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이미 수차례 예고된 움직임
우리 사회 외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생명까지 위협하는 여성문제, 근절돼야
여성운동, 모두 평등한 사회 구현 목표
부작용 뒤따라도 지속적 여성운동 필요

허민숙 입법조사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허민숙 입법조사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한국 사회에는 ‘미투(Me-too) 운동’ 바람이 불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시발점으로 법조계, 연극계, 연예계, 심지어는 정치계까지 미투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왜 갑자기’라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들은 곳곳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던 부당한 일들을 공론화하려 애써왔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거리로 나섰으며, SNS상에서는 성폭력을 고발하는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표적이 돼야 했던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일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간절한 외침을 끝끝내 외면했다.

뭇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들의 움직임이 오히려 더 많은 여성문제를 조장하고 또 다른 성차별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라도 여성들이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게 국회 입법조사처 허민숙 입법조사관의 지적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를 지낸 허 조사관은 그동안 여성학자로서 우리 사회의 여성 폭력과 차별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며 목소리를 내왔다. 현재는 그동안 제시해 온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법안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입법조사관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허 조사관은 여성들이 내는 목소리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여성우대나 여성우월을 요구하는 게 아닌 모두가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여성폭력과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문제 근절, 성 평등을 위한 다양한 법안이 마련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우선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5일 허민숙 조사관이 있는 국회 입법조사처를 찾아 우리 사회 여성문제와 해결방안, 최근 큰 화두로 떠오른 여성운동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뉴시스
ⓒ뉴시스

Q.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의혹 폭로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미투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검사라는 위치가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많은 분들이 ‘검사도 성희롱을 당하냐’, ‘엘리트 여성도 성추행 대상이 되냐’ 라는 반응을 보였다. 여성들의 성범죄 고발이나 폭로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검사라는 사회적 지위의 특수성이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본격화되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검사 정도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여성이 폭로해야 관심을 갖는다는 게 씁쓸하기도 하다.

Q. 미투 운동의 취지는 무엇인가.

미투 운동은 미국 사회에서 시작된 거물급을 상대로 한 성범죄 피해 사실 고발 운동이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위치가 자기와 비교했을 때 워낙 보잘 것 없고 사회적으로 언제든지 처단 가능한 위치라고 강력하게 믿어왔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많이 배운 엘리트이자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들은 굉장히 ‘젠틀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막말이나 성범죄를 저지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미투 운동은 이러한 성범죄에 관한 많은 통념들이 깨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Q.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에 앞서 비슷한 맥락의 ‘해시태그’ 운동이 SNS상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

여성들의 말하기 역사는 굉장히 오래됐다. 여성들은 늘 신고하고 폭로해왔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는 소수의 여성들은 굉장히 비난을 받았고 결국 피해자가 입을 닫고 움추러드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런데 SNS가 활발해지면서 많은 여성들이 익명으로나마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하고 공감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남성들은 성범죄를 개인적인 문제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여성들이 개인이 아닌 우리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는 깨달음을 얻고 있다는 게 매우 중요한 점이다.

Q. 미투 운동의 시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라는 의견도 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은 계속해서 부인해왔고 피해 국가인 한국마저도 부끄러워해야 할 치욕의 역사라며 묻으려 했다. 하지만 김학순 할머니가 1993년 ‘내가 위안부였다. 내가 살아있는데 누가 그 일을 없었다고 하느냐’고 폭로하시면서 일종의 미투 운동의 물꼬가 텄고 지금까지 일본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김 할머니께서 정말 어려운 발걸음을 뗐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는 피해자들의 폭로보다는 청중의 자세가 중요하다. 지금 미투 운동의 흐름을 통해 ‘청중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Q. 지금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은 어떤 양상을 보이는가.

서지현 검사가 용기를 낸 이후 이윤택 감독, 배우 조민기 등 자기 분야에서 권력 있는 자들의 과거부터 최근까지 행적들이 폭로됐다. 그렇게 계속해서 가해자에 대한 비난 일색으로 가다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부터 ‘저게 불륜이지 미투냐’, ‘성폭행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남초 사이트에서는 ‘외모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데 (성폭행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나오며 엉망진창인 형국이다. 이런 잡음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고, 대중들이 피해자의 말을 완전히 신뢰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당혹스럽진 않다. 다만 향후 사법부에서 안 전 지사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허민숙 입법조사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허민숙 입법조사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Q. 미투 운동을 계기로 여성들이 일상에서 각종 성범죄에 많이 노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모 언론에서 지난해 직장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9%가 ‘성희롱을 겪고 있다 혹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성범죄를 경험하지 않은 여성이 있을까 싶다. 가해자들은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해왔고 여성들 스스로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내가 조심했어야 하는데’라며 죄책감을 갖고 오히려 자기반성을 하는 사회문화가 오래전부터 지속돼왔다. 한국 사회는 성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Q. 뒤늦게 성범죄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소리를 지른다’, ‘뺨을 때린다’, ‘경찰에 신고한다’ 등 범행 즉시 반항할 거라는 게 성범죄에 대한 통념 중 하나다.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여성들이 경험한 성범죄 가해자의 다수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과의 관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이제 와서 이러는 이유가 뭐냐며 피해자를 탓하기에 앞서 신고를 했을 때 우리 사회가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를 되짚어봐야 한다.

