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칼럼니스트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봄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처음엔 약간의 오한과 옅은 몸살기운 정도였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데다가,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어 며칠 방치했더니 사달이 났다. 급기야 심한 기침과 발열 그리고 두통으로 밤마다 땀을 흘리며 기절했다.

감기에 걸리기 전까지 내 몸은 아주 좋은 상태였다. 한동안 안 하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덕분에 최근 몇 년 중 가장 건강한 시기였다. 대체 내가 왜 감기에 걸렸을까 궁금해 했다. 그러다 감기가 나을 무렵에야 나의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감기 바이러스는 어디에나 있고, 어찌됐든 걸릴 만 하면 걸리는 게 감기다. 정작 중요한 건 잘 낫는 방법이다. 평소에 건강을 잘 유지해 왔다면 호전 되는 것도 빠르다. 실은 요즘 들어 운동을 열심히 했기에 그나마 더 큰 탈 없이 감기가 나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이 감기를 이기게 하는가’를 궁금해 했어야 했다. 

제대로 된 질문은 사안을 명확히 정의 해 준다. 가령 ‘DAS는 누구 겁니까?’ 같은 것들이다. 수사에서부터 구속에 이르기까지 이 질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를 묻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다고 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발표대로라면 여론은 대략 75%의 압도적인 우세로 구속수사를 찬성한다. 한 사회에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준 것은 어떤 거친 주장이 아니라 한 줄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 측과 일부 야당에선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별한 정치색이 없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현대사에서 정권의 교체는 권력찬탈의 형태를 띤 적이 많았고, 그에 따라 전 정권의 핵심 인물과 세력을 몰아세웠던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왜 우리나라에선 항상 전직 대통령들을 향한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느냐며 자조 섞인 질문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 된 질문이다. 권력쟁취에는 생각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동원된다. 자칫하면 불법적 요소들을 동반하기도 하고, 이어서 위법적인 나라운영을 하기도 한다. 때문에 패권세력이 바뀌는 정권 교체에서, 후임 정권은 언제나 날을 세우고 전임자의 약점에 덤벼들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어느 정권에서나 전 정권의 치부를 들추려 하고 전임 권력자를 어김없이 단죄하려 든다. 그게 정치보복이든 무엇이든, 지난 70여년의 결과만 놓고 보면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최고권력자의 불의를 가볍게 넘기지 않아 온 것이 대한민국 정치사다. 그러니 제대로 된 첫번째 질문은 “우리는 왜 이토록 정의에 목말라 하는가?”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 수사가 잦은 것은, 달리 보면 어느 정권이든 올바름을 엄청나게 표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놀라우리만치 정의를 추구하는 나라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것이 번번이 작동하는 나라다. 이의 증명이 한 때 최고권력자였던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수사다. 제 아무리 대단했던 권력자라도 용서하지 않아왔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국민들의 지지 여론, 즉 당대의 시대정신이다. 어떤 험난한 상황에서도 이런 기조는 꿋꿋이 유지되었다. 과거 만연했던 부정부패에 대한 저항이 어느새 항상 추구해야 할 절대가치로 자리 잡혀 있다. 적폐를 청산한다던 문재인 정부가 정치보복에 매달린다는 일부의 의심이 사실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지금 역사의 물길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향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가 반복되어 왔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문제적 인물의 당선이 반복되어 왔다는 뜻이다. 이 반복이 싫다면 깨끗한 정권의 창출과 운용으로 미래에 있을 공격을 원천 방어하면 된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이 미래의 범죄를 막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우리 헌정사에 잦은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 수사는 우리가 사전에 막지 못한 범죄를 훗날에 이르러 묻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왜 우리는 미래의 범죄자에게 오늘의 권력을 쥐어 주는가”여야 한다.

한국 사회는 10년 전에 이 질문을 간과했다. 그리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찌 보면 잘못된 질문을 뒤늦게 정정하는 셈이다. 무엇이 감기를 이기게 하는가. 무엇이 불의를 이기게 하는가. 우리는 2007년에 어떤 질문을 품고 이명박을 선택한 것일까.

잘못된 질문이 익숙하면 잘못된 답변에도 익숙해진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미래도 고쳐지지 않는다. 대통령 시절 이명박은 한 수재민의 막막하고 처절한 심정 호소에 엉뚱하게 이렇게 답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요. 기왕에 된 거니까. 편안하게”

그는 지금 처지에 이르러서도 이 말이 제대로 된 답변이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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