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엄마’라는 존재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기자에게 엄마는 낳아주고 길러 준, 감사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임신·출산을 통해 엄마를 만납니다. 또 엄마는 우리가 성장하기까지 많은 것을 돌봐주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엄마의 수고와 노동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죠. 너무 익숙해서일까요.

기자가 체험한 임산부 체험은 엄마의 수고를 극히 일부 체험한 것입니다. 실제 엄마들이 겪는 고충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엄마들의 가사·육아 노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맘충’과 같은 혐오표현이 등장한 것을 보면 가사·육아 노동의 가치는 폄하돼 온 것 같습니다.

기자는 체험을 함께 한 전소영 기자와 ‘정치하는 엄마들’의 장하나 공동대표를 만나 임신·출산의 고충과 사회 인식의 변화, 저출산 대책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인산부 체험복을 입고 있는 김태규 기자 ⓒ투데이신문
인산부 체험복을 입고 있는 김태규 기자 ⓒ투데이신문

임신하면 달라지는 것들

“저는 세쌍둥이 중 막내거든요. 어머니께서 저를 임신하셨을 때 얘기를 들어보면, 임신 당시에는 쌍둥이라고 알고 계셨대요. 그러다 출산이 임박해서 병원에 갔더니 세쌍둥이라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그 때 세쌍둥이라는 걸 아셨대요. 임신 당시에는 배가 불러서 많이 힘들었다는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대표님께서 임신하셨을 당시를 기억해보신다면.” - 김태규 기자(이하 김태규)

“저는 입덧을 안 해서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어요. 편하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입덧이 없어 수월했죠. 그런데 같이 일했던 의원실 동료 중에 여성 보좌관이 임신·출산을 하셨어요. 그런데 이 분은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하고, 물만 마셔도 토할 정도로 입덧이 심했어요.

임신 상태로 일을 할 때 임신과 외적 요인이 맞물려서 힘들거든요. 아직은 일터에서 임신한 여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떨어져요. 저도 제가 임신하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남성이나 다른 여성 비혼 동료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게 임산부를 힘들게 하지 않나 생각해요.“ - 장하나 공동대표(이하 장하나)

“직장에서 임산부가 ‘힘들다’고 말하면 보통 남성 상사들이 ‘유난 떤다’는 등으로 얘기를 한다더라고요.” - 김태규

“과거에는 여성들의 취업률이 낮아서 현재와 차이가 커요.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임신했을 때 취업 상태에 있죠. 상사의 성별을 떠나 임산부에 대한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요. 임신 뿐 아니라 출산하고 육아기에 있는 노동자들도 회사로부터 전혀 이해받거나 배려 받지 못하거든요. 임신이나 육아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애를 낳아 키우던지 아니면 직장생활을 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강압적인 상황에 놓이죠. 표현대로 일·가정 양립을 사회가 용인하고 있느냐를 보면 그렇지 못하다고 봐요.” - 장하나

“저는 제 동생들이 쌍둥이거든요. 제가 여섯 살 때 동생들을 임신하셨으니까 저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였어요. 저희 어머니는 입덧이 정말 심하셨어요. 그 때 제가 샤워를 하고 나오면 샴푸 냄새 때문에 구역질을 하실 정도셨어요. 요즘에는 임신을 하면 남편들이 많이 챙겨준다고 하는데, 저희 아버지는 엄청나게 가부장적인 분이셔서, 돈을 벌지 않는 여성은 임신을 한 상황이라도 가사를 온전히 돌봐야 한다고 강요해서 더 힘들어하셨던 것 같아요.” - 전소영 기자(이하 전소영)

“사실 이 문제는 과거와 비교하면 답이 안 나와요. 현대의 여성들이 과거의 여성들과 비교하면 훨씬 편한 상황에 있어요. 진보하고 발전해가던 과정, 평등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것은 여성들도 알아요. 과거보다 나아진 걸 현대 여성들이 몰라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 결혼에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가 서른아홉에 아이를 낳게 됐거든요.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임신·출산을 겪고 육아를 하면서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안 하면 내 딸도 똑같은 불편과 차별을 겪을 거라는 생각이 엄습했어요. 최근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많이 회자되는데,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92년생, 02년생도 82년생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거예요.“ - 장하나