Q. 성범죄 무죄율이 일반 범죄보다 높으며, 무죄일 경우 가해자가 되레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범죄는 입증이 어렵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사적인 공간에 있었을 확률이 굉장히 높으며, 두 사람은 사건의 당사자이자 목격자인데 서로의 진술이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안 전 지사는 ‘강압 없는 합의된 관계’라고 하는 반면 피해자인 김지은씨는 ‘성폭행’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진실을 판가름하는 것은 사건을 담당하는 수사관이나 검사, 판사의 몫이다.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남성들, 즉 가해자의 말을 믿어왔다. 때문에 성범죄는 무혐의로 풀려나거나 집행유예 선고 확률이 높다.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게 아니라 증거나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를 무죄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고 가해자는 거기에 힘을 얻어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들며 피해자를 역고소하기도 한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 신고율은 2%에 머물고 있다. 과연 2%의 여성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의 98%의 여성들이 입을 다무는 것인지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Q. 수사 과정에서 대체적으로 남성들의 말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이례적인 범죄다. 다른 범죄와 달리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압도적이다. 사회적으로 남성에 비해 지위와 권력이 낮은 여성들이 피해자이다 보니 ‘과연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성범죄 상담사도 피해자들에게 조사를 받을 때 많이 울어서도 안되고 너무 안 울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많이 울면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안 울면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걸 보니 피해자일 리 없다’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여성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딜레마에 빠지는 격이다. 여성들이 진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애초에 믿지 않는 거다. 이러한 의식은 보이진 않지만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짙게 깔려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속에서 남성은 일 열심히 하고. 진지하고, 성취를 향해 달리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반면 여성은 정신없고, 멍청하고, 별생각 없고, 질투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 현상을 초래한다고 본다.

Q. 성범죄 폭로 이후 2차 피해로 고통받은 피해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됐듯이 성범죄 사실을 믿지 않는 데다가 그걸 넘어서 왜곡하거나 심지어는 없는 얘기를 꾸며내기도 한다. 당사자가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누군가 날조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할 수는 있다. 그런데 네티즌이나 많은 대중들이 그 허위사실을 있는 그대로 손쉽게 믿는다는 게 큰 문제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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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성들은 성범죄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6년 발생했던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대표적 ‘여성혐오’ 범죄로 평가되는데.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공식적인 입장은 ‘혐오범죄가 아니다’였다. 혐오범죄가 아닌 정신이상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이기 때문에 남녀 대결구도 흐름은 옳지 않다는 입장인 건데 동의할 수 없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혐오범죄의 특성을 고루 갖췄다. 경찰의 설명대로 묻지마 범죄였다면 우선 자기가 목표로 한 성별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거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상황에서 어떻게 여성이 나타날 때까지 6명을 그냥 보냈겠는가. 또 범행 동기가 없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라는 건데 범행 동기가 없다면 현장에서 사망할 만큼 잔혹할 수 있을까. 혐오범죄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된다. 만약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혐오범죄로 가중처벌을 받았을 텐데 한국 사회에서는 목사의 꿈을 가진 한 청년이 삶이 망가지면서 저지른 묻지마 범죄라고 가해자를 동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는 피해자를 ‘화장실녀’, ‘강남녀’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Q. 일부는 남성들은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을 좋아하는데’라며 여성혐오를 부정하기도 하는데.

그렇다. 많은 남성이 ‘내가 여성을 얼마나 좋아하는데’라며 분노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의 태도는 극과 극이다. 극찬하거나 혐오하거나. 외모가 예쁘거나 자신의 삶은 온데간데없이 모든 걸 헌신하고 희생하는, 우리 사회가 정의하는 여성다운 여성을 선호한다. 하지만 자기주장을 하거나 남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넘어서려고 하거나, 성취욕이 많고 적극적일 때는 싫어한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프레임 안의 여성은 극찬하지만 그것을 벗어나면 혐오한다. 이런 사람들이 여성 혐오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Q.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인가.

강남역 살인 사건이다. 그동안 ‘된장녀’, ‘김치녀’ 등 여성혐오는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이에 대해 여성들은 끊임없이 얘기해왔지만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터져버렸다. 당시 강남역에 추모를 나온 여성들이 써 붙인 수많은 포스트잇에는 ‘나 일 수도 있었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여성들이 이제는 ‘나도 여자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죽을 수 있구나’라는 공포를 느끼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온라인 공간에서 남성들은 여전히 여성을 동등한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희롱이나 놀림거리로 삼고 있다. 그리고 반성은커녕 오히려 남성혐오를 주장한다. 지금의 펜스룰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 문제가 나아지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Q. 여성혐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 사회는 성 평등 구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1980년대 여성운동의 전성기 이후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관련 법안들이 생겨났다. 성 평등한 사회가 민주사회의 기본이라고 여기며 노력해왔는데 여성혐오는 이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다. 한국 사회의 전체 노력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 전체에 굉장히 해롭다고 보인다.

