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칠논변(四七論辯)에서 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생각하다
[칼럼] 사칠논변(四七論辯)에서 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생각하다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2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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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필자가 이번 학기에 담당하는 과목 가운데 “토론중심 공공상식”이라는 과목이 있다. 이 과목은 필자가 몸담고 있는 상지대학교에서 처음 생긴 과목으로, 이 과목이 추구하는 목적은 공공상식에 대한 이해와 이것에 대한 토론을 통해 취·창업 핵심 역량 중 하나인 상식에 대한 이해 확대와 토론 능력 향상이었다. 필자가 이 강좌의 강의를 준비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공공상식에 대한 토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의 사례를 생각해 봤다. 그런 가운데 한국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토론 중 하나인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논쟁(이하 사칠논변이라고 약칭하겠음)이 생각났다.

사칠논변은 이황(李滉, 호는 퇴계-退溪)과 기대승(奇大升, 호는 고봉-高峯)간에 전개되었던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한 논쟁을 뜻한다. 여기서 사단칠정이란 “사단”과 “칠정”의 합성어다. 책세상에서 출판한 책, 『고전의 세계』에 따르면, 사단은 측은(안타깝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 수오(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나쁜 모습을 미워하는 것), 사양(겸손히 사양할 줄 아는 마음), 시비(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로 대표되는 순수하게 선한 마음이고, 칠정은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감정을 뜻한다. 즉 성리학의 핵심적인 이론 중 하나인 심성론(인간 심성의 구조를 밝히는 학문)과 수양론(인간의 바른 길을 구하는 학문)에 관한 논쟁으로, 이 논쟁은 향후 조선성리학의 초석이자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필자는 이 토론의 자세한 내용보다는 이 토론이 가지고 있는 맥락과 그 의미를 소개할 것이다. 첫째, 당대에 이른바 “공공상식”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리학의 핵심적인 사상이었다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황이나 기대승 같이 성리학을 연구하고 공부한 사람들끼리의 논쟁을 어떻게 공공상식으로 평가할 수 있냐는 반문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황이 한국 성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학자이자, 당시 공조참판과 대제학(지금으로 치면 차관, 국립대학교 총장)의 자리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 논쟁 이후 조선이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예교(禮敎) 국가로 정착해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당시 성리학이 공공상식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라고 평가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둘째, 이 두 사람이 토론에 참여한 자세가 매우 상호존중적이었다. 『중앙일보』의 2018년 1월 1일자 기사인 「26살 차 이황·기대승, 13년간 편지 논쟁… 사제는 학문의 동반자」은 두 사람 사이의 논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기대승은 서른한 살에 과거에 급제하고 이황을 스승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당시 이황의 나이는 57세로 둘 사이는 스물여섯 살 차이가 났다. 직급의 격차도 까마득했다. 기대승은 종9품으로 오늘날의 9급 공무원에 해당했다. 반면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을 마치고 공조참판 자리에 있었다. -(중략)- 하지만 이황과 기대승은 13년간 1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진지하게 학문적 교류를 이어갔다. 특히 이 둘이 펼친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논쟁이 유명하다. -(중략)- 이 공방은 8년간 치열하게 이어졌다. 이황의 논리에 기대승이 의문을 제기하면 이황이 답해주고 다시 기대승이 반론하는 식이었다. 날 선 토론이 오가는 중에도 이황은 기대승의 학식을 존중하고 그의 논리를 상당 부분 받아들여 자기 생각을 수정했다. 둘 사이에 오간 편지에는 스승인 이황이 젊은 하급 관리에 불과한 기대승에게 하대한 흔적이 한 차례도 없다. 시종일관 동료 학자를 대하듯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 

이황의 입장에서 나이와 직급의 차이가 많이 나는 기대승의 도전이 괘씸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황은 시종일관 의견의 “다름”을 존중하고, 본인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성실하게 토론에 임했다. 기대승 역시 토론 내내 이황의 논리적 한계를 지적하는 등 도전적이고 날카로운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황에 대하여 인신공격을 자행하진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토론에 임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되는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이러한 토론의 맥락을 현대 사회에 적용해보자. 요즈음 한국 사회는 많은 토론이 진행 중이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할 수 있는 성폭력, 전직 대통령에 대한 처벌, 적폐청산, 개헌 등 토론하기 어렵고,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소재들도 많다. 이러한 토론에 임할 때 참여자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스로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자세,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야 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는 시발점은 이 토론의 추구하는 방향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한 새롭게 “공공상식”으로 다룰 수 있는 토론꺼리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성실하게 준비하고 참여하는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토론의 과정에서 다루어지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더 좋은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방향성에 어긋나는 것들이다. 그러한 것들도 토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야 말로 청산되어야 하는 적폐다.(이 칼럼을 쓰면서 역시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이고 이상적인 것이 가장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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