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일기를 쓰며 글 소재 영감 얻어
'완전주의자의 꿈' 집필에 많은 영향
좋은 시란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어야
슬픔·부조리를 밝게 이야기하고파

원옥진 작가 ⓒ투데이신문
원옥진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인터뷰를 해도 되나 마음을 못 잡겠네요”

인터뷰 일정을 잡기 전 갈팡질팡하던 원옥진 작가는 약속 당일 수줍지만 인자한 모습으로 차에서 내렸다. 원 작가와 향한 곳은 그가 글을 쓰거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종종 찾는다는 경기도 남양주의 한 카페였다. 조용하고 따뜻하고 품격이 느껴지는 공간이 그와 참 닮은 모습이었다. 

원 작가는 ‘2018년 투데이신문 직장인 신춘문예’ 시 부분에 ‘그림자 놀이’ 외 3편을 출품해 가작을 수상했다. 대표작인 ‘그림자 놀이’는 없는 대상을 생생한 존재로 드러낸 힘이 당선작만큼이나 훌륭하다는 평을 받았다.

원 작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기보다는 혼자 간직하기를 즐긴다. 그런 그에게 이번 직장인 신춘문예는 모처럼 만의 외출이었다. 그리고 가작 당선은 그에게 얼마큼 좋아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의 큰 기쁨이었다.

글쓰기는 빼곡히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 숨을 쉬는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원 작가. <투데이신문>은 원 작가와 함께 ‘직장인 신춘문예, 그 후’를 이야기해봤다.

원옥진 작가 ⓒ투데이신문
원옥진 작가 ⓒ투데이신문

Q. 2018 투데이신문 직장인 신춘문예 시 부문 수상을 축하드린다. 소감이 어떤가.

무척 기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느낀다.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보상받는 느낌도 든다. 직장에서의 직위는 그 역할에 충실하라는 명이기 때문에 싫든 좋든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시인은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끌려가거나 밀려가지 않고 내 발로 걸어가며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좋다.

Q. 어떤 계기로 시를 쓰게 됐나.

중학교 때 친구들을 대신해 편지를 많이 썼다. 주로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웃음) 편지가 괜찮았는지 부탁이 끊이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교 신문에 수필 등을 쓰게 됐다. 선배들이 글을 쓰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글을 집중해서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글을 놓고 싶진 않았다. 글을 쓰지도 않고 놓지도 못하는 시간이 아주 길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정리하고 내 속에 있는 나를 꺼내 볼 수 있도록 일기는 계속 썼다. 그러다 ‘이대로 일기만 쓰다가 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에 편입하고 본격적으로 시를 공부하게 됐다.

Q. 본인의 시 ‘그림자 놀이’, ‘살람바 사르반가아사나’, ‘이사’, ‘김진근’에 대해 간단히 소개 바란다.

‘그림자 놀이’는 가을 햇볕이 좋은 날 사무실 창밖을 통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시상을 잡았다. 그러면서 한때는 가까웠지만 이제는 그림자처럼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된 사람을 떠올렸다. 그림자처럼 그림자들과 어울려 그림자로 살아간다는 느낌, 좀 춥고 서늘한 느낌을 담담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살람바 사르반가아사나’는 요가 동작 중 하나로 어깨서는 모습을 떠올리며 썼다. 어깨서기는 중력에 반하는 동작이다. 거꾸로 서서 몸을 곧추세우고 있으면 지구를 짊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책임감, 고단함, 그러면서 또 되풀이해야 하는 질긴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이사’는 점점 살림을 줄여나가면서 느끼는 씁쓸한 상황을 떠올리며 썼다. 실제로 이사를 할 때쯤 쓴 글이기도 하다.

‘김진근’은 아주 어렸을 때 동네 살던, 나중에는 도시의 거리에서 사망한 남자아이를 생각하며 쓴 것인데 읽어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 영화 ‘친구’를 보며 그 아이의 이야기를 꼭 한 번 써보고 싶었다.

Q. 시상(詩想)은 어디서 얻는 편인가.

주로 일기를 쓰다가 어느 단어, 어느 표현에서 시가 출발하는 것 같다. 그것이 형체를 갖추기까지 꾸준히 생각하고 느낀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잠을 자면서 혹은 잠에 들기 전 완전히 긴장이 풀어진 상태에서 문제를 놓아두고 생각하다가 새벽에 일어나 실마리를 갖추고 있는 해결해 간다. 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잠을 자기 전, 잠을 자면서, 잠에서 설핏 깨면서 그 느낌을 굴리고 만지고 해체했다가 이러저리 붙여보며 형체를 만들어 간다. 잠이 시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Q. 가장 애착 가는 작품이 있나.

‘그림자 놀이’가 아무래도 제일 애착이 간다. 떠올렸던 풍경도 즐겁고 없거나 있는 사람에 대한 거리감도 맘에 든다.

Q. 시를 쓰면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에피소드라기보다는 가끔 남편에게 내가 쓴 시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남편은 평이 굉장히 박하다. 당선 후에 ‘내가 대견해?’라고 물었을 때 ‘조금’이라고, ‘자랑스러워?’라고 다시 물었을 때 ‘그건...’이라고 대답하더라.(웃음)

Q. 작품을 쓰는 데 영향을 미친 작가가 있다면.

20대 초반에 장석주 시인의 ‘완전주의자의 꿈’을 읽고 완전히 매혹됐다. 그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표지가 낡을 때까지 읽었다. 편지를 써야 할 때 그 책의 시를 필사해 보내기도 했고, 쓸쓸하거나 마음이 너무 아플 때마다 꺼내 읽기도 했다. 그때 시를 처음 접하고 ‘나도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 거 같다. 또 경희사이버대학교 김기택 교수님의 가르침이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Q.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가.

박준, 김이듬, 진은영 시인의 글을 좋아한다. 또 정유정, 백가흠, 최진영, 김애란 작가의 무게감 있고 새로운 감각의 소설도 즐긴다. 내 인생의 책을 꼽으라면 성장기 때부터 가장 많이 읽고 오랫동안 소장하고 있는 ‘데미안’이다. 좋은 책은 언제 다시 읽어도 다른 메시지를 준다.

원옥진 작가 ⓒ투데이신문
원옥진 작가 ⓒ투데이신문

Q.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특별히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염두에 두진 않는다. 작품을 읽고 나서 이후는 읽은 사람의 몫이다. 나와 같은 생각과 느낌으로 읽어주면 고맙고, 다르게 읽었더라도 고맙다. 나는 끊임없이 내면을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아픔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것은 즐거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고 나서 즐겁지 않거나 읽고 나서 즐겁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묵직하고 따뜻한 즐거움, 때로는 경쾌한 슬픔, 괴기하면서 발랄한 그런 글을 쓰고 나누고 싶다.

Q.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시란.

공감할 수 있거나 읽는 사람이 자신의 세계로 읽을 수 있는, 그러면서 따뜻한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Q. 글 쓰는 일이 자신에게 가장 큰 힘이 된 순간은 언제인가.

글쓰기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나를 비우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꽉 찬 일상에서 나를 텅 비워주는 것이 글을 쓰는 것 말고 또 있을까 싶다. 글을 쓰는 것은 일상과 사회의 틀 속에서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나를 잃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이자 안간힘이다.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나.

슬픔과 부조리를 발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아이들의 명랑한 웃음에 묻어있는 슬픔,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의 어두움, 낮고 축축한 곳에 머문 사람들의 명랑함, 그러한 것들을 찾아서 쓰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동화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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