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행운아
[칼럼] 행운아
  • 이석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01 2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석재 칼럼니스트
▲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1997년 9월초,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복잡한 개인사로 인해, 원치 않는 미국 어학연수 길에 오른 상황이었다. 당시 나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내 오른쪽으로는 두 좌석이 더 붙어 있었다. 나의 오른쪽에는 중년의 백인(이하 A)이, 그리고 그 옆 복도 쪽에는 한국인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부터 가운데 앉아있던 A는 자꾸 그 옆의 한국인 아저씨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다. 그 아저씨 역시도 낌새를 눈치 채고, 혹시나 말을 걸어올까 계속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고 나서 기내가 안정을 되찾자, 아니나 다를까 A는 곧바로 복도 쪽의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영어로. 아저씨는 A가 말을 건네자마자 곧바로 눈을 감고 머리를 의자에 기댄 채 수면모드로 들어가 버렸다. 대화를 거절하겠노라는 강력한 의사표시였다. 그게 영어 때문이었는지, 그저 피곤했기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A는 오른쪽으로부터 외면을 당하자 곧바로 고개를 돌려 내 쪽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영어실력은 대화는커녕 기초적인 듣기도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어학연수 결정은 나의 의지가 아니기도 했고, 어차피 미국에 가면 실컷 영어를 쓸 테니 미리부터 공부해갈 필요는 없다는 핑계 등으로 인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창밖의 하늘만 무심히 쳐다보는 척, A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제발. 제발. 거절을 뜻하는 나의 비언어적 의사표시를 읽어주기 바라면서. 그렇지만 A는 끝내 ‘영어로’ 말을 걸어오고야 말았다. 아. 나도 건너편 아저씨처럼 확실히 잠자는 척을 했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어쩔 수 없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하이. 왜 그의 말을 받아줬는가 하면, 거절을 영어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나의 공포와 불안과는 다르게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A는 80년대부터 국내 유명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쳐 왔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나와 같은 영어 초보자와도 대화가 가능했던 것 같다. 간단한 수준의 단어로도 이런저런 대화가 가능해지다 보니, 나 역시도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A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해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눈을 뜨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You are... 행! 운! 아!

아. Hangunah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본 건데, 그게 무슨 뜻이지. 왓츠 민 Hangunah? 그는 빙긋 웃으며 다시 한 번 또박또박 행! 운! 아! 라고 발음했다. 혹시나 싶어 한국어 ‘행운아’를 말하는 거냐고, 럭키 가이를 뜻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바로 그거라고 답해주었다. 왜 나를 행운아라고 하는 걸까. 그에게 물었다. 왜 나를 행운아로 생각하느냐고.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나를 행운아로 규정했다. 첫째, 너는 4대 독자다. 둘째, 너는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미국에 어학연수를 갈 수 있는 것을 보니 너는 틀림없이 부자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세 가지를 갖췄으면 충분히 행운아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이제 4대 독자도 군대에 가야 하기에 4대 독자든 10대 독자든 아무런 메리트가 없고, 여차여차한 사정으로 나는 학벌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졸업을 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이며, 지금 나는 집안의 기둥뿌리 하나를 뽑아서 어학연수를 가고 있는 거라고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복잡한 사정을 ‘영어로’ 설명하자니 앞이 좀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겠는가. 그의 박장대소에 나도 함께 빙긋빙긋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이후 어학원 컨버세이션 시간마다 비장의 무기로 써먹었던 ‘아이 어그리 위드 유’를 겻들이면서 웃어야 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고 나서 헤어질 때도 내게 ‘행운아’라는 한국어를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발음해 주었다. 

그때의 짧은 만남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거나, 내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밑도 끝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기억들 중 하나가 되어주곤 한다. A와 비행기에서 대화를 하고 있던 순간의 나는 사실 그렇게 밝은 사람이 아니었다. 짧은 영어실력이었음에도, 분명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부정적인 기운들을 마구 뿜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A는 그 속에서 긍정적인 포인트 세 개를 집어 나를 행운아로 규정해주었다. 

어쩌면 그때보다 지금의 상황이 행운아의 조건에 더 걸맞을 수도 있다. 군대에 다녀온 4대 독자가 되었고, 대학은 무사히 졸업했으며, 요즘처럼 어려운 세상에 일단 앞가림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다행이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는 점들 역시 여럿 있을 것이다. 지금 다시 A를 만나게 된다면 그는 나를 어떻게 부를까. 가끔씩 내가 소중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질 때마다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