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

 

                                                 한영희 

 

묘지 울타리를 가르는 찔레나무들
언제부터 그 아래 살았는지 모른다
어젯밤
어깨를 들썩이던 여자가 축축함을 내려놓고 간 후
의자는 전염병에 걸린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어둠이 걷히기 전에
아기 눈빛 같은 이슬을 모아 세수를 마쳐야 한다
환경미화원의 빗자루는 나의 넓은 품을 달래줄 것이다
따스한 햇살로 아침밥을 지어먹고
밤사이 뭉친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을 덜어내기 시작하면
나는 만삭의 배가 불러온다
겉옷의 색이 점점 야위어 간다
더운 바람은 계절도 없이 불어오지만 
체온은 비석아래 쌓여가는 먼지를 닮았다
허물어져 가는 몸에서 꽃을 피우고
나비가 내려와 노란 꽃가루를 털고 간다
목련꽃봉오리 피워 물었던 가지에서 
내부수리 중 푯말이 숨을 쉰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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