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전 난간 끝에 다소곳이 드므가 앉아 있다. 쪽진 머리의 여인네 같다. 은은한 모습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다가간다. 세월에 녹 슨 항아리 안으로 새털구름이 흩어졌다 모인다. 추녀 끝 풍경소리가 드므 속에 찰랑인다. 바람이 수면 위를 맴돌다 파르라니 물수제비를 그린다. 

드므는 물을 담아 놓는 솥 모양의 용기다. 중국에서는 길상항(吉祥缸)이라 부른다. 궁궐을 화재로부터 막아주는 길하고 상서로운 항아리라는 뜻이다. 궁궐 몇 곳에 두어 사람들이 항아리에 담긴 물을 보며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했다. 드므에 물을 담아 두면 관악산 불귀신이 궁궐로 접근해 오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는 속설도 전해지고 있다. 

할머니는 새벽보다 먼저 일어났다. 면경을 앞에 두고 긴 머리를 참빗으로 단장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동백기름으로 한 시간 여 손질을 끝내면 아침이 부옇게 밝아왔다. 그때부터 집안 구석구석 바지런한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대들보며 마루엔 언제나 반짝반짝 윤기가 흘렀다. 체구는 작았지만 강단이 있었다. 손끝이 야물고 매사에 빈틈이 없어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부뚜막에는 항상 물을 담아두는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집안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할머니는 거기에 여러 번 길어 온 우물물을 채워 놓았다. 밥짓기며 설거지로 사용되는 물은 집안의 생명수 같은 것이었다. 어쩌다 물이 없어 비워지기라도 하면 식구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가족을 지켜주는 부적처럼 항아리에 물이 차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혼사는 양가 어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열네 살 꽃다운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네 쪽에서 단번에 결정한 일이었다. 그때쯤 할머니의 친정은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할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입 하나라도 줄이려는 마음에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시집을 오게 되었다. 까탈스러웠던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유림에 몸담고 있어서 매사가 봉건적이었다. 바지적삼은 칼날같이 다려 놓아야 했으며 댓돌위의 신발도 항상 가지런하게 두었다. 아침마다 방문 앞에는 세숫물이 담긴 대야가 놓여졌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부부가 유별하다하여 할머니에겐 따뜻한 말조차 건네지 않고 아녀자라며 철저하게 무시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했다. 봄이 되면 행사처럼 집에 들었던 잡화며 화장품을 들고 다녔던 장사치들을 각별하게 대했다. 잘 차려진 밥상을 내어놓기도 했으며 가끔 여비도 챙겨주는 일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장사치들이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 중 누군가와는 스치듯 바람을 피우기도 했을 것이라고 후일담으로 전해진다. 그런 일들로 속이 상할 법도 한데 당신은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가슴에 묻고 그림자처럼 챙기며 묵묵히 집안을 지켰다.

삼촌들의 대학진학으로 조금씩 전답이 줄어들었다. 할아버지의 남은 땅은 대부분 하천부지였다. 태풍이 오거나 장마가 지나가면 모래가 농지를 덮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처음에는 남의 손을 빌려서 모래를 치우고 다시 땅을 일궈냈다. 심하게 홍수가 난 어느 해엔 그마저도 유실되고 말았다. 양식은 부족해졌고 조금씩 가세가 기울어졌다. 할머니는 이웃에 사는 친척을 찾아가서 자투리땅을 얻었다. 작은 땅이었지만 정성스럽게 채소를 키워 시장에 가서 팔았다. 그러다 일반채소에서 품질 좋은 특용작물로 재배를 했다.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밀려왔다.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면서 재산이 늘었다.

어느 날 갑자기 건장한 청년 서너 명이 들이 닥쳐 아버지를 찾았다. 영문을 모르는 엄마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떨고 있기만 했다. 집 안 곳곳을 뒤지더니 가재도구와 살림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지인이 동네 인근에 중요건물이 들어서는 땅이라며 투자를 권유했고 아버지는 가족들과 상의 한 마디 없이 집문서며 예금을 모두 밀어 넣었다. 하지만 사기였다.  며칠 후 초췌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남의 손에 넘어간 집을 뒤로하고 이불보따리 하나만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갔다. 그때 할머니는 아무런 말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어진 작은 방을 내어주면서 우리 가족을 받아주었다.

할머니의 가족사랑은 특별했다. 날마다 저녁이면 장독대 앞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드렸다. 어릴 때 나는 그 모습을 자주 보았다. 기도는 족히 한 시간여 동안 계속될 때도 있었다. 주로 가족들의 건강과 집안의 무사함을 비는 내용이었다. 

유림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 할아버지는 장기간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어느 날 병상에서 간호하는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을 꼬옥 잡고서 “임자, 그동안 많이 미안했소”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날 밤 할아버지는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

결혼식 전 날이었다. 할머니는 서랍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빛이 바랜 보자기에 작고 구부정한 천 인형이 있었다. 집안 대소사로 힘들 때나 할아버지에게 무시를 받을 때마다 위로를 해주던 인형이라고 했다. 어린애 주먹만 한 인형을 내게 건네주며 “힘들 때면 꺼내 보거라”하고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늘 참아야 했던 시댁에서의 삶이었다. 언제나 남편은 시부모님과 형제 편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건조한 목조건물에 작은 불씨가 번지듯 나에게 암이 찾아왔다. 속으로 삭히며 보냈던 시간들이 수면위로 드러난 그 해, 할머니가 준 낡은 인형을 꺼냈다. 항암치료를 할 때도, 수술을 할 때에도, 혼자 울고 싶을 때도 늘 곁에 두었다.  

산허리에 걸린 해가 궁궐에 길게 늘어진다. 돌계단 끝에 가만히 앉아 본다. 처마 끝에 앉아 있던 새가 드므 속으로 날아간다. 새들의 지저귐이 사르르륵 바람으로 휘감긴다. 찰랑거리는 드므 위로 할머니의 얼굴이 동그랗게 떠오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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