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뉴시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가 삼성증권을 통해 집중 개설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증권이 사실상 이 회장의 ‘사금고’로서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삼성증권 측은 “아는 바 없다”며 침묵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금융감독원이 지금까지 파악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1133개 증권계좌 중 918개 계좌가 삼성증권을 통해 개설됐다고 12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이 현재까지 파악한 이건희 차명계좌는 총 1229개로, 이중 증권계좌는 1133개, 은행계좌는 96개이다. 이중 조준웅 삼성특검이 발견한 계좌가 1197개, 금감원이 차명계좌를 일제 검사하면서 추가로 발견한 계좌가 32개다.

박 의원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계좌는 증권계좌 27개에 불과했고 금융실명제 이후에 개설된 계좌는 무려 1202개(증권계좌가 1106개, 은행계좌 96개)였다. 이는 삼성 차명계좌 전체의 대부분인 97.8%에 달한다.

금융기관을 기준으로 보면 총 1133개의 증권 계좌 중 삼성증권에 개설된 차명 계좌가 918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삼성증권은 특검 제제 증권계좌 925개 중 725개(78.4%), 특검 미제재 증권계좌 176개 중 162개(92.0%), 금감원 발견 제재 계좌 32개 중 31개(96.9%)를 차지하는 등 범주를 가리지 않고 이건희의 차명주식 운용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의원은 “삼성증권은 이건희 차명재산의 관리를 위한 충실한 ‘사금고’로 기능했다”며 “삼성증권은 다른 증권회사를 이용한 차명주식 운용이 어려워진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차명재산 운용을 거의 전적으로 담당한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삼성증권은 이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대한 공범 혐의를 피할 수 없다. 반면 삼성증권이 차명계좌 개설에 동조하지 않았다면 이 회장이 업무방해를 한 셈이된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이 회장의 차명계좌 개설과 관련해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사실로 드러나도 제재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실명법은 실명제 시행 이전의 비실명자산에 대해 실명제 실시일 당시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징수토록 하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실제 주인은 이 회장이더라도 임직원의 실명으로 계좌가 개설돼 있는 만큼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일자 다시 법제처가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법령해석을 내놓으며 상황이 반전됐다. 하지만 삼성증권 등 관련 금융기관들이 이 회장에 대한 차명계좌에 대한 기록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나서 과징금 부과는 물론이고 차등과세도 적용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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