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스승 밑에서 사범으로 첫발
하루 12시간 근무, 월급 80만원 받아
근로계약서·4대보험 요구 거절 당해
올초, 최저임금 무산에 퇴사 결심해
사범 다시 하고 싶지만 아직은 두려워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이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이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나를 ‘사범’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워온 나는 20살이 되던 해 모 체육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건 체육관을 차리고 싶다는 꿈에 학업은 별 도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생활에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21살의 어느 날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스승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내가 초등생 때 태권도를 가르치던 사범이었다. 자신의 체육관을 차리며 관장이 된 그는 나에게 ‘사범을 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그렇게 나는 사범으로서 첫발을 내디뎠고 2014년 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그와 함께 했다(해당 기간에는 군복무 2년도 포함돼 있다).

오전 11시 30분까지 출근해 오후 8시 30분에 퇴근했다. 늦게 끝나는 날에는 오후 9시 30분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보통 주 6일을 일했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장을 도맡아 운영했다. 수업은 기본이고 체육관 청소, 입관 상담, 체육관 홍보(전단지 돌리기), 사범관리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입학 시즌이 오면 아침 일찍부터 학교 앞에서 홍보 전단지를 뿌렸다. 자질구레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초과 근무를 하더라도 군말 없이 내 체육관처럼 열심히 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속된 말로 ‘개처럼 일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일해서 내가 받는 돈은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근로자로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다.

일단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제대 후 일을 다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먼저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안 써도 된다’는 식의 대답만 돌아왔다. 4대보험 가입을 요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만약 일하다 다치면 학원상의 상해보험으로 처리하면 된다’며 거절했다.

그는 처음에 월급 60만원을 제안했다. 시급이 낮기로 잘 알려진 편의점보다도 못한 임금이었다. 내가 난색을 표하자 그는 20만원을 더 얹어 8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곧 군대를 가면 체육관을 그만둬야 할 텐데, 이 이상은 주기 힘들다’고 했다. 근무시간과 업무량에 비해서는 80만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나는 나이가 어려 뭘 몰랐을뿐더러 돈을 바라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내 꿈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80만원을 받으며 6개월을 일했고, 이후 군입대 전까지는 20만원이 올라 100만원을 받았다.

군 제대를 한 2017년 4월 주말 아르바이트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그는 새로운 체육관을 오픈한다며 다시 함께 일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첫 달에는 관원이 없기 때문에 많은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사범으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우스갯소리로 ‘나중에라도 많이 주세요’라고 말하곤 월급 50만원에 다시 그의 손을 잡았다.

관원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6월부터 7월까지 매달 100만원씩 받았다. 힘들다고 말하니 8월에는 20만원을 올려줬다. 이후 11월까지 매월 120만원을 받았으며, 12월부터는 15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아무리 월급을 올려줬다 해도 근무시간에 비례했을 때 올해부터 오른 최저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나는 그에게 매월 160만원을 줄 것을 요구했다. 그와 내가 함께 한 시간, 내가 평소 체육관을 대하는 자세와 비교했을 때 10만원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체육관 사정이 녹록치 않다는 이유로 관원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말이면 가족과 여행을 가고, 취미생활도 즐기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난 1월 16일 나는 그의 품을 떠났다.

김씨가 노동청에 제출한 진정서
노동청에 제출한 진정서 <사진제공 = 김정호(가명)씨>

그런데 퇴사 이후, ‘원래 해고할 생각이었다’, ‘같은 사범이면서 자기가 그렇게 행동(사범관리)했는지 모르겠다. 없으니까 편하지 않느냐’는 등 그가 나에 대해 안 좋게 말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게다가 함께 일하던 사범이 말없이 체육관을 관두자 내가 체육관을 망하게 하려고 데리고 나갔다는 유언비어까지 만들어냈다. 해당 사범 또한 업무량에 비해 낮은 임금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그저 두고만 볼 수만은 없던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안 좋은 얘기가 들리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되레 사과를 요구하느냐며 ‘나한테 지금 실수하는 거다’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쪽 계통에서는 더 이상 일하기 힘들어진다는 뉘앙스였다. 말문이 막힌 나는 그와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지난 7일 노동청에 그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내 마음도 결코 편하지 않다. 그동안 내가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묵묵히 일을 해왔던 것은 어찌 됐던 그는 나의 스승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는 감정과 관계에 얽매여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는 체육관을 떠나 자동차 수리 일을 하고 있다. 처음 해보는 일이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툴지만 월급, 근무조건 모두 체육관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좋다. 그렇다고 해서 언젠가 체육관을 차려 관장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관장을 또다시 만나게 될까 돌아가기는 아직 너무나 두렵다.

<사진 출처= 태권도세상 페이스북 일부 캡처>

사연의 주인공인 김정호(25·가명)씨는 최근까지 초등학교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관장님의 체육관에서 사범으로 근무했다. 적은 월급과 막중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자신의 체육관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기는커녕 개선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관장 아래서 더 이상 희망을 보지 못하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이는 비단 김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 다수의 현직 사범들이 김씨와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하다 퇴사까지 고민하기도 한다.

지난 27일 태권도인 커뮤니티 ‘태권도세상’에서 진행하는 스트리밍 방송 ‘TASS TV’에서는 하루 12시간씩 주 6일 동안 일하며 월급을 60만원을 받고 있다는 체육관 교범(보조사범)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해당 사연이 공개된 이후 많은 사범들이 봇물 터지듯 원성을 쏟아내며 공감했다. 하루 12시간에 가까운 근로시간에 수업 외적인 업무도 많은데 최저임금도 안되는 적은 임금을 받으며 ‘열정페이’를 하고 있다는 게 원성의 골자다.

이에 대한 관장들의 항변도 못지않다. 처음 사범 생활을 하면 현장에 대한 이해도나 업무처리능력이 부족하고 그들 역시 아직은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만큼의 임금을 주기 어려우며, 능력에 맞게 지급하겠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업계 특성상 관장과 사범이 사제 관계인 경우가 많은 데다 근무 범위가 좁고 언젠가는 체육관을 차리는 관장이 될 입장이 될 수 있는 탓에 쉽사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곪아 터질 대로 터져버린 사범들의 열정페이 논란, 이제야말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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