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들여 올레핀 생산시설 건설
업계 1위 LG화학과 경쟁 주목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사진=GS칼텍스 제공)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사진=GS칼텍스 제공)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GS칼텍스가 본격적인 석유화학 진출에 나서면서 암묵적으로 유지됐던 LG와의 ‘신사협정’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달 7일 GS칼텍스는 전남 여수 제2공장 인근 약 43만㎡ 부지에 약 2조원대 금액을 투자해 2022년 상업가동을 목표로 연간 에틸렌 70만t, 폴리에틸렌 5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 생산시설(MFC시설; Mixed Feed Cracker)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올레핀 생산시설은 올해 중 설계작업을 시작해 2019년 중 착공될 예정이다.

올레핀은 탄소 간 이중결합이 있는 화합물질을 총칭하는 것으로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유분인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이 대표적인 제품이다. 에틸렌은 플라스틱과 비닐 같은 석유화학제품 대다수의 기초 원료로 쓰여 ‘석유화학의 쌀’이라고도 불리운다.

올레핀은 그동안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 등 전통적인 석유화학업체들이 주도해온 시장이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이번 MFC 투자가 GS칼텍스의 본격적인 석유화학분야 진출 선언으로 보고 있다. GS칼텍스는 MFC시설 가동 이후 연간 4000억 원 이상의 추가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정유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유사의 석유화학사업 진출이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그 대상이 GS칼텍스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뿌리가 같은 LG그룹과의 관계 때문이다. GS와 LG는 1947년 구인회 회장과 사돈인 허만정 회장이 공동창업한 락희화학공업을 모태로 하고 있다. 57년간 동업관계가 이어지다 지난 2004년 GS그룹이 설립되면서 둘로 나눠어졌다.

구씨 일가는 전자·화학·상사 등을, 허씨는 유통·건설·정유를 위주의 사업을 맡고 동종업종 경쟁을 피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LG뿐 아니라 LS, LIG, 희성그룹 등 범LG가로 분류되는 기업도 마찬가지 기조를 보여왔다.

그 당시 두 그룹의 총수는 동업자 정신을 유지하는 취지에서 서로 주력사업을 침범하지 말자는 일종의 불가침협정을 구두로 합의했다. 업계에서는 두 그룹 총수간 암묵적 젠틀맨 어그리먼트(신사협정)이 적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지난 2005년 그룹 CI를 발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LG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영역에 진출하지 않겠다. 100년 후에는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우리 세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GS칼텍스가 출사표를 던진 석유화학사업계 강자는 LG화학이다.

특히 당초 GS칼텍스가 LG화학이 업계 1위 자리를 놓지 않고 있는 나프타분해하는 NCC(Naphtha Cracking Center)사업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그룹간 경쟁 구도가 주목받았다. 보통 올레핀은 원유 부산물인 나프타를 가공하는 NCC설비가 필요하다.

지난달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GS칼텍스 등 경쟁사의 NCC사업 진출에 대한 기자 질문에 “대한민국 일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 세계적 경쟁”이라며 “대한민국 안에서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사업을) 많이 늘리고 있지 않느냐”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GS칼텍스가 MFC를 선택했다. 주로 나프타를 원료로 투입하는 NCC와는 달리 나프타는 물론 정유 공정에서 생산되는 LPG, 부생가스 등 다양한 유분을 원료로 투입할 수 있는 차이가 있다.

나프타 이외의 재료도 사용된다 뿐이지 정유 부산물을 활용해 올레핀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사업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또 나프타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GS칼텍스는 그동안 자신에게 쓸모없었던 나프타를 LG화학에 판매해왔다. 하지만 MFC가 갖춰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GS칼텍스가 LG화학에 판매되는 나프타 물량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결국 양사가 사실상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GS와 LG가 동종 분야에서 경쟁을 피하던 암묵적인 신사협정에도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GS칼텍스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생산물량 대부분이 수출에 사용하는 데다 세부 제품군도 서로 다르다”며 “LG화학과의 나프타 공급도 장기계약으로 유지되고 있어 양사의 우호관계가 회손될 여지는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GS와 LG 양사가 사업 다각화 추진으로 점차 겹치는 사업이 많아지면서 양사가 맺은 신사협정이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돼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GS칼텍스의 이번 MFC 투자를 기점으로 범 LG가와의 경쟁도 본격화될 것이란 예상도 내놓고 있다. 신사협정이 공식적으로 파기된다면 상대 주력사업의 사업 진출도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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