“저는 사실 체험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무게 체험정도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임신했을 당시에 어떤 신체적인 변화와 고충이 있었나요?” - 김태규

“임신하고 배가 부르면 편하게 누울 수 없기 때문에 밤새 뒤척이고 잠을 잘 수 없기도 해요. 제가 입덧이 없어서 비교적 수월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몸무게도 많이 늘어나고, 모든 신진대사가 아주 불편해져요. 또 태아가 자라야 하니까 먹기도 엄청 먹고, 그래서 소화불량, 변비는 항상 달고 살게 되죠. 입덧 있는 사람은 말할 수도 없겠죠. 반죽음인 거예요. 그런데 임신 당시에는 너무 힘들지만 출산 후 육아가 훨씬 힘들기 때문에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아요.” -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장하나 공동대표 ⓒ투데이신문
‘정치하는 엄마들’ 장하나 공동대표 ⓒ투데이신문

육아와 직장,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임신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 전소영

“임신이나 육아 때문에 당연히 일에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개인의 문제’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티내거나 지장을 주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사람을 미치게 하거든요. 일터에서 2등 노동자가 되는 거잖아요. 성과나 실적이 임신 전만큼 안 나오니까요. 임신한 순간부터는 임신해서 미안하고, 사람들한테 ‘나는 임신이 체질인가봐. 별로 안 힘들어’라는 말을 누가 묻지 않아도 계속 하면서 괜찮은 척을 했던 기억이 나요. 저는 심지어 국회의원이었는데도 사회적 압박이 있었는데, 조직에 속해있는 사람은 더 힘들겠죠. 성과가 덜 나는 게 송구하고 면목 없고…지나고 보니까 임신한 사람이 이런 감정을 갖도록 하는 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산율은 국가적인 문제고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하면서 실제 개인이 임신·출산할 때 부모들의 상황을 사회가 이해해주느냐 하면, 사실상 각개전투, 각자도생이에요. 그게 제일 짜증나는 거죠.“ - 장하나

“저도 그런 게 걱정되긴 할 것 같아요. 결혼을 계획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직업의 특성상 자리에 앉아서 정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밖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임신 초기에야 배가 부르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힘들어보이진 않겠지만 ‘애가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겠죠. 또 배가 불렀을 때 카메라를 다 짊어지고 다니면서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 전소영

“무거운 걸 드는 건 무리죠. 활동량이 있는 건 좋은데, 이미 태아가 있고 몸무게가 불어난 상태에서 무거운 걸 들고 움직이는 건 정말 무리가 돼요.” - 장하나

“아무리 배려를 해준다고 해도 임신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짐을 넘긴다는 심리적인 압박도 있을 것 같아요.” - 전소영

“저도 비슷했어요. 국회의원이라는 게 현장에도 한 번 더 가고, 행사장 한 번 더 찾아서 사람 만나는 게 실적이 되는 건데, 그런 외부 일정에 제약이 있으니 어렵죠.

대기업에서도 눈치가 보여서 육아 휴직을 잘 못쓰거든요. 대기업이야 육아휴직 쓴다고 막 자르진 못하지만, 승진을 포기하면서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거죠. 출산하면 으레 육아휴직 가는 분위기가 됐지만 알아서, 힘들어서 퇴사하는 분위기죠.

딱 그만큼만 사람 뽑고, ‘힘들면 나가떨어지겠지’, ‘여성은 안 뽑아야지’하는 것들도 작용해요. 제 생각에는 여성들이 가진 능력이나 평가점수 등을 보면 오히려 여성들이 뽑혀야 한다고 봐요. 왜냐면, 시험으로 뽑는 교사 공무원, 판검사, 의사 이런 것들은 여성들이 더 많잖아요. 그런데 민간에서 면접이 들어가고, 주관적 평가가 들어가는 데서는 아직 여성에게 진입장벽이 높아요. 그런 조건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의 걱정이 발생하는 거죠. 회사에 피해주지 말라는 게 여전히 작동하잖아요.

