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호. 김홍빈 作 사진제공 = 인디아트홀 공
페호. 김홍빈 作 <사진제공 = 인디아트홀 공>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여성과 남성의 젠더 권력이 역전된 이갈리아라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남성중심사회의 불평등을 드러낸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대표적인 미러링 소설이다.

이갈리아에서 여성()들은 가슴을 그대로 다 드러내놓고 다닐 수 있지만 반대로 남성(맨움)들은 치마를 입고, 성기를 가리기 위해 반드시 페호라는 거추장스러운 가리개를 걸쳐야 한다.

소년들은 그것(페호)이 끔찍하고 불편하며 페니스를 그 바보 같은 상자 속에 억지로 밀어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줌을 눌 때 특히 불편했다. 먼저 페호를 고정시키는 허리띠를 풀어야 한다. 허리띠는 치마 아래에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특히 처음에는 더듬어 찾아야 한다. 허리띠는 보통 너무 단단해서 피부를 파고들었다. 더군다나 페호가 밖에서 자유롭게 달려 있도록 아귀를 치마에 꿰매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페호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말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은 재료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이갈리아의 딸들 p.18 (황금가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저. 히스테리아 역)

페호는 여성의 브래지어를 미러링한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의 저자 게르드 브란튼베르그(Gerd Brantenberg)는 페호를 통해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브래지어 착용의 부당함을 나타냈다. 이에 기자는 브래지어를 1주일간 착용하고 강제적인 불편함을 체험하기로 했다.

남영비비안 본사매장에 걸려있는 속옷 제품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남영비비안 본사매장에 걸려있는 속옷 제품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브래지어를 체험하는 첫 날인 지난해 94, 기자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속옷 전문 업체 남영비비안의 본사 매장을 찾았다. 사이즈를 측정하고 속옷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기자는 여성 속옷이 사방에 걸려있는 곳에 있는 것이 민망했다. 대형 마트에서 속옷 코너를 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속옷 전문 매장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비안 홍보마케팅실 이정은 과장이 사이즈 측정법에 대해서 안내해줬다.

브래지어 사이즈는 밑가슴둘레와 윗가슴둘레를 측정해서 결정해요.”

기자의 밑가슴둘레(왼쪽)와 윗가슴둘레(오름쪽)를 측정하는 모습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기자의 밑가슴둘레(왼쪽)와 윗가슴둘레(오른쪽)를 측정하는 모습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설명을 들은 후 윤성운 매니저가 기자의 가슴 사이즈를 측정해줬다. 윤 매니저는 남성분 가슴사이즈를 측정하긴 처음이네요” 라며 웃었다. 사이즈 측정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이 났다. 기자의 윗 가슴둘레는 97.5cm, 밑 가슴둘레는 90cm가 나왔다. 젖가슴이 없어 컵 사이즈는 의미가 없었다.

측정이 끝났으니 이제 맞는 사이즈의 브래지어를 찾아야 했다. 윤 매니저는 “90까지 나오는 제품이 많지는 않아요라며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비비안의 경우 최대 밑 가슴둘레는 100, 컵사이즈는 G컵까지 나온다고 한다.

윤 매니저는 매장에서 가장 큰 90F 사이즈의 제품을 가져왔다. 이 과장은 밑 가슴둘레가 큰 분들의 경우 보통 컵 크기도 커요라고 말했다. 이어 가슴이 크면 어깨에도 무리가 가요. 무게감 때문에 결리기도 하고요라며 그래서 큰 사이즈를 찾는 분들은 기능성 제품을 선호하세요라고 설명했다.

