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시간의 무게, 용산전자상가] 쇠퇴 끝자락, 옛 영광 재현 꿈꾼다
[빛바랜 시간의 무게, 용산전자상가] 쇠퇴 끝자락, 옛 영광 재현 꿈꾼다
  • 이경은 기자
  • 승인 2018.03.19 00: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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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전자상가 1987년 개장…전자랜드·나진상가 등
상인들 “상권 다 죽어버렸다…모두 실업자 될 판”
서울시, 전자상가 21만㎡ 일대 도시재생사업 추진

 

용산전자상가 일대 전경ⓒ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용산전자상가 일대 전경ⓒ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장사가 너무 안 돼. 옛날에는 발 디딜 틈도 없게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지금은 단골손님 몇 명만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정도야. 내 젊은 날을 다 여기서 보냈는데 이렇게 상권이 죽어버린 거 보면 마음이 아프지 뭐”

용산전자상가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다는 김모(60대)씨는 ‘요즘 장사가 잘 되시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 말마따나 지난 7일 오후 용산전자상가를 난생 처음으로 찾아가본 기자의 눈에 비친 상가의 모습은 ‘썰렁함’ 그 자체였다. 상인들 외에 손님으로 온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든 용산전자상가의 모습은 한적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너무나 쓸쓸함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취재를 다니며 상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과거 사람들이 북적댔다는 용산전자상가의 옛 명성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듯 했다.

좌측부터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서기 전 1977년 청과물시장, 용산전자상가 개장 후 1990년대 전자랜드의 모습ⓒ서울시 재생정책과
좌측부터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서기 전 1977년 청과물시장, 용산전자상가 개장 후 1990년대 전자랜드의 모습ⓒ서울시 재생정책과

전자제품 시장의 메카, 왕년엔 잘 나갔다

국제전자센터, 테크노마트와 함께 서울 3대 전자상가로 불리는 용산전자상가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1987년에 개장한 이곳은 과거 청계천 세운상가에 있던 전자상인들을 당시 용산역 서부에 있던 청과물 시장 부지로 이전시키기 위해 기존의 청과물 시장을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새롭게 조성된 일종의 계획상가라고 한다.

이후 용산전자상가는 서울의 대표적인 전자상가로 자리매김하며 컴퓨터 하드웨어, 주변기기, 게임 소프트 등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성지나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용산전자상가에게도 왕년에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정보가 많지 않고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에는 전자기계를 사고자 하는 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용산전자상가부터 찾는 덕분에 1980~1990년대에는 최고 인기를 자랑했었다. 특히 상점이 몰려있어 직접 효과가 크고 여러 군데를 돌아보며 비교해볼 수 있는 것은 용산전자상가의 장점으로 손꼽혔다.

터미널상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들어선 서울드래곤시티 호텔ⓒ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터미널상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들어선 서울드래곤시티 호텔ⓒ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용산전자상가는 원효대교 쪽부터 순서대로 전자랜드, 원효상가, 나진상가, 선인상가, 지금은 호텔로 바뀌어버린 터미널상가, 한신전자타운, 도깨비상가 등으로 이뤄져있다. 상가별로 파는 물품도 다르다. 전자랜드에서는 거의 모든 물품을 다 팔지만 주로 완제품 PC나 가전제품 위주로 판매하는 대형 매장이 많은 편이다. 원효상가는 노래방기기나 전자악기류, 조명기기 등 사업자 위주의 물건을 취급하는 곳이 많다. 나진상가의 취급 물품은 동마다 다른데 12-13동은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를, 17-20동은 컴퓨터와 그 주변기기를 주로 취급한다. 선인상가는 상가 전체가 컴퓨터 전문에 가까운데 조립 PC업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한신전자타운은 주택가 직전 외진 곳에 있는데다가 접근성이 가장 떨어져 다른 상가에 비해 대체적으로 물건 값이 싸다는 얘기가 많다.

