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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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남성들이 알기 어려운 여성들의 고통 중 대표적인 것이 월경이다. 월경은 보통 ‘생리’라고 불리며 이는 ‘생리현상’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월경을 숨기기 위해 생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생리조차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단어가 돼 ‘그날’, ‘마법에 빠졌다’, ‘대자연이 찾아오셨다’는 등의 말로 표현한다. 왜 생리는 부끄러운 말이 됐을까. 

브래지어 체험이 끝난 다음 날인 지난해 9월 11일 월요일 오전 9시 30분. 기자는 생리대 구입을 위해 여의도의 한 편의점을 찾았다. 마침 발암물질 의혹 등 ‘생리대 대란’이 있어 생리대 1+1 행사가 한창이었다. 기자는 ‘그럼 평소에도 반값에 팔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더 싼 생리대를 찾다가 결국 대형마트에서 사기로 했다.

지난해 9월 11일 여의도의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생리대.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으로 1+1 행사가 한창이었다 ⓒ투데이신문
지난해 9월 11일 여의도의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생리대.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으로 1+1 행사가 한창이었다 ⓒ투데이신문

생리대 대란 때문인지 대형마트에서도 생리대를 매우 싸게 팔고 있었다. 기자는 체험에 사용할 중형(날개형) 18개입(2600원)과 오버나이트 10개입(3900원), 그리고 팬티라이너 81개입(4300원) 제품을 구매했다.

또 평소 드로즈 팬티를 입는 기자는 삼각팬티를 새로 사야했다. 그래서 삼각팬티도 3벌 구입했다.

문제를 ‘생리혈을 어떻게 체험하느냐’였다. 여성 선배들은 ‘어떤 걸 사용해도 생리혈과 같은 느낌은 낼 수 없을 것’이라며 방법을 고안해냈다. 알로에 젤에 붉은색 립스틱을 섞어 사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생리 기간이 5일정도 된다고 해 기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생리대 체험을 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 11일 기자가 여의도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생리대를 살펴보는 모습 ⓒ투데이신문
지난해 9월 11일 기자가 여의도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생리대를 살펴보는 모습 ⓒ투데이신문

생리대 체험 첫째 날 - 남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체험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사무실로 돌아온 기자는 여성 선배들에게 생리대 사용법을 배웠다. 생리대는 낱개로 포장돼 상처용 반창고처럼 포장지를 떼어내면 속옷에 붙일 수 있도록 돼있었다.

다음으로는 체험에 사용될 모조 생리혈을 만들어 시험해 볼 차례였다. 원래는 립스틱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알로에 젤과 잘 섞이지 않아 액체 틴트를 섞어 생리대에 펴 발랐다. 이어 선배는 생리대 버리는 방법을 일러줬다. 생리대를 돌돌 말아 새로 뜯은 생리대 포장지로 다시 말아주고, 이를 휴지로 다시 한 번 감싸 버린다고 했다.

기자가 선배에게 생리대 사용법을 배우는 모습(위)과 체험을 위해 만든 모조 생리혈(아래) ⓒ투데이신문
기자가 선배에게 생리대 사용법을 배우는 모습(위)과 체험을 위해 만든 모조 생리혈(아래) ⓒ투데이신문

이제 대략적인 것을 배웠으니 생리대를 착용할 차례다. 오전 11시 30분경, 기자는 화장실로 가서 속옷을 갈아입고, 생리대에 모조 생리혈을 묻혀 착용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 까지는 생리량이 많다는 말에 기자는 생리대에 모조 생리혈을 듬뿍 묻혔했다. 모조 생리혈은 피부에 닿는 순간 차가웠다. 그러나 이내 미지근해져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또 ‘이게 제대로 붙인 건가’ 싶기도 하고 불편했다.

여성 선배들은 생리대를 착용하고 나서 주의할 점을 알려줬다. 먼저, 생리 중에는 다리를 꼬고 앉을 수 없다. 생리혈이 샐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생리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한다. 이 외에도 주기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생리대를 교체해야 한다.

기자는 3시간마다 한 번씩 생리대를 교체하기로 정했다. 여성들의 경우 2~3시간마다 생리대를 교체하는데, 생리량이 많으면 더 자주 교체한다고 한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던 중, 기자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선배에게 혼이 났다. 여성들은 생리대를 감추고 다니는데, 생리대를 챙겨 다닐 파우치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한 선배는 “남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생리대 그냥 들고 다니려고 했어요?”라며 기자를 나무랐다. 그리고 파우치 대신 쓰라며 기자에게 별다방 더스트백을 빌려줬다.

선배는 더스트백을 빌려주며 “생리 하면 단 게 당겨요”하고 초콜릿도 함께 줬다. 기자는 더스트백에 중형 생리대 4개와 오버나이트 2개 등 여유분의 생리대를 챙겨 넣었다.