교사 공무원은 대체인력을 쓰도록 돼 있어요. 출산예정일이 나오면 그 때부터 1년간 근무할 대체교사를 뽑는 공고를 내요. 이렇게 출산·육아 등으로 휴직을 하게 되면 이에 대한 대체 인력은 여성이 고민할 게 아니라 조직에서 고민해야 할 일이죠. 일·가정 양립을 성취한 국가에서 어떤 정책을 쓰는지 보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대체인력 고용 등은 회사의 비용이 필요한 문제잖아요. 여성들이 제도정착을 위해 요구하는 목소리를 낸다면 그런 것들은 회사가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국가의 지원은 어떻게 할 것인지 해결이 되겠죠.

이런 고민을 다른 나라에서 안한 게 아니에요. 바뀌는 속도가 다를 뿐이죠.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한 노력이 너무 적은 것 아닌가 싶어요.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몇 년 일하지도 못하고 결혼해서 출산하면 육아를 위해 퇴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혼인·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에요. 모두가 29세까지 청춘을 다 바쳐 취업했는데, 여성이 출산을 이유로 퇴사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죠.“ - 장하나

임신 체험 중인 김태규 기자 ⓒ투데이신문
임신 체험 중인 김태규 기자 ⓒ투데이신문

‘위대한 모성’ 뒤에 숨는 아빠

“임신을 말하면서 육아를 빼놓을 순 없잖아요. 보통의 경우 임신을 하고 육아를 준비할 텐데, 대표님은 어떻게 육아 준비를 하셨나요.” - 김태규

“저는 임신했을 때 임기 중이어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출산 후에 어떻게든 빨리 복귀해서 남은 임기를 수행해야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얘기는 못 드릴 것 같아요. 출산 후엔 남편이 독박육아를 했어요. 준비고 자시고 할 게 없었죠. 임기 중이라 정신없이 준비랄 게 없이 막 지나갔어요.

육아준비하면서는 포털 검색을 달고 살았던 거 같아요. 누가 육아에 대해 체계적인 정보를 주거나 육아에 대한 24시간 콜센터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게 없잖아요. 육아를 잘 모르는, 이제 막 아이 낳은 엄마들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거죠. 과거에는 가족, 골목, 동네에서 애를 같이 키웠다면 지금은 포털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좌충우돌하면서 키우죠.“ - 장하나

“국가에서 제공하는 육아정보는 없나요?” - 전소영

“복지부에서 운영 중인 ‘아이사랑’이라는 임신육아종합포털이 있는데, 내용이 너무 부실해요. 이 포털을 보고 너무 놀란 게, 임신했을 때 임신 과정에 따라 출산예정일 30일 전부터 매일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안내를 한 게 있어요. 그 중에 임신 1주일 전쯤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 집안 가재도구에 이름을 다 써 붙여 놓으라는 거예요. 집에 혼자 남겨진 남편님께서 우왕좌왕하시니까 그 분 당황하지 마시라고 배려하라는 거죠.

또 출산 후에 몸매가 망가져서 우울하니까 혼자 밥을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조금 담아서 먹으라고 하고…사실 처음엔 정신없어서 끼니도 못 챙겨요. 애 굶기지 않으면 다행이죠.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 집은 항상 비상대기인데, 몸매 망가지면 여성들이 슬프고, 남편님 실망하실 테니 어떻게 관리하라는 둥 이런 걸 정보제공이라고 하니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이걸 지적했는데 지금은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 장하나

“2016년엔 배우 정가은씨가 모유수유 하는 사진을 SNS에 올려 논란이 일기도 했어요. ‘야하다’거나 ‘모유수유 하는 중에 셀카를 찍는 건 진심으로 수유하는 게 아니다’라며 비난을 한 사람들도 있었죠. 반면 모성을 강조하며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반응도 있었어요. 저는 ‘야하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또 너무 모성을 강조하는 표현도 옳지 않은 것 같아요.” - 김태규