Q.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굉장히 활발해졌다.

10·20대 여성들이 각성한 거다. 과거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여전히 ‘옛날이 좋았는데 요즘 여자들은 왜 이렇게 난린가’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면 깨우쳐야 한다. 더 이상 여성들이 움츠러들고 과거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현재 10·20대 여성 중에는 성불평등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최근에 카이스트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카이스트는 70%가 남학생이기 때문에 남학생 위주로 행사가 진행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된다. 여자라는 이유로 가정 내에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없던 여학생도 학교에 와서 여성문제를 깨달은 경우가 있더라. 이런 경험들이 많은 여성들이 여성문제가 더이상 남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Q. 페미니즘 운동이 다소 왜곡된 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페미니즘을 여성우대나 여성우월을 주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게 기성세대는 남성이란 이유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걸 누렸다. 하지만 현세대 젊은 남성들은 성별 구분 없이 동등하게 경쟁하는데 많은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고 주장한다. 그런 상황에서 비롯된 ‘왜 남자는 능력 있고 잘생겨야 하고 완벽해야 해’라는 분노를 여성들에게 터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분노의 화살을 여성에게 꽂을 게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억압을 무너뜨리기 위해 협업하고 바꾸자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Q. 성 평등 사회 구현을 위해 나아가야 할 올바른 페미니즘의 방향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해오던 것들을 지속해야겠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영페미’라고 불리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실제로 만나서 폭행을 당하지 않아도 온라인상에서의 모욕적인 욕설, 신상털기 등에 상처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친구들이 전면에 나서 싸우는데 기성세대로서 너무 편하게 지내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할까 고민이다. 젊은 친구들이 자신들의 문제로 여기고 발 벗고 나선 이상 그 운동이 지속되길 바란다.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 더 많은 남성들이 올바른 방향의 여성운동에 참여하고 지지를 보내줄 거라 기대한다.

Q. 미투, 해시태그, 페미니즘 등 여성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뭉칠 수 있는 세력이 크기 때문이지 여성인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남성, 유색인종, 빈곤층의 인권에 관심 없는 건 아니다. 여성운동이지만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결국 모두가 평등한 사회다. 누군가를 희생해 권리를 빼앗겠다는 게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게 여성운동이라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허민숙 입법 조사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허민숙 입법조사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Q. 여성운동 과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온라인상으로의 확대다. 과거에는 운동한다 그러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밖으로 나와 어떤 조직자에 의해 결집하고 행진하는 등의 형태로 시위를 했다. 물론 지금도 하긴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쉽게, 순식간에, 갑자기, 예고 없이 뭉친다. 광화문 시위 현장을 나가면 참가자들 각자 집에서 피켓을 제작해오고 특정 장소를 정해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모이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이슈가 내 일로 여겨져서 혹은 부당하다고 생각돼 컴퓨터 앞에서 광장으로 나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힘을 보태는 지금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한다.

Q. 여성 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어떤가.

극과 극이 모두 존재한다. 굉장히 젊고 어떤 분야에 있어서는 굉장히 열려있지만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굉장히 고루하거나, 나이가 많고 다른 분야에 대한 생각은 고루하지만 페미니스트이거나, 또는 여성이지만 젠더 감수성이 전혀 없거나.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는 상태라고 본다. 누군가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결국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자유로운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진통을 겪는 과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Q. 여성들의 움직임이 남성혐오, 또 다른 성차별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도 있다.

감기가 나으려면 일주일 정도 앓아야 한다. 부작용도 있을 거고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을 향한 남성들의 비난과 폭력 수위는 높아질 거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긴 하다. 여성들의 움직임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가 상당기간 지속될 테지만 시간이 흘러 여성도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닌 자기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주체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Q. 사회·정치적 측면에서도 여성운동,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회의원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나 성범죄 처벌과 관련한 법안을 많이 발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들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느냐인데 한국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비율은 17% 정도다. 과연 나머지 83%의 남성 국회의원이 동의하느냐가 아주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법 개정 자체가 어려울뿐더러 설령 됐다고 하더라도 사법부에서 올바르게 집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Q. 성차별 해소를 위한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법이나 제도를 만드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법과 제도가 강력하게 시행됐을 때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기도 한다. 반면에 그러지 못하고 종잇장에 불과해지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보다 나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인식개선에 기여하고, 이처럼 인식이 바뀜으로써 더 나은 법과 제도가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법과 제도를 많이 만드는 데만 노력해왔다. 이제는 기존에 만들어진 법과 제도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점검하고 어떻게 변화해나가야 할지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 왔다.

Q.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여성문제 해결 기대해도 될까.

대선 후보가 그런 발언을 한 건 최초였다. 대통령이 여성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식적인 발언을 한다는 건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이것이 대중들을 의식한 상징적 발언으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Q.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먼저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성 평등 사회를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여성과 남성이 다투는 형국이지만 앞으로 남성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일까,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면 결국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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