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br>▷성우, 방송 MC, 수필가<br>​​​​​​​▷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 패턴은 반복된다. 
                      원인을 알기 전까지는-

패턴은 반복된다.
S의 상담선생님이 S와의 첫 만남에서 들려준 얘기다. 모든 사람은 연애를 할 때 자기만의 패턴을 반복한다. 
그랬다. S는 언제나 가볍게 사랑에 빠지고 불같이 뜨거워졌다가 얼마 안 가 식어버렸다. 단 한 번의 예외를 빼고.

그 예외는 바로 S가 처음으로 길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그래서 주저 없이 결혼했으나 밤마다 옛 남자의 숫자를 헤아리게 만든 바로 그 남자였다. 

그런데... 그 남자는... 게이였다. 
(사족: 저는 동성애자에게 어떤 편견도 없습니다. 나아가 동성결혼 합헌을 지지합니다! 다만 이 남자는 나쁜 남자입니다!)

물론 S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는 매의 눈으로 희생양을 찾아냈고 철저히 이용했다. (여기서 S가 그에게 이용당한 얘기까지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키스 이외의 남자 경험이 없는 S는 그저 그의 담백함이 좋았다. (물론 우리는 그녀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 때 그 녀석하고는 여행까지 다녀왔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우리는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1년에 성관계를 딱 세 번만 하자는 그의 기상천외한 제의를 듣고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줄 몰랐다.
만약 그 남자가 ‘나는 게이다.’, 고백하고 ‘그래도 살아줄래?’ 했다면 S는 그냥 살았을 것이다. 밤마다 예전에 키스했던 남자들을 헤아리며 잠들어야했다 해도.
다행이 운명은 S편이었다. S는 다른 사정이 생겨 그와 이혼했다. (근데 그게... 과연 다른 사정인가 싶다. 그 남자는 자신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다른 남학생 하나와 잠시 동거를 해야겠으니 너는 그 동안 친정에 가있으라고 했고 그래서 멀쩡한 남편 놔두고 친정살이를 하던 S는 이렇게 힘들게 떨어져 지낼 바엔, 에잇 이혼해버리자! 했던 거였다. 물론 조연들의 도움도 있었다. 예수쟁이와 전라도와 선생질 하는 것들은 다 나가 죽어야한다, 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시어머니라던가... 참고로 덧붙이자면 S의 부모님은 직업은 선생님이요 종교는 기독교였다. 그것도 독실한, 그나마 전라도가 아니라 결혼은 허락했다는 후문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S는 뒤늦게 그가 게이였음을 깨달았고 이용만 당했다는 배신감에 상당히 오랫동안 휘청였다. 그러면서 당당한 싱글로서 또 다시 남성편력을 이어갔다.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다 어느 날, 그 지겨운 패턴의 반복에 지치고 지쳐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간 그녀는 잊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 S는 성추행을 당한 일이 있었다. 세는 나이 다섯 살, 만 세 살 때의 일이었다.
친구네서 놀다가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는데 예비군복인지 교련복인지를 입은 어떤 젊은 아저씨가 아랫동네서부터 S를 따라왔다. 어린 마음에도 뭐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S는 자기 집 대문 앞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딱 세 걸음 남았을 때, 정확하게 말하면 ‘이제 됐어. 집에 다 왔어!’ 하고 안도하던 바로 그 순간, 그 남자에게 붙잡혔다. 따스한 봄날이었다. S는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부드럽지만 살짝 차가운 바람이 허벅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골목엔 아무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오래도록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개구리 군복이 언덕 너머로 유유히 사라질 때 까지...

S는 그 날 일어난 일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도 지우도록 시켰다. S에겐 S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여자는 순결해야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던 다소 비상식적인 성적 가치관을 가진 어머니가 있었다. 이 어린 아이가 그 일을 지우려고 지나치게 노력한 이유다. S는 엄마의 기준에서 자기가 불결해졌다고, 더러워졌다고 느꼈다. 해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 기억을 깊이깊이 묻고 없었던 일처럼 만들었다.
대신 날마다 꿈을 꾸었다. 형체가 다 보이지도 않는 성난 거인이 자신을 따라오는 꿈, 어떻게든 숨어 보려고 하지만 결국 들통나버리고 마는 꿈... 그런 꿈을 꾸고 또 꾸고 그렇게 가위에 눌린 채 살아왔다.

남녀가 사랑을 느끼고 몸 안에서 화학적 작용이 시작될 때면 누구나 호흡이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S는 그 자연스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상대방 남자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걸 느끼면 그 남자가 벌레처럼 싫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S가 같이 잔 남자의 수가 아니라 입을 맞춘 남자의 개수만 세었던 이유다. S에게 키스는 이별의 시작이었다. 본인도 상대 남성도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어쩌다, 아주 가끔 자기 자신까지 야릇한 흥분을 느끼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 밤이면 S의 죄책감은 빅뱅을 일으켰다. 진심으로 좋아했던 남자들과는 더 빨리 헤어질 결심을 했던 것이 다 그 죄의식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성추행의 그늘 속에 생겨난 건 아니다. 

(다음 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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