기능성 제품의 경우 보통 가슴이 큰 사람들이 찾기에 흔히들 말하는 이라고 하는 패드가 들어있지 않고, 가슴의 무게를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브래지어를 둘러보던 중 화려한 디자인의 브래지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입으면 불편할 것 같고, 섹슈얼한 느낌이 드는 디자인도 눈에 띄었다. 속옷을 입었을 때 섹시하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여성들도 많겠지만, 기자는 속옷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남성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를 염두에 둔 디자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브래지어를 구입하기까지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다. 사이즈는 물론이고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을 생각해야 했다. 여기에 가격까지 고려한다면 브래지어 하나 구입하기에도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저렴한 제품도 많이 있겠지만, 브래지어 가격은 생각보다 꽤나 비쌌다. 남성은 팬티 한장만 구매하면 되지만 여성들은 브래지어도 함께 구매해야되니 속옷에 들이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남영비비안 본사매장에 걸려있는 속옷 제품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남영비비안 본사매장에 걸려있는 속옷 제품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만약 아빠가 함께 간다면 아빠와 점원은 길이와 색깔과 품질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할 것이다. 5사이즈에 B튜브를 해야 할 것인가, 6사이즈에 A튜브를 해야 할 것인가, 그들은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페니스를 갖고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양 그의 치수를 재면서 의논할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 p.18(황금가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저, 히스테리아 역)

설명을 모두 들은 후 기자는 매장을 나왔다. 이제 속옷을 사러 갈 차례였다. 단 일주일만 입을 속옷이니 유명브랜드의 고가 제품보다는 마트에서 파는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영등포에 위치한 타임스퀘어에 있는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기자는 대형마트에서 90A 사이즈 브래지어를 찾기 시작했다. 밑 가슴둘레 90인 제품은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C, D컵이었다. 결국 90C 사이즈의 와이어 브라를 구입했다. 체형에 맞는 속옷을 구매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브래지어 첫 착용 직후 모습 ⓒ투데이신문
브래지어 첫 착용 직후 모습 ⓒ투데이신문

브래지어 착용 첫째 날_ 생각보다 버틸 만 한데?

130분경, 브래지어를 구입하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착용했다. 엄청 갑갑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나와 점심식사를 한 식당에서도 자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기자는 마침 메고 있던 웨이스트백으로 가슴을 가렸다.

회사로 들어오자마자 선배들의 웃음 섞인 격려가 이어졌다. 기자는 시간마다, 혹은 불편함이 있을 때마다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오후 3시경. 회사 복귀. 약간의 불편함이 있으나 견딜만함.
오후 4시경. 착용 2시간째. 슬슬 답답해짐.
오후 8시경. 귀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벗어놓음.

이상이 첫 날의 메모였다. 첫 날까지는 크게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브래지어 착용 둘째 날 - 이걸 왜 입지?

평소 오전 8시에 집을 나서는 기자는 출근 바로 전에 브래지어를 입고 옷을 걸친 뒤 집을 나섰다. 출근길엔 가방끈을 최대한 조여 가방을 앞으로 메고 가슴을 가렸다. 가슴을 가리고 있자니 답답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점심시간, 고비가 찾아왔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기 위해 사무실을 나왔다. 편의점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길이 이날은 멀고도 험난한 길처럼 느껴졌다. 마주칠 사람들의 시선, 편의점 노동자들의 시선을 지레 걱정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도시락을 사왔다. ‘도시락 원정에서 가장 불편한 장소는 엘리베이터였다. 사람들이 가까이 서있기 때문에 더 신경 쓰였다.

브래지어 후크를 가장 바깥쪽에 채워 입고 있던 기자는 선배에게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배는 둘레가 조금 큰 것 같다며 “브래지어를 딱 맞게 입으려면 안쪽 후크를 채워보라”고 말했다.

둘레가 크면 움직일 때 브래지어가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안쪽 후크를 채워 입는다는 것이다. 선배는 그러면서 “나는 평소에는 가장 안쪽의 후크를 채워 입고, 생리를 할 때는 가슴이 붓기 때문에 바깥쪽 후크를 사용해 사이즈를 조절한다”고 알려줬다. 기자는 “아…어쩐지 버틸만한 것 같더니”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브래지어의 가장 안쪽 후크를 채워 다시 입었다. 그 때부터 불편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답답함에 와이어가 있는 가운데 부분을 잡아당겨 큰 숨을 쉬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브래지어를 벗었다. 가장 안쪽의 후크를 걸어서 그런지 전날에는 옅었던 브래지어 자국이 진하게 남았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편한 것인 줄 몰랐다. 해방이다. 여성들은 이 불편한 걸 왜 입어야 할까.