지금은 없어진 상가도 있다. 터미널상가는 지하철 1호선 용산역과 연결되는 상가였으나 2014년 5월경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서울드래곤시티 호텔로 바뀌었다. 도깨비상가는 나진상가 15동 지하에 있던 상가로 게임이나 PC 소프트웨어를 주로 판매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폐쇄된 상태다. 도깨비상가에는 또 다른 설도 존재한다. 상인들 말에 따르면 장사가 잘되던 옛날에는 상가 사이사이 가판대에 물건을 놓고 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도깨비 상인이라고 불렀고 그 말이 도깨비상가로 와전됐다고도 한다.

(좌측) 1990년대의 전자랜드 내부 모습ⓒ서울시 도시정책과/ (우측) 현재 전자랜드 내부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좌측) 1990년대의 전자랜드 내부 모습ⓒ서울시 도시정책과/ (우측) 현재 전자랜드 내부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과거의 영광은 어디로?…쇠퇴 끝자락에 서다

용산전자상가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손님들에게 가격을 바가지 씌어 파는 일부 상인들, 일명 ‘용팔이’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상인들은 그건 일부였을 뿐 매출에 직격탄을 입게 된 건 인터넷 유통 발달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신전자타운에서 가전제품을 팔고 있는 상인 김모씨(60대)는 “요즘은 손님이 아예 없다. 이대로 가다간 전자상가가 다 철거되고 상인들은 실업자가 될 것”이라며 “장사한 지 30년 됐는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손님이 10분의 1도 안 오는 것 같다. 장사가 안 되니까 다 망해서 문 닫고 창고나 사무실로 쓰이는 데가 많다. 이렇게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한 건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부터였다”라고 탄식했다.

전자랜드에서 카메라를 파는 또 다른 상인 김모씨(50대)는 “장사가 안 된지 너무 오래돼서 언제부터 장사가 잘 안됐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옛날에는 점심 식사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는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손님이 점점 줄었다. 인터넷으로 사면 집까지 다 배송되는데 누가 귀찮게 굳이 매장에 와서 물건을 사겠냐”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용산전자상가의 매장 수는 약 4000개, 공실률은 지난해 6월 기준 약 20%에 달한다. 매출 규모는 과거 1990년대 연간 10조원에 이르던 게 현재 5~6조로 줄어들어 과거 대비 약 50%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인들은 이처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매출이 줄어든 또 다른 이유로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은 점을 꼽았다. 지하철역에서 거리가 멀고 오가는 버스도 너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용산전자상가를 관통하는 왕복 버스 노선은 2개 밖에 없다.

(좌측) 나진상가 15동 지하에 있었다는 도깨비상가 간판 / (우측) 현재 폐쇄돼있는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좌측) 나진상가 15동 지하에 있었다는 도깨비상가 간판 / (우측) 현재 폐쇄돼있는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전자랜드에서 컴퓨터를 판매하는 상인 김모씨는(60대) “용산전자상가는 위치적으로 대중교통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 버스 노선이 2개 밖에 없고 용산역에서도 너무 멀다. 작년에 지하철역에 3번 출구가 만들어져서 지금은 그나마 찾아오기가 좀 나은데 그 전에는 상가를 오려면 손님들이 한참 돌아와야 했다. 걸어오다 보면 시간이 30분씩 걸리는 건 기본이었다. 고객들한테 ‘어떻게 찾아오라’고 설명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오기가 쉬워야 손님들이 좀 자주 찾아오지 않겠나. 접근성 개선이 시급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불편을 토로하는 손님도 있었다. 핸드폰을 수리하기 위해 용산전자상가를 왔다는 김씨(30대·여)는 “집 근처에 AS 매장이 없어서 처음으로 용산전자상가를 찾아오게 됐다”라며 “여러 매장이 몰려있어 AS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점은 좋은데 교통편이 너무 불편하고 매장 표시도 잘 안 돼 있어서 가게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특별히 이곳의 이점을 잘 모르겠고 사람도 너무 없어서 다시 안 오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좌측부터 한신전자타운 입구, 한신전자타운 내부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좌측부터 한신전자타운 입구, 한신전자타운 내부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도시재생사업으로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올까

