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언젠가 극장에서 어떤 히어로 물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보통 영화는 혼자 보러 가는 편이지만, 그날은 다른 지인과 함께 보게 되었다. 당시 그 영화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꽤나 평이 좋았기에, 여기저기서 호의적인 평론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영화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작품은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함께 영화를 보았던 지인은 나와 달리 꽤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극장 문을 나서자마자 흥분된 어조로 자신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나보다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고, 문화 전반에 조예도 깊었기에, 평소 그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면 나는 늘 배운다는 생각으로 주의 깊게 듣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그의 이야기가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런 나의 기분이 표정에 드러났던 것일까. 아니면 혼자서만 말을 하고 있던 게 미안했던 것일까. 그는 계속해서 내게 영화가 어땠는지 물어왔다. 나도 그냥 듣고만 있으려니 좀 따분해져서 조심스레 말을 시작했다. 영화가 괜찮은 편이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깊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영화는 또 아니었다. 다만 그건 내가 영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럴 거라며 안전장치를 덧붙였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몇몇 장면들을 언급하며, 거기에 나름의 해석을 몇 마디 덧붙였다. 

딴에는 상대를 존중하며 내 이야기를 꺼낸다고 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었을 뿐, 나의 그 소소한 견해들이 상대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것 같다. 혹은 내 태도가 불량해 보였을 수도 있고, 자신의 해석에 도전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문화소양이 부족한 내가 한심해 보였을 수도 있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논쟁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 모르고 했던 이야기이니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지만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내가 대수롭지 않게 거론했던 몇 가지 장면들을 끈질기게 언급하며 내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결국 나도 짜증이 났다. 당신의 해석이 나보다 깊고 풍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논란이 되는 장면들을 대략적으로 짚어가며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가 영화를 아예 잘못 기억하고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영화 장면들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 역시도 해석까지는 넘어갈 수 있지만, 기억을 의심받는 것은 참을 수 없었기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런 걸로 열변을 토하고 있나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한 번 걸린 발동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결국 서로 크게 감정을 상한 채 자리를 뜨게 되었다. 

유치하면서도 부끄러운 기억은 그 다음에도 이어졌다. 나는 그와 헤어지고 나서 다시 그 영화를 보러 혼자 극장으로 돌아갔다. 처음 봤을 때도 그냥저냥 했던 영화였으니 두 번째 볼 때는 더 재미가 없었지만,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승부욕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을 기억에 담을 듯이 스크린에 집중했다. 그렇지만 사실 자신은 없었다. 나의 두루뭉술한 기억보다는 그의 복기가 훨씬 더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말도 없이 극장으로 돌아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영화의 구성은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내 기억이 맞았다. 심지어 그가 영화의 핵심이라며 거론했던 장면들 중에는 아예 영화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시 극장 밖으로 나왔던 나는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요, 관련 장르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때 싸웠던 것은 사실관계 때문이 아니라, 입장과 해석 때문에 싸운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이 그의 기억보다 정확했던 것은 내가 기억력이 더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깊게 빠져들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를 왜곡해서 읽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기억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나와 다른 해석을 했던 게 아니다. 영화를 재구성하고, 없었던 장면을 만들어내서 끼워 넣을 정도로 그의 몰입과 해석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내가 다시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사실관계를 재정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말싸움의 시작이 될 뿐 이전의 논쟁을 종결시킬 수는 없었다. 

현실 때문에 마음이 강렬해질 때마다, 나는 그 영화를 떠올리곤 한다. 혹여 마음의 강렬함 때문에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억지로라도 심드렁한 기분이 되어 한 발짝 떨어져보려 노력한다. 혹시나 내가 거짓으로 만들어낸 장면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기억의 필름을 하나씩 탁탁 돌려보면서. 물론 늘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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