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투데이신문 직장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카와라우 / 최민하 (3부)
[2018 투데이신문 직장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카와라우 / 최민하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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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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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금요일이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시끌벅적했다. 로비에 있는 호프집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 나왔고 젊은이들은 맥주를 들고 몸을 흔들었다. 그와 나도 맥주 하나씩 시켜 야외 테라스로 나갔다. 하늘의 별들이 쏟아졌다. 뉴질랜드 와서조차도 하늘 한 번 제대로 쳐다본 적 없는 생활이었다. 그 때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던 외국인이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말을 걸었다. 그들은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했다. 도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몇 마디 나누다 금방 다른 무리들에게로 갔다.
 “파키스탄인이라 그랬어?” 그는 그들이 나와 얘기하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영주권, 파키스탄인, 아버지......, 지긋지긋해. 한국만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어.” 맥주병을 움켜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국이 왜 그렇게 싫어?”
 “대학등록금 한 번만 내 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라는 놈이 마시던 소주병으로 내 머리를 쳤어. 그 때 방바닥에 산산조각난 소주병과 흘러내리는 피를 쳐다보며 생각했지. 저 개새끼가 없는 세상에서만 살 수 있다면.....,”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였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우리는 호프집에서 나와 근처 슈퍼에 들렀다. 와인과 치즈와 간단하게 요기할 저녁으로 빵을 샀다. 방에 들어와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와인을 따랐다. 침대에서 치즈를 손으로 잘라가며 와인을 소주처럼 들이켠 지 얼마 되지 않아 둘 다 취기가 올랐다.
 “여름 한 때 울어보지 못하고 추락해 죽는 매미도 있겠지. 7년을 기다렸어도.....,” 와인 한 잔 들이켜며 넋두리처럼 말하는 그의 말이 오랜만에 쳐다 본 밤하늘의 별빛만큼 서글펐다. 클라우드 베이의 쇼비뇽 블랑이 그의 손가락 언저리에서 화려하게 출렁거렸다. 같이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잊고 싶어 와인을 쉬지않고 마셨다. 고국을 등지고 떠나서 이민의 길을 선택했지만, 뉴질랜드 생활은 이 나라의 와인처럼 맞지 않았다. 
 취기와 함께 외로움이 몰려왔다
 우리는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 때 그의 부재를 느꼈다면 나는 그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며 자책한 적이 있었다. 그 이튿날 그의 시체가 카라와루 강 하류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이 현장검증을 나왔고 축제의 장소였던 번지점프 센터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구경거리 장소가 되었다. 도현이 남긴 휴대폰으로 한국에 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쉽게 닿지 않았다. 그의 시체를 화장해야 할지 묻어줘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던 차에, 카와라우에 있는 교회의 뉴질랜드인 목사가 장례식을 도와줬다. 그를 교회 옆 무덤에 안치하기로 결정한 후에서야 재희가 도착했다. 그녀는 계속 울었다. 재희와 나만이 그의 무덤 앞에 서서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을 묘비 앞에 올려놓았다. 번지점프하며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며 나는 울컥했다. 미래의 나도 이렇게 추락할 것 같은 불안함과 고통이 나를 후벼댔다. 

 카와라우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건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빗발은 약해져 있었지만 바람이 세찼다. 떠밀리듯 버스에서 내린 그녀와 나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무가 도로 중앙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제 시간에 도착하고 마지막 버스를 타고 크라이스트 쳐치로 돌아갔을 것이다.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만남일까. 처음부터 잘못된 길이었던 것일까. 택시를 불렀어야 했나 후회가 되었다. 교회로 가는 시내버스가 1시간 뒤에야 도착했다. 교회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은 깊어져 있었다. 교회는 불이 꺼져 있었고 묘지는 음침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암묵적 동의라도 한 듯이 무덤을 향해 올라갔다. 관리되지 않은 무덤은 풀이 무성했다. 비석에 그의 이름과 태어난 해와 죽은 해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의 생은 그렇게 단순하게 기억될 것이다. 타인의 인생을 이해하는 일은 애초부터 힘든 일일 수 있다. 재희에게 넌지시 물었다. 내일 아침 일찍 오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교회에 가서 무덤관리도 부탁하고, 무덤자리를 제공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인사도 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교회에서 내려와 생각 없이 발길을 옮긴 곳은 재희와 내가 1년 전에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였다. 우리는 호프집에 들어가서 맥주와 와인을 시켰다. 재희와 달리 나는 몇 잔을 더 마셨다. 하루 종일 도넛 외에는 음식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쉽게 취기가 올라왔다. 재희는 와인 한 잔을 조금씩 마시며 무신경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버스 터미널에서 어색했던 분위기가 다시 되살아났다. 이런저런 생각들의 꼬리가 이어지면서 눈이 감겨왔다. 재희가 나를 부축해 방으로 데려갔다. 