“저는 엄마가 돼보니까 엄마가 정말 멋지고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말은 아름답다, 위대하다고 하면서 맘충 취급하는 게 어이없죠. ‘애 낳으면 애국자’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애국자 대우를 해주나요?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이 공허하다는 게 문제지 말 자체가 나쁘진 않아요. 여성에게 모성을 강조하고 고통을 감내하도록 강요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모성 자체의 가치는 여성에게만 강요된 게 맞잖아요. 육아를 해보니까 정말 힘들어요. 여성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니에요. 위대하고 아름다운 ‘부성’이 나타나야 하지, ‘모성은 아름답지 않다, 위대하지 않다’라고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 장하나

“저도 그 지점에서 모성을 강조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위대한 모성’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여성에게 육아를 맡겨버리는 게 문제라고 봐요.” - 전소영

“그렇죠. 그런 게 늘 문제가 돼왔던 거죠. 그런 말을 하는 남성들에게는 ‘그렇게 아름답고 위대한 거면 너희들도 같이 해 봐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언제 위대해지겠어요? 육아하면서 아빠들도 한껏 위대해져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아름답고 위대한 취급을 해주던가. 더 이상 ‘위대한 모성’이라는 메커니즘은 작동하지 않아요.” - 장하나

“임산부 체험을 하면서 전철의 임산부 배려석을 자주 관찰하게 됐어요. 제가 보기엔 주로 남성들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더라고요. 지난 2016년에는 어떤 남성 노인이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임산부에게 ‘진짜 임신했는지 확인해야겠다“며 임부복을 들춘 일도 있었는데,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를 어떻게 보시나요?” - 김태규

“전철에 임산부석이 생긴 걸 보면서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어요. 임신·출산·육아는 한 세트잖아요.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없이 ‘지하철에서 편히 앉아 가라’는 정도가 최선인가 싶었어요. 노인이 배를 들춰 본 얘기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사회현상으로 볼 건 없고, 근본적인 처방 없는 작은 배려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여성은 엄마가 될 권리도 있고, 계속 경력을 유지할 권리도 있어요. 그래서 엄마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로 존중을 받으면 나머지 배려, 존중은 다 따라올 거예요.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엄마’는 멸시의 대상인 것 같아요. 임산부 배려석도 좋긴 한데 시혜적이죠.” - 장하나

사진제공 = ‘정치하는 엄마들’ 장하나 공동대표
<사진제공 = ‘정치하는 엄마들’ 장하나 공동대표>

엄마들의 노동 재평가돼야

“정부의 저출산 정책 홍보물들을 보면 임신한 ‘여성’보다는 ‘아이는 미래를 위한 가장 완벽한 보험’이라며 ‘미래 세대’를 강조하기도 해요.” - 김태규

“이런 홍보는 사실 아이를 위한 것도 아니잖아요. 아이나 여성 모두 도구화 돼 있어요. 아이들은 사회를 위한 보험도 아니고 대책도 아니에요. 그저 그 자체로 완전성을 가진 존재예요.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는 존재도 아니죠. 천부인권이라고 하잖아요. 날 때부터 권리를 가진 존재예요. 그런데 한국은 인권감수성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나라잖아요.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아니라, 자기 권리도 지키지 못해요.

출산을 포함해서 여성이 하는 가사노동이나 육아, 돌봄의 가치 자체가 폄하돼 있어요.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국가가 해야 하는 역할을 개인에게 맡기고 있는 거예요. 가사·육아·돌봄의 가치가 재조명 되면 여성에 대한 멸시·비하는 사라지지 않을까 해요. 제가 애를 낳고 길러보니까 엄마가 하는 일이 정말 멋진 일이예요. 한 사람을 낳아서 키워가는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잖아요. 제가 태어나서 한 일 중에 가장 멋진 일 같은데 세상에서 인정을 안 해주네요(웃음).” - 장하나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많은 예산을 쓰면서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시나요.” - 전소영

“저출산대책위원회 위원장인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의 저출산 대책 기조를 출산율 수치보다는 여성, 엄마의 삶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어요. 정부에서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 무상보육, 아이돌보미서비스 등을 하는데, 당장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드니까 일단은 환영해요. 그렇지만 그런 걸 한다고 아이를 더 낳지는 않아요. 이게 저출산 대책에 대한 평가의 핵심이에요.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 키우기 힘들어서만이 아니에요.

