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스트 쳐치 버스 터미널 시계탑 아래에는 카와라우행 버스를 기다리는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매미들이 떼로 몰려나와 나무는 물론 시계탑에도 달라붙어 울어대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허공을 부여잡고 내내 울어댔다. 
 “카와라우 말고 다른 곳은 가고 싶은 데 없어?” 도현에게 물었다.
 “거기면 충분해.” 
 “매미소리 정말 사람 미치게 한다.” 
 “매미는 수컷만 소리를 낼 수 있고 소리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데.” 
 “암컷을 불러 짝짓기를 하기 위한 거 말고 또 있어?”
 “두 가지 더. 하나는 내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이고 마지막 하나는 친구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려고 운다는 거야.”
 “그럼 지금 저 놈들은 지금 왜 우는 걸까?”
 “글쎄......, 내가 좋아했던 시에 매미에 대한 시가 있어. 재희 빌려줬는데, 시 구절에 그런 말이 있어. 매미는 진짜 울기 위해 지금 울지 않는다......,” 그가 그 구절을 소리 내서 말할 때 피곤에 지쳐 웃던 그의 미소가 내 눈에 박혔다. 왠지 모르게 울적해졌다. 
 카와라우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재희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뻔 했다. 오랜만에 셋이 같이 어울리게.” 도현이도 나처럼 재희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가진 것 없는 불안한 현실 앞에서 그도 자신의 마음을 쉽게 내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오직 영주권을 따는 데 집중했다. 서른을 코앞에 둔 우리 셋은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정착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주권은 우리에게 뉴질랜드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더할 나위 없는 울타리였다. 
 “주말에 시간 되면 온다고 했어. 거기 한국사장이 개 같잖아. 크리스마스 때도 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취직한 사람은 다음단계인 영주권 취득을 위해 바빴고, 취직이 안 된 사람은 취직하기 위해 바빴다. 재희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 거의 만나지 못했다. 
 뉴질랜드의 카와라우 번지점프 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지기 두 시간 전쯤이었다. 계곡 사이로 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위에 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는 불안감과 함께 긴장감을 주었다. 번지점프 센터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캐롤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번지점프 다리 위에서 쉬지 않고 차례차례 뛰어 내렸다. 그 반복적인 모습을 한참 지켜보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뭐랄까,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선에 서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듯한 느낌. 도현이 이 곳에 오고 싶어 한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데 그는 이미 안내센터에 들어간 후였다. 그는 주저 없이 번지점프를 신청하고 있었다. 3불짜리 커피 한 잔조차도 쉽게 사 마시지 못했던 그가 300불 가량의 돈을 썼다. 번지점프 체험과 함께 사진과 동영상까지 주는 제일 비싼 상품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다리 위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환호했다. 
 “한 번은 꼭 이 곳에 와서 해보고 싶었어.” 도현의 얼굴에 기대감 찬 듯한 얼굴빛이 오랜만에 스쳤다. 
 “무섭지 않아?”
 “목숨 지켜주는 밧줄도 있는데 뭐.” 그는 승리의 브이자를 하고 카메라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뛰어내리는구나 싶게 쏜살같이 강 아래로 곤두박질했다. 발목에 매달려 있던 꼬불꼬불한 밧줄이 부드럽게 허공에 풀렸다. 카와라우 강 1미터 지점 즈음에서 밧줄이 팽팽해지자, 강한 탄성과 함께 그의 몸통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의 환호하는 모습과 함께 곧이어 고개 숙여 계단을 터벅터벅 밟고 다리 위로 올라가는 그의 모습이 교차해서 보였다. 붉은 노을을 등진 그의 모습이 구부정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이대로 추락하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안내센터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받은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번지점프 하는 동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알아? 내가 날아오른 걸까? 아니면 추락하는 걸까? 7년을 영주권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의 손바닥에 펼쳐진 사진 속의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있었다.
