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간 이어진 재개발 논의
최근 조합 투표서 ‘찬성’ 결정

100년 이상 문화유산·30년 이상 상점 밀집
대 이어온 상인들 재개발로 쫓겨날 위기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김포향교 ⓒ투데이신문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김포향교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30년 이상 대를 이어 장인정신을 지키는 상점들이 밀집한 곳이 있다. 경기 김포시 북변동의 ‘백년의 거리’다.

‘백년의 거리’는 1000년이 넘은 향교, 124년 된 교회, 118년 된 초등학교, 108년 된 성당 그리고 100년 넘게 이어져 온 민속 5일장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문화유산이 반경 500m안에 모여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 곳에는 29년째 영업 중인 오달통 분식, 39년째 영업 중인 ‘박천순대국’, 어머니와 딸이 대를 이어 함께 운영하고 있는 ‘영미용실’, 50년째 칼로 도장을 파는 수제도장가게 ‘성심당’,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물려받아 다시 그 며느리가 대를 이어 맡고 있는 ‘김포 약국’ 등 북변동에는 다양한 상인들의 이야기와 장인정신이 담겨있다.

이렇게 전통을 가진 상점들이 이 곳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바로 재개발 때문이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4일 재개발로 인해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백년의 거리’를 찾았다.

51년째 수제도장을 만드는 성심당 ⓒ투데이신문
51년째 수제도장을 만드는 성심당 ⓒ투데이신문

북변동에 재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부터다. 이후 5년간 논의가 지속되다 2011년 조합이 설립됐다.

북변동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활동 중인 사회적기업 ‘어웨이크’의 여운태 대표는 “조합 설립 과정에 문제가 있었어요”라며 “보통 주민 찬성이 50%가 넘어야 조합 설립이 시작되는데, 북변동은 반대가 50%를 넘지 않으면 설립할 수 있도록 해 변칙적으로 조합이 만들어졌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10월에 30%정도 조합원의 동의를 받아 시청에 조합해산에 대한 주민투표 신청을 제출했는데, 투표 결과가 지난 1월에 나왔어요. 안타깝게도 1표 차이로 과반이 넘어 재개발을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됐어요”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대략의 설명을 들은 후 어웨이크 이인재 팀장의 안내로 백년의 거리에서 영업 중인 상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29년째 북변동 '백년의 거리'에서 영업 중인 오달통 분식 외관(오른쪽)과 내부에 걸려 있는 메뉴판(오른쪽) ⓒ투데이신문
29년째 북변동 '백년의 거리'에서 영업 중인 오달통 분식 외관(오른쪽)과 내부에 걸려 있는 메뉴판(오른쪽) ⓒ투데이신문

가장 먼저 찾은 ‘오달통 분식’의 황병철 사장은 떡볶이를 포장 주문한 손님에게 “떡볶이 끓여 보셨어요? 물을 이 컵으로 6컵 냄비에 넣고, 물이 끓을 때 넣고 입맛에 맞게 졸여서 드시면 됩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29년째 장사를 하는 만큼 단골손님들이 많이 찾는 이곳은 지난해 방송을 타면서 유명세를 얻어 더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황 사장은 “학생 때부터 오던 친구들이 어른 돼서 오고, 자녀들 데리고 오고 그러죠. 또 지난해 방송을 한 번 나가서 외부에서도 많이들 와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재개발 얘기가 나오자 그는 “세 들어있는 거니까 나갈 때까지는 해야죠. 근처에 마땅한 자리 있으면 옮겨서 장사 하고.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으니까”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딸과 함께 2대를 이어 영업 중인 영미용실 ⓒ투데이신문
딸과 함께 2대를 이어 영업 중인 영미용실 ⓒ투데이신문

사정은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였다. 영미용실 이춘화 사장은 87년 미용실을 개업해 현재 딸과 함께 영업 중이다. 이 사장은 “이 옆 골목에서 92년까지 하다가, 지금 이 자리로 옮겨서 27년째 하고 있어요. 올해로 개업한 지 31년 됐네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 오는 손님 중 90%는 단골이에요. 아무래도 손님들이랑 오래 보기도 했고 서로 어떻게 사는지도 많이 알죠. 할머니, 며느리, 손주까지 3대가 오는 손님들도 있어요”라며 “손님이 자녀들 결혼식에 초대하기도 해요. 단골들이니까”라고 손님들과의 추억을 말했다.

영미용실 이춘화 사장 ⓒ투데이신문
영미용실 이춘화 사장 ⓒ투데이신문

기자가 ‘재개발 이후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이 사장은 “재개발 되면 나가는 수밖에 없죠. 세가 올라서 다시는 못 들어올 테고”라며 “최대한 가까운 데로 옮겨야죠. 단골손님들 계속 올 수 있을만한 곳으로. 모르는 데 가서 다시 개척하려면 힘드니까요”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이 팀장은 “‘재개발 되면 나가야죠’라고 하시는데, 실질적으로 여기 보증금 가지고 다른데 옮기기 쉽지 않아요”라며 “이렇게 오래된 가게에 어렸을 때 오던 손님들이 결혼해서 자녀과 함께 오는 게 스토리텔링인데…사라져버리면 안타깝죠”라고 토로했다.

2대를 이어 40년째 영업 중인 박천순대국 외관(위)과 박천순대국 내부에 손님이 남긴 글(아래) ⓒ투데이신문
2대를 이어 40년째 영업 중인 박천순대국 외관(위)과 박천순대국 내부에 손님이 남긴 글(아래) ⓒ투데이신문

1979년 개업해 2대를 이어 순대국을 팔고 있는 ‘박천순대국’은 40년째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박천순대국은 김포 내에만 3개의 체인점이 있고, 최근에는 강남의 뱅뱅사거리에 체인점을 냈다. 그러나 재개발로 인해 본점이 자리를 옮겨야 할 수도 있다. 이 팀장은 “여기(박천순대국) 사장님은 ‘다른데서 장사하다가 재개발 끝나면 다시 들어와서 장사 하면 된다’고 하시는데, 그 자리, 그 건물에서 해온 세월이 아깝죠. 그걸 남기는 게 멋인데”라고 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김포 민속5일장 ⓒ투데이신문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김포 민속5일장 ⓒ투데이신문

이날은 옛 김포 터미널 주변에 민속5일장이 열렸다. 원래는 2·7장이지만 명절을 앞두고 연장돼 열린 것이다. 이 팀장은 “김포 5일장이 경기 4대장 중에 하나예요”라며 “장이 열리는 부지로만 따지면 가장 큰 규모죠”라고 설명했다.

5일장이 열린 곳 옆에 서 있는 옛 터미널 건물 외벽에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옛 김포 버스터미널 건물(왼쪽)과 현수막(오른쪽) ⓒ투데이신문
옛 김포 버스터미널 건물(왼쪽)과 현수막(오른쪽) ⓒ투데이신문

여 대표는 “이렇게 전통 있는 가게들은 지자체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데, 이를 싹 밀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요”라며 “30년 이상 된 것들에 대해서 ‘근현대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건 재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김포가 지켜야 할 역사적 유산의 문제예요”라고 말했다.

백년의 거리에서 30년 이상 자리를 지키며 장인정신을 지키는 상인들이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바로 ‘손님들과의 추억을 이어가며 계속 장사하는 것’이다. 이들의 장인정신이, 손님들과의 이야기가 지켜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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