 1년 전에는 내가 재희를 부축했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 때 재희는 계속 울어서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으니까. 
 방으로 가는 내내, 방에 들어와서 우리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두 개의 싱글 침대 중 벽 쪽에 있는 침대에 몸을 뻗었다. 눈을 뜨려고 애썼는데 졸음이 급속히 몰려왔다. 그녀가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듯 했다. 잠시 후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눈이 떠져서 핸드폰을 보니 새벽 3시였다. 주위를 살폈다. 두 개의 싱글침대와 작은 냉장고가 어색했다. 나는 잠시 멍하니 누워 있었다. 바깥은 태풍이 거칠게 비를 내리 꽂고 있었다. 건너편 싱글침대를 보다가 그녀의 크로스 가방만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침대 옆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휴대폰 전화벨 소리가 건너편 침대 위에서 울렸다. 벨소리가 울리는 휴대폰을 크로스백에서 꺼냈다. 그 때 도현이 빌려 주었다는 시집이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섬뜩한 예감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녀가 다시 찾은 카와라우에서 휴대폰과 가방을 남겨둔 채 폭우 속으로 사라졌다. “재희야.....,” 1년 전 뉴질랜드 경찰이 현장검증 후, 카와라우 번지 점프 다리 위에 남겨졌던 도현의 휴대폰을 건네주었었다. 영주권 서류가 합격된 후 장롱에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도현의 배낭을 발견했다. 배낭 속에 있는 휴대폰을 보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원을 켰다. 그가 사용하던 SNS에 자동 로그인되어졌다. 그의 계정 아이디는 MAEMI(매미)였다. 마지막으로 저장된 그의 글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추락도 삶일 수 있음을....., 이제는 추락을 받아들이겠다.’ 또 한 번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시나리오가 발동했다. 나는 서둘러 그녀를 찾아 나섰다. 비는 잦아들었지만 이미 쏟아진 비로 거리는 온통 빗물이 넘쳐흘렀다. 가로등이 띄엄띄엄 있었지만 어둠을 밝히지 못했다. 쓰러진 나무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휴대폰에 내장된 전등을 켰다. “재희야, 재희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때 매미 울음소리가 끊어질 듯 말듯 희미하게 들렸다. 
 카와라우 번지점프센터였다. 무작정 그 곳으로 뛰어갔다. 급하게 뛰다가 넘어지고 무릎이 까졌다. 그 때 매미들이 나를 보고 책망하는 듯 아우성쳤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재희가 카와라우 번지 점프 다리위에서 보였다. 달려가 그녀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몽상에 깨어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구나. 도현이 뛰어내린 곳이.” 순식간에 매미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내리던 비도 그쳤다. 절망의 시간은 끝났다고. 이제는 돌아가라는 신호인 양 해가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크라이스트 쳐치 버스에서 그녀는 카와라우에 다시 한 번 오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일거라고. 다시 안 올 거냐고 내가 물었다. 그녀는 그럴 거라고 말했다. 나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의 풍경은 선명했다. 