 뉴질랜드 서쪽하늘 노을이 우리들의 희망처럼 희미해져 갔다. 사라져 가는 노을을 등에 지고 숙박할 게스트 하우스를 찾기 시작했다. 시꺼먼 절망의 밤이 우리의 발자국 속으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여행오기 전에 재희 집에 잠깐 들렸어. 재희가 많이 울었어.” 도로에서 허우적대는 매미를 그가 신발로 비벼 밟았다. 그의 신발 바닥에 짓이겨진 매미에 시선이 고정된 채 말하는 도현의 목소리는 습기가 가득했다. 
 “재희랑 뭔 일 있었어? 얼굴 다시 보고 얘기하면 예전과 같이 되지 않을까?” 짐짓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고 명랑하게 말했지만 그는 계면쩍게 웃었다.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강제추방이지만 한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재희는 영주권 서류가 들어간 상태로 알고 있었고, 서류만 통과되면 100% 합격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6개월 먼저 졸업했다. 뉴질랜드 선생과의 갈등 때문에 취업에 필요한 추천서를 받지 못했다. 결국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에 취업했다. 그녀는 매일 푸드코트에서 데리야끼 치킨을 튀겼고, 쇼핑센터에 오는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았다. 똑같은 영어로 똑같은 웃음으로 영주권이 나오는 날을 묵묵히 기다렸다.
 “남들 따는 영주권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건지. 이제 지쳤어......,” 그의 표정은 피곤해 보였다. 그 날 저녁 우리는 게스트하우스를 한참동안 찾지 못해 어둠 속에서 갈 길 잃은 사람들처럼 헤맸다. 매미가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울어댔다.

 들녘을 덮은 하늘이 온통 회색빛이다. 길 위에 달리는 건 오직 버스뿐이었다. 의자를 살짝 젖힌 채 머리를 기대고 있는 그녀는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푸른 초원과 양떼들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버스 차창에 겹쳐지는 재희의 얼굴을 보면서 하나의 영상이 펼쳐졌다. 지나가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장면. 폭우가 몰아치는 다리 위에서 도현이 강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그가 번지점프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올려졌다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어느 곳이 되어도 상관없다던 그의 마지막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의 마지막을 죽음이라는 단어로 채워서 보낼 줄은 몰랐다. 
 “재희야, 우리는 추락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읊조리듯이 말했다. 답답했던 마음이 차올라 입 밖으로 꺼내진 말이었다. 재희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의 대답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녀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지. 눈을 감고 있어도 계속 떨어지니까. 회피하거나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야. 선택은 자기 몫인 거야.” 원망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것이 누구에 대한 원망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말을 끝내고 휴대폰의 홈버튼을 눌렀다.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대로 있었다. 나는 문득 그녀의 불미스러운 일이 떠올랐다. 그 때 그녀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달라졌을까. 