샤워를 하면서 브래지어를 손빨래 했다. 와이어가 뒤틀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선배의 조언이 있어 물기를 꼭 짤 수도 없었다. 세탁망에 집어넣고 열심히 돌려 탈수했다. 하지만 아직 물기가 남아 아침까지 마르지 않을 것 같아 문고리에 걸어 선풍기를 틀어뒀다.

브래지어 착용 둘째날 ⓒ투데이신문
브래지어 착용 둘째 날 ⓒ투데이신문

브래지어 착용 셋째 날_입기 싫다!!!

일어나보니 브래지어는 입고나가도 될 만큼 보송보송 말라 있었다. 하지만 입기가 싫었다. ‘이걸 왜 한다고 했나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속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출근길부터 너무 답답했다. 가방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어 브래지어를 당길 수도 없었다.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고 나서는 시도 때도 없이 브래지어를 잡아당겼다. 이는 체험을 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일 기자가 여성이었다면, 체험이 아니었다면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브래지어를 잡아당길 수 있었을까.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전 내내 속옷을 잡아당기면서 든 생각은 점심 때 또 어떻게 도시락을 사러 가지였다. 그러나 다행히 점심을 사 올 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난 뒤가 문제였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났을까.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점심 먹은 것이 얹힌 듯했다.

브래지어가 가슴을 압박해 그런 것 같았다. 선배들에게 얘기했더니 남자 선배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화불량도 있고 자주 얹힌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아니, 기자가 공감하게 됐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날부터는 따로 메모를 하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브래지어를 벗었다. 브래지어가 살을 조여 자국이 남은 자리가 따가웠다.

브래지어 착용 넷째 날_24시간 착용하기

가장 힘든 날이었다. 외부 취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취재 어떻게 나가지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오후 2. 기자회견 취재를 위해 가방으로 가슴을 가리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장소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기자가 브래지어를 입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제 발 저린 기자는 친구에게 브래지어를 입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 친구는 의미 있는 체험이라며 격려해줬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근처 카페에 앉아 기사를 정리했다. 기자는 카페에서도 사람들의 시선 탓에 가방으로 계속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기사 작성을 마친 후 간담회 취재를 갈 시간이 돼 전철에 몸을 싣고 망원동으로 향했다. 간담회장에서는 가방을 내려놓을 자리가 충분했다. 그러나 가슴을 가리려면 가방을 메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간담회가 끝난 시간은 오후 10시였다. 평소 같으면 퇴근해 브래지어를 벗고 편히 있을 시간이지만, 취재 일정 때문에 일찍 귀가하지 못한 기자는 이날 늦게까지 브래지어를 벗을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1130. 기자는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과 함께 지내는 여성들의 경우 집에서도 브래지어를 한다는 선배들의 말에 이날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잠들기로 했다. 샤워하는 동안 잠시 브래지어를 벗어놓은 기자는 씻고 난 후 다시 브래지어를 입고 잠을 청했다.

브래지어 착용 다섯때 날 출근길. 브래지어 착용이 티나지 않도록 가방으로 가슴을 가렸다 ⓒ투데이신문
브래지어 착용 다섯째 날 출근길. 브래지어 착용이 티 나지 않도록 가방으로 가슴을 가렸다 ⓒ투데이신문

브래지어 착용 다섯째 날_ 고심 끝에 브래지어 해체

아침에 일어나니 난리가 났다. 잠을 어떻게 잤는지 티셔츠는 이불 옆에 널브러져 있었고 브래지어는 어깨 끈이 빠진 채 돌아가 있었다. 자는 동안 많이 답답해 발버둥 친 모양이다.

이날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저녁에 외가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 친척 어른들을 봬야 했다. 하루 종일 브래지어를 잡아당기고 한숨을 쉬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결혼식장에서 가방을 계속 메고 있기도 어려울 것이고, 어른들이 분명 기자의 성정체성을 두고 이야기하거나 속옷 도착증이 있다고 의심할 것 같았다. 게다가 친척 결혼식이라 함께 참석하는 어머니께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결국 고심 끝에 브래지어를 해체가 아니라 벗어놓기로 했다. 전날부터 약 30시간 정도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으니 이 정도면 괜찮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퇴근 후 결혼식장 근처의 전철역 화장실서 브래지어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 씻으면서 브래지어를 빨며 다시 한 번 생각했다. ‘

이 불편한 걸 여성들은 왜 당연한 듯 입고 다니며, 사회는 왜 이를 당연한 듯 강요하는가!!!