 1년 전에도 나는 비 내리는 이 도로를 지나갔다. 크라이스트 쳐치로 돌아갈 때 나는 혼자였다. 그녀는 먼저 간다는 말도 없이 동이 트자마자 사라졌다. 그 때 내 마음이 어떠했던가. 가벼웠던가. 아니었다. 간밤 한숨도 못 잤지만 나는 돌아가는 내내 눈을 붙일 수 없었다. 폭우에 보이는 건 흙탕물 투성이었다. 막상 크라이스트 쳐치에 도착했을 때 내게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나는 그녀의 발자취를 찾아 헤맸다. 그녀가 지나갔을 듯한 매표소, 까페, 화장실을 두리번거리며 그녀가 입었던 회색 반바지와 체크무늬 티셔츠를 기억하려 애썼다. 그녀가 어딘가에서 나타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오랫동안 터미널에 있었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서 기다림의 시간은 내게 형벌처럼 느껴졌다. 뒤늦게 따라온 감정에 몸 둘 바를 몰라하며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만지작거렸다. 끝내 그녀의 휴대폰 번호를 누르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버스 터미널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와 짐을 풀고 우편함 속에 가득 채운 우편물을 확인했다. 뉴질랜드 은행에서 온 서류에는 얼마남지 않은 잔고금액이 찍혀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거의 바닥을 친 상태였다. 이윽고 합격일자를 기다렸던 베이커리 공장에서 채용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새벽 3시 출근하는 정규직이었다. 영주권 취득할 기회가 가까워졌다. 
 휘청거리는 불안한 현실을 탓하며, 나는 내 자신에게 추락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 날 이후 나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크라이스트 쳐치에 돌아온 후 한동안은 도현의 일로 그녀의 불미스러웠던 소문은 덮어졌다. 그 둘에 관련되어 직접적인 상황을 알고 있었던 내게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소문들과 비난들, 조소들을 나는 해명도 동조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버스는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크라이스트 쳐치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그녀는 나와 약속이라도 한 듯 어제 만났던 터미널 시계탑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잘 지내.” 
 “너도 잘 지내.”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그녀가 크로스백에서 도현의 시집을 꺼내 아무 말 없이 내게 주었다. 가끔 연락하며 지내자, 라고 말하려다 말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악수를 나눈 뒤 나는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우리는 왜 더 나아가지 못했을까, 하고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사랑을 하기엔 좋은 시절이 아니었을 수 있었다. 직장과 학교는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고 우리는 그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가끔씩 가벼운 위로로 웃을 수 있었으나 마음 편히 의지하며 소통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달라졌을까.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 그런 생각을 자주 해보았다. 
 1년 전 재희가 카와라우에 도착한 날에도 나는 도현의 장례를 치루느라 바빴다. 재희도 나도 지쳐 있었다. 그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 순간을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같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때도 싱글침대가 두 개 있었다. 그녀가 내뿜은 오랜 침묵을 나는 내 방식대로 합리화시켰다.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녀의 눈물 젖은 뺨을 어루만지며 그녀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그녀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의 무기력한 말투로 한 마디 내뱉었다. 
 “우린 왜 이리 아픈 걸까......,” 그리고 나선 그녀는 미친 듯이 울었다.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으로 버둥대는 몇 초의 순간이 내겐 비겁한 욕망의 절정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 방 창가에 해가 어스름히 뜰 때까지 우리는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며 잠든 척 했다. 그리곤 그녀가 침대에서 내려가 그 방을 빠져나갈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녀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깨어 있었음을.
 그녀의 뒷모습이 터미널 화장실에서 벤치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했다. 그녀가 버스를 타려 할 때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손을 흔들며 미소 지었다. 그녀의 미소 속에서 도현의 마지막 미소가 겹쳐졌다. 우리 둘 다 목격했고 경험했던 그의 이야기는 카와라우에 있는 그의 무덤처럼 덮여질 것이다. 그녀와 헤어진 후 내가 일궈놓은 일상의 세계로 돌아가고 나면 우리들의 절망했던 시간들도 같이 뒤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도현과 지냈던 그 날 밤과, 재희와 지냈던 그 밤의 카와라우는 내게 선명하게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이번엔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녀를 배웅하고 터미널 시계탑 앞에 서 있는데 소란스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뚝, 그쳤다. 
 내 기억의 잔해 속에서 허둥대던 매미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 막 껍질을 벗은 매미는 힘겹게 시계탑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한 낮의 여름햇살이 매미의 등 위에서 뜨겁게 녹아 내렸다. (끝)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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