정오가 돼 선배들과 점심을 먹던 기자는 습관처럼 다리를 꼬고 있다가 얼른 다리를 풀었다. 이 모습을 본 선배는 ‘조신하게’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줬다.

오후 1시경, 기자는 외부 취재 일정으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을 찾았다. 출발 직전 생리대를 교체한 기자는 취재 도중인 4시경 한 번 더 교체해야만 했다. 그러나 취재원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 결국 한 시간가량 늦게 생리대를 교체했다.

만일 체험이 아닌 실제 생리였다면 어땠을까. 열일 다 제쳐두고 화장실을 찾아 생리대를 먼저 교체해야하지 않았을까.

5시 30분경 생리대를 한 번 더 교체하고 퇴근해 집에 돌아와 다시 한 번 생리대를 교체했다. 그리고 오후 11시경, 잠들기 전에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착용했다. 기자는 선배들의 조언대로 ‘바른 자세’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생리혈이 새지 않도록 바른 자세’를 되뇌며 잠이 들었다.

기자가 생리대 체험 첫 날 사용한 생리대 ⓒ투데이신문
기자가 생리대 체험 첫 날 사용한 생리대 ⓒ투데이신문

생리대 체험 둘째 날 - ‘바른 자세’는 힘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생리대를 교체했다. ‘바른 자세’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으나 눈을 뜨니 기자는 옆으로 누워있었다. 실제 생리 중이었다면 아마 생리혈이 새지 않았을까.

기자는 생리혈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새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여성들의 경우 생리량이 많은 기간에는 아침이 되면 ‘번쩍’ 눈이 떠지고 이부자리부터 확인한다고 하니 그 불편함은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생리통까지 더한다면…남성들은 이 불편함과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출근 후 10시 30분경 생리대를 교체했다. 이후 계획대로 3시간마다 생리대를 교체했다. 기자는 이날 1시 30분경 그리고 4시 30분경 생리대를 교체했다.

이날 기자는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다리를 꼬거나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려 앉게 됐다. 바른 자세를 자꾸 잊게 돼 기자는 모니터 아래 포스트잇으로 주의할 점을 적어 붙여뒀다.

기자가 자리에 붙여놓은 주의사항 ⓒ투데이신문
기자가 자리에 붙여놓은 주의사항 ⓒ투데이신문

퇴근 전인 5시 40분경, 기자는 생리대를 한 번 더 교체했다. 원래 다음 생리대는 7시 30분경 교체해야 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려면 8시는 돼야 하는데, 중간에 화장실에 들러 교체하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기자는 ‘귀찮음’이 이유였지만, 여성들의 경우 일정상 생리대를 교체하기 어렵다면 미리 생리대를 교체해야 할 것이고 이렇게 생리대를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게 될 것이다.

기자는 집에 도착해 9시경 오버나이트로 교체했다. 그리고 11시경 다시 한 번 ‘바른 자세’를 기억하며 잠이 들었다.

생리대 체험 셋째 날 - 왜 이렇게 예민해? 혹시 ‘그날’이야?

전날과 마찬가지로 일어나 씻으면서 생리대를 교체하고 출근했다. 이날은 11시, 2시, 5시에 생리대를 교체했다. 마지막 생리대를 교체하고 사무실에 돌아오자 더스트백을 빌려 준 선배는 “왜 표정이 안 좋은가 했더니 생리대 갈고 왔네요”라며 “김 기자 예민해서 눈치 봐야 하나 했어요”하고 웃었다.

흔히 여성들이 화를 내거나 하면 ‘그날 인가봐’ 하며 농담을 하거나 뒷담화를 한다고 하는데, 기자가 그 대상이 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자는 시간에 맞춰 생리대를 교체하는 것 외에 예민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실제 생리를 한다면 생리대 교체 뿐 아니라 생리혈이 새는 것, 냄새 걱정, 생리통 등 여러 이유로 예민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예민한 이유가 생리뿐이겠는가. 왜 ‘예민하다’며 타인의 생리주기를 농담거리, 비난거리로 삼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생리대 체험 넷째 날 - 피가 묻은 것도 모르고…

이날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출근하면서 중형 생리대를 사용했다. 이전과 동일하게 3시간마다 생리대를 교체하면서 모조 생리혈 양을 전날보다 줄였다. 이제 생리혈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생리혈을 줄였지만 기자가 느끼기엔 별 차이가 없었다. 생리대는 여전히 불편했고 생리대를 교체하기는 번거로웠다. 생리대를 속옷에 붙이는 일도 익숙하지 않았다.

오후 2시경, 생리대를 교체하던 중 모조 생리혈이 손에 묻은 것을 모르고 바지를 만졌다. 생리대를 교체한 뒤 바지를 추켜올리다 바지에 모조 생리혈이 묻은 것을 알게 된 기자는 깜짝 놀랐으나 곧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상의로 가릴 수 있는 허리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생리혈이었다거나 가릴 수 없는 곳에 묻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바지 허리 밴드 부분에 붉은 모조 생리혈이 묻어있다 ⓒ투데이신문
바지 허리 밴드 부분에 붉은 모조 생리혈이 묻어있다 ⓒ투데이신문

생리대 체험 마지막 날 - 대자연의 끝, 마법이 풀리는 날, 생리 끝난 날!

