지정을 공개 입찰로 바꾸면서 상황이 달라지게 됐다. 특히 과거 실적 등을 주로 보던 평가 기준이 운영계획 위주로 바뀌면서 금고은행 진입 문턱이 낮아짐에 따라 시중은행에도 기회가 생겼다.

현재 전국 지자체와 공공기관 주거래은행 업무를 보고 있는 은행만 따지고 보면 지자체는 농협이, 기관은 우리은행이 우세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농협이 담당하는 광역·기초자치단체는 총 21곳으로 은행 가운데 가장 많다. 광역자치단체도 인천(2금고), 경기·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세종시(1금고)까지 맡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달 중으로 금고 은행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를 낼 예정이다. 이후 참여 은행들을 상대로 심사를 거쳐 오는 3월 금고 은행이 최종 선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울시금고에 대한 열기에 힘입어 올해 입찰이 예정된 주요 지자체 금고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현재 1금고는 신한은행이, 2금고는 농협이 운영을 맡고 있는 인천시금고는 오는 7월 공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오는 8월에는 국세청의 간편사업자 부가가치세 국고수납대행을 시작으로 한국철도공사, 한국서부발전 주거래은행까지 입찰을 할 전망이다.

서울시금고 100년 독점 우리은행…이번에는?

서울시금고는 금고 진입 문턱이 높기로 유명하다.

서울시금고는 그동안 우리은행이 1915년 경성부금고 시절부터 지금까지 103년간 운용해왔다. 서울시는 과거 80년가량 수의계약으로 주거래은행을 선정하다 2000년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이 바뀌면서 2011년부터 공개입찰을 도입, 지금까지 우리은행과의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리은행의 장기 독점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해왔다.

우리은행 독점체제가 지속되면서 시중은행도 그동안 서울시금고 입찰경쟁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에도 복수금고 도입 압박이 커지고 덩달아 우리은행 독주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기대도 높아지면서 유치전 분위기도 과거에 비해 사뭇 다르다.

특히 서울시가 올해 금고 운영에서 단수 금고 체제를 유지할지 2개 이상의 복수 금고를 선정할 지에 대한 은행권의 관심이 뜨겁다.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서울시만 단수 금고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서울시가 올해부터는 복수 금고를 선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100년 넘게 서울시금고를 운용해온 우리은행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다른 시중은행들은 복수 금고 체제를 지지하는 눈치다.

복수 금고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금고를 한 곳에서만 운영할 경우 해킹이나 전산장애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금고 운영의 안정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들은 1금고(일반회계 담당)와 2금고(특별회계 담당)를 분리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금고를 분리하기에는 일반 회계와 특별회계 간 입출금이 빈번한 만큼 금고를 분리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논리를 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복수 금고제의 경우 전산 시스템을 별도로 관리하는데 추가 비용 발생 부담이 있고 자금이체 등에서 시간과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서울시금고지기인 우리은행 측도 같은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 일본, 호주 등 주요국 지자체는 모두 단수 금고를 운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수 금고가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며 “서울시 데이터 항목이 수천가지에 달하는데 이를 한곳에 모아서 운영해야 효율적이다. 그렇기에 복수 금고 체제로 바뀐다고 해도 개별로 운영할 수 없고 데이터를 통합해야 한다. 이에 따라 복수 금고 체제에 맞는 시스템을 새로 개발하고 이를 굳히는 작업이 필요한데 과연 그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우리은행이 운영하면서 고객정보가 유출됐거나 시스템이 다운되는 경우가 있었다면 복수 금고제로 운영해야한다는 주장이 타당할 수도 있는데 지금껏 100년 넘게 운영하면서 전산시스템에 단 한 번의 오류도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신임 행장 자존심 걸린 유치전, ‘수성vs.공성총력

시중은행 가운데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우리은행의 아성을 깨고 새로운 금고지기로 거듭나기 위한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금고 유치전이 은행장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특히 위성호 신한은행장에게 이번 기회가 누구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해 5년간 운용했던 경찰공무원 대출사업권을 KB국민은행에 빼앗기고 지난 10년간 자산 규모 6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주거래은행 자리도 우리은행에 내주면서 이번 서울시 금고 선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기존 개인그룹 안에 있던 기관영업부문을 따로 떼어 기관영업그룹으로 확대 개편하고 ‘영업통’으로 불리는 주철수 부행장보를 그룹 수장으로 임명하는 등 남다른 의지를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신임 행장으로 취임한 허 행장은 3년 만에 국민은행장이 부활한 만큼 올해 결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금고 유치가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관영업의 달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허 행장은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기업 부장과 동부기업금융 지점장 등을 지내면서 기관영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허 행장이 영업그룹 부행장에 오른 후 국민은행은 2016년 아주대학교병원, 2017년 서울적십자병원 주거래은행으로 선정됐고 지난해 7월에는 경찰공무원 대출까지 따냈다. 이 때문에 허 행장이 이번 금고 유치에도 성공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민은행 측은 “서울시금고 입찰에 관심이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국민은행은 채널이 많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성이 높은 게 강점이다. 또한 국민은행은 서울시 서민 지원 정책에 많은 활동을 했었고 부산, 광주와 같은 다른 지자체 금고 운영을 해 온 경험도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서울시금고 사수에 총력을 기울이는 눈치다. 우리은행 손태승 행장은 최근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서울시금고 재유치에 사력을 다해줄 것을 임직원들에게 당부한 바 있다. 손 행장도 이번 서울시금고 재유치가 취임 후 첫 번째 평가무대로 비춰지는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은 오랜 기간 서울시금고를 운영해온 만큼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서울시금고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인력만 1600여명에 달하고 운영해온 시간이 긴 만큼 자금관리 노하우도 뛰어나하다”라며 “다른 은행의 경우 선정되면 시스템을 새로 다 만들어야 되는데 우리은행은 이미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 자체 세금 수납 시스템인 이택스(Etax)까지 관리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기관 사업권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비치고 있는 상황에 누가 이번 서울시금고 전쟁에서 승리의 깃발을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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