최근 용산전자상가가 날개를 달고 다시 날아가기 위해 꿈틀대고 있다. 용산전자상가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서울시는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살아있는 역사인 용산전자상가를 다시 살려보고자 도시재생사업을 구축하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시설 노후화와 소비시장의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용산전자상가가 수십 년 간 축적된 산업 생태계와 상인들의 경험이 살아있다고 판단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새로운 산업 기능과 첨단 제조업의 인프라 구축을 더해 대한민국의 산업 혁신 플랫폼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난 1월 12일 용산전자상가에 도시재생센터를 구축하고 전문 코디네이터를 투입했다. 오는 2022년까지 용산전자상가 일대 21만㎡를 중심지 재생지역으로 선정하고 총사업비 200억원을 지원해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나진상가 휴대폰 매장들이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나진상가 휴대폰 매장들이 문닫은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서울시 재생정책과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아직 계획이 모두 수립된 것은 아니다”라며 “올해 12월까지는 용산전자상가의 재생 계획 수립을 마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대비 매출 규모가 반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이는 용산전자상가의 경쟁력이 저하됐고 복합화가 필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에 서울시에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물건을 살 수 있는 것 외에 용산전자상가를 찾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돼야 찾아오는 인구수가 늘어나고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에 맞게 사업을 진행하려는 계획을 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 활성화 계획을 토대로 내년에는 원효상가 거점공간 조성, 보행체계 개선, 아케이드활성화 프로그램 시행, 안내간판 설치, 상징물 조성, 명품 보행교 건설(용산역~호텔간), 복합문화시설 조성 기본설계 등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쾌적한 상업 및 보행환경이 구축되면 사람들이 보다 편안하게 용산을 즐기게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나진상가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나진상가 12, 13동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도시재생사업과 관련해 상인들의 반응은 엇갈리는 눈치다. 도시재생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상인들이 있는가 하면 사업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상인들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용산전자상가가 살아나길 바라는 상인들이 많은 분위기다.

선인상가에서 컴퓨터를 판매하는 박모씨(30대)는 “주변 상인들에게 용산전자상가가 옛날에는 정말 잘 나갔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낡은 건물들이 리모델링되고 홍보도 좀 잘 돼서 다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상가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라며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상인 윤모씨(50대)는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잘 모른다”라며 “재생사업을 한다고는 하는데 뭐 어떻게 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고 실행에 옮겨져야지 ‘좋게 만들려고 한다’라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수준의 얘기고 바꾼다고 해서 손님들이 많아진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원효상가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원효상가 모습ⓒ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그래도 용산전자상가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 불편한 수고를 감수하고 용산전자상가를 직접 찾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이모씨(30대)는 “인터넷으로 사면 불안하다”라며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게 더 싸긴 하겠지만 물건이 내가 본 거랑 다른 게 올 수도 있고 사기 당할까봐 불안해서 전자제품을 살 때는 직접 보고 사는 게 마음이 편하다”라고 말했다.

용산전자상가가 바뀔 모습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손님도 있었다. 노트북 AS를 받기 위해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는 최모씨(30대)는 도시재생사업에 대해선 “처음 들어봤다”라며 “용산전자상가에 처음 와봤는데 건물들이 낡고 사람이 너무 없어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그런데 재생사업을 통해 건물들이 좀 예쁘게 꾸며지고 사람이 많아지면 또 오고 싶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자랜드 전경ⓒ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전자랜드 전경ⓒ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

나진상가에서 카메라는 파는 박모씨(50대)는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손쉽게 구매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인터넷에서 싸서 물건을 샀는데 제품이 엉망이고 나중에 AS도 안 해주고 전화번호가 바뀌어버려서 연락도 안 되는 등 그런 경험이 있는 분들이 주로 온다”라며 “또 실제 물건을 직접 보고 만져보고 설명을 듣고 살 수 있어서 오는 것 같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용산전자상가가 활기를 찾게 되면 찾아오는 손님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이처럼 과거 용산전자상가의 인기를 직접 겪었던 상인들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예전의 인기가 다시 살아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타자기가 컴퓨터로, 무선호출기가 휴대전화로 바뀌는 그 시간의 중심에는 용산전자상가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입학 날 처음으로 첫 조립컴퓨터를 사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첫 카세트플레이어를 선물 받기 위해 용산전자상가를 찾은 추억도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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