이날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출근하면서 중형 생리대를 사용했다. 출근 후 오전 11시, 4~5일째 부터는 생리량이 적어진다고 해 이제부터 팬티라이너를 사용하기로 했다.

팬티라이너는 생리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날개가 없고 크기도 작았다. 팬티라이너는 보통 일반(15cm)형과 롱(17.5cm)형으로 나뉘는데, 기자는 롱형 제품을 사용했다. 생리량이 적기 때문에 모조 생리혈도 아주 조금만 묻혀 착용했다. 그리고 이 역시 3시간마다 한 번씩 교체했다.

팬티라이너의 경우 생리대보다 크기가 작아서인지 불편함이 덜 했다.

드디어 이 불편한 체험이 끝나는 날이다. 더 이상 알로에 젤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기자는 이날 자기 전 착용한 팬티라이너를 마지막으로 생리대 체험을 마쳤다.

기자가 생리대 체험 다섯째 날 사용한 팬티라이너 ⓒ투데이신문
기자가 생리대 체험 다섯째 날 사용한 팬티라이너 ⓒ투데이신문

‘깔창 생리대’부터 ‘발암물질 생리대’까지

기자는 5일 동안 중형 생리대 14개, 오버나이트 4개, 팬티라이너 5개를 사용했다. 생리기간이 길거나 생리량이 많다면 이보다 더 많은 생리대를 쓸 것이다. 또 생리기간이 아니더라도 팬티라이너를 매일 사용하는 여성도 있다.

생리대에 드는 돈은 생각보다 많다. 기자는 대형마트에서 18개입 중형 생리대를 2600원에, 81개입 팬티라이너를 3900원에, 10개입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4300원에 구입했다. 총 1만 800원을 사용한 것이다. 원래 생리량에 따라 대형, 중형, 소형, 팬티라이너를 사용하지만, 기자는 중형, 팬티라이너, 오버나이트만 체험했다. 대형, 소형을 모두 구입했다면 지출은 더 컸을 것이다. 기자는 하루에 사용할 양을 정해두고 체험했지만, 여성들은 이보다 더 사용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대신 사용한 학생의 얘기는 많은 사람들이 접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수건이나 두루마리 휴지 등을 사용한다는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수차례 회자됐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저소득층에 대한 생리대 지원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겼으나 지난 8월 ‘발암물질 생리대’ 사태가 터지면서 보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생필품을 지원받지 못한 것이다.

기자가 생리대 체험에 사용한 제품들 ⓒ투데이신문
기자가 생리대 체험에 사용한 제품들 ⓒ투데이신문

남자들은 관심조차 없는 생리

지난해 5월,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으로 제5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는 비현실적 생리묘사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는 <언니의 폐경>에서 자매가 차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언니의 생리가 시작되는 장면을 묘사했다.

– 얘, 어떡하지. 갑자기 왜 이러지……
– 왜 그래, 언니?
– 뜨거워. 몸 속에서 밀려나와.

작중에서 동생은 언니의 팬티를 잘라내 버린 뒤 생리혈을 닦아낸다. 그렇게 생리혈 처리는 끝난다. 김훈 작가의 생리 묘사를 보면 그는 생리를 사정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이런 황당한 묘사의 작품이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것도 놀랄 일이다. 이 외에도 이 묘사에서 문제되는 점은 많으나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생리는 여성들이 매달 겪는 일상이지만 남성들은 알기도 어렵고, 알 수도 없다. 본인들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 특별히 관심을 둘 이유도 없다. 때문에 ‘생리는 소변처럼 참을 수 있다’거나 ‘생리기간은 한 달에 하루’라는 등의 잘못된 인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생리대 광고에서 생리혈이 파란색으로 묘사돼 실제 생리혈이 파란색인 줄 알았다는 남학생도 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남자가 생리에 관심 있는 경우는 여자 친구가 임신했는지 마음 졸일 때 뿐’이라고까지 하겠는가.

생리에 대한 공감이 없으니 생리휴가나 생리공결제 등에 대해 남성들이 반발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생리휴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으니 ‘내 친구 누나는 생리 참았다가 한 번에 싼다던데’ 같은 말도 안 되는 괴담을 만들어 생리휴가가 부당하다고 공격하는 것이다.

여성은 초경 후 대략 40년간 월경을 한다고 한다. 생리는 여성들의 일상이다. 누구나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생리에 대한 몰이해로 여성들을 비난한다면 평등한 사회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성 평등한 사회를 위해 생리에 대한 남성들의 공감과 이해가 필요하다.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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