브래지어 착용 여섯째 날_브래지어를 입고 처음으로 맞는 휴일

브래지어를 입고 애인을 만났다. 체험을 한다고 처음 얘기했을 때 누구보다 즐거워했던 애인은 기자에게 브래지어를 입고 생활해 보니 어떤 것이 가장 불편한 지 물었다.

생각해보니 가장 불편한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가슴을 가리기 위해 계속 가방을 고쳐 메야 했다. 그 다음으로 불편한 건 식사 후였다. 밥을 먹고 난 뒤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불쾌하고 답답했다. 기자는 애인에게 ‘대체 왜 여성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브래지어를 해야만 하는 건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기자의 하소연을 다 듣고난 애인은 여성이 노브라로 다니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가슴을 가린 것처럼 신경 쓰게 된다는 것이다.

애인은 기자에게 "브래지어를 입고 있어도 일상적으로 성적 대상화를 격는데 노브라일 경우엔 '쉬운 여자'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길을 걷다가도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성희롱을 당하거나 어른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등 더 많은 불편함이 생긴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 날도 하루 종일 가방을 내려놓지 않았다.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리고 귀가하자마자 바로 브래지어를 벗어버렸다.

기자가 체험에 사용한 90C 사이즈 브래지어 ⓒ투데이신문
기자가 체험에 사용한 90C 사이즈 브래지어 ⓒ투데이신문

브래지어 착용 마지막 날_오늘만 지나면 해방이다!

드디어 브래지어 착용 마지막 날이 밝았다. 외출할 때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기자는 최대한 늦게 약속을 잡았다. 오전 내내 여유롭게 있다가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기자는 친구들에게 브래지어 체험을 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자신도 한 번 입어보고 싶다고 했다. 기자의 브래지어를 빌려 입어본 친구는 입고는 못 다니겠다며 바로 벗어 돌려줬다.

저녁 9시경. 집에 돌아와 지난 한 주간을 함께 보낸 브래지어를 벗어 걸어뒀다. 드디어 해방이다! 기자에겐 1년 같은 1주였지만 이번 체험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겨우 7일의 체험으로 여성의 고충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가.

우선 신체적 한계는 젖가슴의 무게로 인한 불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컵과 가슴 사이의 공간이 비어있어 땀이 찬다거나 하는 것도 경험할 수 없었다. 이를 체험할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았겠으나 제한적인 부분이었다

 브래지어의 종류를 한 가지밖에 체험하지 못했다.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착용한다는 와이어브라를 입었으나, 다양한 종류를 체험 해봐도 좋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기자는 브래지어 착용 여부에 따른 성적 대상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만일 기자가 가방으로 브래지어를 가리지 않고 다녔다면 이를 체험할 수 있었을까. 아마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것과는 다른 맥락의 차별을 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Free the nipple!

한국의류산업학회에서 2009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한국 여성의 비율은 97.7%나 된다. 브래지어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칙에 여학생의 속옷에 관한 규정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브래지어를 반드시 입어야 했으며, 색깔도 규정(흰색 혹은 살색)했다. 또 속옷이 보이지 않게 그 위에 다시 민소매 속옷(런닝)을 입도록 했다.

이는 규칙이라는 이름만 없을 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연예인 설리가 SNS노브라사진을 게시한 일이 있었다. 당시 (남성) 네티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라고 비난하는 이들과 여성 연예인의 노브라 사진에 열광했던 이들. 혹은 둘 다.

황당한 일이다. 남성의 유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여성에게는 왜 감추라고 요구하는지. 타인의 노브라에 불편함을 느낄 이유도 없거니와, 자신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불편한 속옷을 입으라고 강요할 이유도 없다.

패션 아이템으로 선호한다거나 속옷의 여러 기능 때문에 브래지어 착용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있다. 반면 불편해서, 혹은 건강을 고려해서 노브라를 선택하는 여성은 적은 것 같다.

설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비난과 성적 대상화가 뒤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브래지어 착용 여부를 놓고 왜 왈가왈부 하는가. 노브라를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고 브래지어를 입는 것은 여성에 대한 억압이 아닐까.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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