예컨대 오스트리아가 출산 시 일시금으로 한화 1800만원 정도의 돈을 줘요.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출산율은 제고되지 않았어요. 돈을 주려면 이 이상을 줘야 효과가 있을 거라는 얘기죠. 한국이 너무 저임금·장시간 노동사회니까 당연히 돈을 주면 좋지만, 그건 저출산 대책이 아닌 보통의 복지정책이에요.

여성들에 대한 ‘엄마가 될래, 아니면 계속 일 할래’라는 선택 강요가 사라져야 해결된다고 봐요. 출산을 하는 순간 모든 게 바뀌잖아요. 애는 남편이랑 같이 낳았는데, 남편의 인생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고 여성들의 인생은 갑자기 안드로메다로 가는 거죠. 이걸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면 저출산 대책이 아니에요.” - 장하나

“임신·출산으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제도가 있을까요.” - 김태규

“임신·출산·육아로 불이익을 주는 건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제도의 실효성이 없어요. 육아휴직 후에 이전과 같은 보직에 같은 월급 받으면서 하던 업무 그대로 복귀할 수 있다고 돼 있어요. 그런데 보직은커녕 복귀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고용노동부가 이와 관련해서 의지를 가지고 근로감독을 하거나 불법사업장을 처벌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대통령이 남성도 육아휴직 쓰는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상위 50%도 안 되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같이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데서나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가는 거지, 하위 50% 이상의 일자리에선 여성들도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고 퇴사하거나 해고당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위 50%를 끌어올려서 차이를 줄이는가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 것 같아요.” - 장하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는 기존의 정책을 자리를 잡는 게 우선이 돼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 전소영

“네. 그러기 위해서는 처벌이 강화돼야 해요. 한국은 기업 처벌을 진짜 안 하거든요. 출산휴가·육아휴직·육아기 단축근로 등을 다 포함해서 노동부에서는 ‘일·가정 양립 지원 제도’라고 해요. 이 제도를 중점으로 근로감독도 하고 시정이나 처벌을 확실히 하면 당연히 개선이 되겠죠.

정말 의지가 있다면 고용노동부가 실효성 있게 적발하고 처벌하고. 또 현행법에서 처벌하는 수위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진정을 해도 오히려 진정을 한 사람이 불이익 받고 회사에 대한 처벌은 약한 게 문제죠.” -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장하나 공동대표 ⓒ투데이신문
‘정치하는 엄마들’ 장하나 공동대표 ⓒ투데이신문

병원만 배불리는 임산부 지원 정책

“임신 시 초음파 검사 등 비용이 많이 필요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이와 관련해 지원이 많이 되고 있나요?” - 김태규

“한국은 다른 OECD 국가들보다 2~3배 정도 검사를 많이 해요. ‘국민행복카드’라고 임신하면 50만원 주는 게 있는데, 이게 생긴 후에 오히려 의료업계에서 검사를 매달 하고 초달하고 막달엔 매주 검사를 해서 이 돈을 다 챙겨가요. 그런데 영국이나 북유럽 같은 경우는 임신 전체 기간 동안 2~3번이에요.

2015년 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펴낸 ‘임신 및 출산 지원 강화를 위한 기초조사 연구’에 다르면 한국 임산부들은 임신기간 동안 평균 7.5회 초음파 검사를 받고 61.6%가 염색체(기형아) 검사를 받고 7.6%는 양수 검사도 받는다고 해요.

스웨덴은 모든 임산부에게 보건소에서 산전관리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고, 이상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산부인과 진찰을 받아요. 또 임신 18~20주 사이에 실시하는 초음파 검사는 1회에 한해 국가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지만, 그 이상 초음파 검사비는 모두 개인이 부담해요. 이는 초음파 검사와 정상적인 임신·출산과의 상관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정책이라고 해요. 분만 비용은 아동복지나 보험이 적용돼 무료라고 하고요.

