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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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여성혐오’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온·오프라인 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 중 하나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일 것이다.

메르스가 국제문제로 야기됐던 2015년 5월, 한국에서 첫 번재로 메르스에 감염된 남성 환자가 9일 동안 네 곳의 병·의원을 돌아다녀 무책임한 행태라는 비난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 같은 일이 회자되자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여성 이용자들은 “만일 해당 감염자가 여성이었다면 ‘여성들은 모두 이기적’이라며 여성을 일반화해 욕했을 것이나 남성이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달 30일, 홍콩에서 메르스로 인해 한국 여성 2명이 격리된 일이 있었다. 당시 홍콩과 한국의 언론은 이들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오보를 냈고, 온라인에서는 이들을 ‘김치녀’, ‘원정녀(해외에서 성매매하는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말)’라고 조롱하는 글이 이어졌다.

이에 해당 커뮤니티의 ‘메르스 갤러리’ 이용자들은 ‘이들이 남성이었다면 비난이 일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성들에게 가해지던 조롱과 혐오를 성별만 바꿔 그대로 적기 시작했다. 이것이 메갈리아가 주목받게 된 이유인 ‘미러링(Mirroring, 말이나 행동을 반대로 뒤집어 보여줘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논증 및 설득 전략)'이다.

논쟁으로 만난 페미니즘

이후 웹사이트 ‘메갈리아(Megalia)’가 개설됐고 해당 커뮤니티뿐 아니라 여성혐오에 대응하려는 누리꾼들이 여기에 유입된다. 그러나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폭력을 재생산한다’, ‘남성 성소수자까지 비하한다’는 등 숱한 비판을 받았다. 반면 페미니즘을 이슈화하고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를 드러냈다는 긍정적 평가도 존재한다. 현재 메갈리아는 문을 닫았지만 메갈리아에서 파생된 몇 개의 커뮤니티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메갈리아는 ‘메르스(MERS, 중동 호흡기 증후군) 갤러리‘와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Gerd Brantenberg)의 장편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합성어다. 기자는 메갈리아의 탄생으로 <이갈리아의 딸들>을 알게 됐고, 이후 페미니즘 도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 평등을 위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갈리아를 통해 성차별을 알게 되고 다시 태어난 ’메갈리아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황금가지
이갈리아의 딸들 ⓒ황금가지

대표적인 미러링 작품으로 알려진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은 여성과 남성의 젠더 권력이 역전된 가상의 세계 ‘이갈리아’를 통해 남성중심 사회를 비판한 소설이다. 기존의 성 역할을 뒤바꿔 남성중심의 사회구조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드러낸 것이다.

이갈리아에서 맨움(남성)들은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다. 움(여성)은 활동적이고 육체적인 활동을 즐기는 반면 맨움은 화장을 하고 장식이 치렁치렁한 옷을 입는다. 움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맨움은 하우스바운드(Housebound, 현실에서의 아내 역할)로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를 전담한다. 또 움은 자연스럽게 가슴을 내놓고 다닐 수 있지만 맨움은 페호(성기를 가리는 전용 속옷)를 입어야 한다. 이렇게 작가는 맨움들이 겪는 억압과 차별을 통해 여성들의 현실을 미러링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맨움의 비인간화에 협력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아이 키우는 가축이 되는 것을 참고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맨움 종속의 상징인 페호를 태우는 이유입니다. 맨움해방주의는 인본주의[원문에서는 Huwomism(휴우미즘, 작중 휴머니즘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갈리아의 딸들 p.295(황금가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저, 히스테리아 역)

작가는 현실의 여성차별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까지 직접적으로 미러링한다. 남성인 기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남성중심 구조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과 이갈리아에서 맨움에게 강요되는 것. 이것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불평등한 것인지 말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맨움은 생명과 실제로 연결돼 있지 않단다. 그들은 그들은 자손과 육체적 연결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죽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없단다. 맨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땅의 생명이 죽어 없어질 거야. 만일 맨움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만일 맨움이 제지되지 않는다면, 만일 그들이 교화되지 않는다면, 만일 그들이 <그들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생명은 소멸할 거다……”

이갈리아의 딸들 p.348~349(황금가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저, 히스테리아 역)

이 문장은 ‘여성이 자신의 경력만 생각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여성이 조신하지 못하다’는 등 현실에서 여성들이 듣는 말과 유사하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물론 기자는 여전히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 이에 기자는 사회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여성의 자리’를 체험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페호’로 미러링한 브래지어, 남성들은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여성들은 당연히 하는 것처럼 여기는 화장, 신체 구조상 여성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생리대와 임신 등 4가지를 각각 1주씩, 총 4주간 체험했다.

또 브래지어 편에서는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생리대 편에서는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임신편에서는 ‘정치하는 엄마들’ 장하나 공동대표 등 각 체험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함께 담고, 화장 편에서는 기자와 유사한 체험을 한 프로젝트팀 ‘화:남_화장하는 남자들’의 목소리도 함께 담았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억압과 불편함을 그저 한 주씩 ‘체험’할 뿐인 기자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자의 체험기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차별의 시선,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여성의 불편부당한 일상을 조금이나마 공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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