 그녀의 얘기는 요리학교 다니면서 어울려 다녔던 준우형에게서 들었다. 도현의 장례식을 치르고 크라이스트 쳐치에 돌아온 후였다. 준우형은 그녀가 식당사장과 애인 사이였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사장이 그녀를 겁탈했다는 말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녀가 먼저 영주권을 목적으로 사장을 유혹했다는 말도 했다. 그녀는 카와라우에서 크라이스트 쳐치로 돌아오자마자 사라졌다. 어째서 그녀를 만나던 그 시간에 그런 사정을 알지 못했었을까. 도현은 알고 있었던 걸까. 자괴감이 밀려왔었지만 연락이 끊긴 그녀와 이어질 길은 없었다. 서운했지만 그게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버스가 휴게소로 들어갔다. 뿌연 유리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버스에서 배낭여행객들이 앞뒤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내렸다. 휴게소는 적막했다. 맥도널드와 까페가 전부였다. 둘 다 우산을 챙겨오지 않아 금세 머리가 젖었다. 나는 젖은 머리를 흔들며 까페에 들어갔다. 즐비하게 널려 있는 머핀과 페스트리와 도넛을 보자 뜨거운 라면 국물이 더욱 생각났다. 커피와 도넛을 사서 나왔다. 방금 나온 도넛이 입 안에 들어가자 설탕이 온 혀를 감싸 안으며 식욕을 돋구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너는 영주권 땄어?”  그녀에게 도넛과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1차 서류심사 합격하고, 최종면접만 남았어.”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랬구나. 축하해.” 그녀는 짧게 축하의 말을 하곤 더 이상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영주권을 어떻게 땄는지조차도 알려 하지 않았다.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영주권만 보고 달렸었다. 답답한 미래에 숨이 막혀왔지만 주저앉을 수조차 없었던 시절을 같이 보냈다. 한동안 우리는 전염병처럼 피로와 무기력 속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녀와 나 사이에 휑한 바람이 가로질렀다. 식어버린 커피를 든 채 버스로 돌아가려고 하는 데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연락해서 놀랬지? 근데 너 밖에 생각 안 났어. 그 곳에 혼자 갈 자신은 없었으니까.” 그녀는 비 내리는 도로를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비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일기예보를 못 봤는데 폭우가 또 올 것 같은 날씨다. 여름이면 한 두 차례 이렇게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태풍을 동반한 폭우가 뉴질랜드를 강타하곤 한다.
 “너 혹시 도현이가 좋아했던 시 아니?” 재희가 회색빛 하늘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도현이가 여행가기 전에 집에 들렀었어. 내가 식당 사장 때문에 억울해서 울고 있는데 자기가 아끼는 시집이라며 빌려주었어. 도현이가 떠난 후 그 시집을 다시 읽었는데, 시 구절 하나가 내내 떠나지 않더라.”
 “그게 뭔데?” 그녀는 비 내리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시 구절을 전해줬다.
 매미는 울기 위해 지금, 울지 않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매미의 시절이 갔노라고 
 섣불리 엽서에다 쓰지 말 일이다. 
 몸 속에는 늘 꼼지락거리며 숨 쉬는 게 있는데 
 죽어도 죽지 않는 그게, 바로 흔히들 마음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수천 번을 되새긴 듯한 말투였다. 그녀와 헤어진 후 생겼던 동그란 구멍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있었다. 그 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가 나를 쳐다본 후 머뭇거리다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영어로 휴대폰 건너편 남자랑 통화했다. 그녀는 오늘밤 돌아갈 거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남자친구가 배우자로 영주권 스폰해 주기로 했어. 곧 영주권 나올 것 같아” 담담한 목소리와 달리 그녀의 모습은 지쳐 보였다.
 “내가 너 좋아했던 거 아니?” 한 번쯤 다시 만나면 털어놓고 싶었던 말. 나는 준비되지 않은 채 말했다. 언제나 그녀와 둘이 마주한 순간은 그랬다. 
 “매미는 울기 위해, 지금 울지 않는다, 라는 말....., 내가 매미처럼 여름 한 시절이라도 뜨겁게 사랑할 날이 올까? 추락할 것 같은 아찔함 속에 사랑은 사치라는 거....., 너도 알잖아.”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원망과 아쉬움, 분노와 슬픔이 교차되어 일렁였다.  
 “그래, 그렇지” 울컥해진 나는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동그란 구멍에 습기가 들어왔다. 나는 천천히 오라고 그녀에게 말하고 버스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도현이가 여행지에서 언급했던 그 시 구절의 마지막을 일년이 지난 이제 알게 되었다. 그에 대해 가졌던 미련했던 아쉬움과 그녀와 어긋났던 시간이 준 상실감이 밀려왔다. 그 날 이후 내가 그녀에게 가졌던 죄책감도 덜어지는 듯 했다. 
 앞으로 그 둘을 기억하게 될 마지막 감정을 나는 방금 전 휴게소 앞 까페에서 시작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이거면 충분해.’ 
(3부에서 계속)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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