프랑스는 임신 기간동안 7회의 산전검사를 하고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요. 초음파 검사를 3달에 한 번식 총 3회 지원하는데 임신 5개월 전에는 본인부담 10%, 나머지는 전액 무료고요. 영국도 임신·출산·산후 관리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2개월 이내에는 처방 의약품까지 무료라고 해요. 산전 검사는 7회 실시하는데 이 중 2회만 초음파 검사고 나머지는 혈액이나 안과 검사라고 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산모·태아의 사망률이나 위급상황 비율이 이 나라들보다 높아요. 검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산모와 태아의 건강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 거죠.

2016년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실이 주최한 ‘출산인프라 정책토론회’에서 대한산부인과학회는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기 위해 월 5618만원이 든다고 밝혔어요. 월평균 자연분만 13건, 제왕절개 7건을 실시한 수가가 3380만원이니까 매월 2301만원의 적자가 발생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산부인과의 고충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검사 횟수를 비정상적으로 늘리고 임산부들이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도록 하는 게 정당하진 않죠. 약자한테 피해를 전가하는 거잖아요. 복지부에서 과도한 초음파 검사를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주고 이에 따라서 임산부들이 검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시장에 맡기다 보니…말이 자율이지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선 전문가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잖아요.

50만원 지원하는 게 불필요한 검사로 너무 많이 쓰이고 있어요. 그리고 초음파 검사의 비급여 일 때 시세가 7~8만원이었는데 급여가 되면서 시세가 20만원대로 확 올라갔어요. 결과적으로 개인 지출은 그대로인 거죠. 내 지출은 그대론데 건강보험공단에서 병원에 들어가는 돈은 더 많아져서 병원의 이익만 올라갔어요.“ - 장하나

“임신하지 않으면(못하면) 여성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시각도 존재하는데. 출산으로 인정받는 여성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김태규

“윗세대들이야 그렇겠지만 요즘 세대는 결혼 안하고 애 안 낳았다고 주변에서 딱하게 보나요? 너무 옛날얘기 같아요. 한 가지 말하자면, 불임인 경우도 있고, 반면 베이비박스 같은 것도 존재하고…국가에서 저출산 운운하면서 이미 낳은 아이들 책임도 안 지고, 불임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사회적인 지원제도도 빈약하죠. 임신·출산에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한 만큼 불임에도 지원이 필요해요.

그런데 여전히 며느리가 애 못 낳으면 눈치는 주겠죠? 하지만 아이를 못 가져서 가장 속상한 건 당사자일 거예요. 아니면 부부가 합의해서 아이를 안 낳는 딩크족일 수도 있고요. 어느 경우건 부모에게 미안해할 부분이 아니에요.” - 장하나

“대표님이 육아를 하면서 육아에 대한 시선에 대해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 전소영

“맘충 같은 혐오적인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면전에 대놓고 말하진 않잖아요. 온라인상에서 혐오표현이 있다는 건 아는데, 제 경우엔 온라인상의 혐오표현이 일상에서 위협이 되진 않았어요. 차별이나 혐오를 직접적으로 느낀 건 ‘엄마=아줌마’라는 멸시죠.

아이 낳고 낮 시간에 편한 옷차림으로 유모차 끌고 마트 갈 수 있잖아요. 그 때 그런 걸 느껴요. 미혼일 때는 그런 걸 못 느꼈는데, 낮 시간에 유모차 끌고 가면 사람을 하대하는 게 느껴져요.

모성은 위대하다는 말이 기분 나쁜 이유는 그 지점이에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실제로는 직업에 귀천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처럼, 엄마가 하는 일을 여전히 하찮게 보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 사회가 엄마나 아줌마가 하는 가사·육아·돌봄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거죠. 이제는 그런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여성과 남성이 함께 나눠서 감당해야죠. 특정 성별에 전가하지 않아야 하고 그 노동의 가치가 존중 받아야 해요. 모든 사람이 그 역할을 하면 그 노동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어요.“ - 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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