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칼럼니스트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스코틀랜드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참혹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대략 16세기 즈음, 소니 빈(Alexander Sawney Bean)이라는 남자가 태어났다. 하수구 청소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난폭하고 게으른 성격 탓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소니 빈은 결국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여성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한 해안가의 동굴. 만조가 되면 동굴입구가 막혀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은밀한 요새였다. 두 사람은 인근을 통행하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며 살았다. 목격자를 남기지 않기 위해 반드시 피해자를 살해했다. 처음엔 그렇게 얻게 된 약탈물을 근처 시장에서 먹을 것과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싼 물건은 사람들 눈에 띄므로 별로 내다 팔 게 없었다. 때문에 범죄 성과에 비해 배불리 살 지는 못했다.

사람이 배가 고프고 궁지에 몰리면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어차피 강도짓을 할 때 사람을 죽이는데 그렇게 생긴 사체를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소니 빈은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습격해 죽이고 동굴에 끌고 와서 작업 한 후 인육을 소금에 절여 보관했다. 나름 용의주도한 그들의 범행은 무려 25년간 꼬리가 밟히지 않았다. 끔찍한 영양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때문인지, 그들은 8명의 아들과 6명의 딸을 낳았다. 그리고 근친상간으로 다시 손자 손녀가 태어나 마지막엔 48명의 대가족이 됐다. 무려 48명의 식인강도 가족이 한 동굴에 숨어 살았던 것이다. 그들에 의해 대략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자가 됐다.

그러나 결국 미수로 돌아간 단 한 차례의 범행으로 인해 소니 빈 일가는 발각된다. 제임스 6세 왕의 군대가 출동해 동굴을 찾아내고 식인 가족을 모두 체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벌인 범행 수법에 걸맞는 방식으로 모조리 처형당했다.

동굴에서 태어난 소니 빈의 자손들은 어릴 때부터 사람을 죽이거나 먹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겐 축축한 죽음의 그림자가 기괴하게 펼쳐진 동굴은 하나의 세계관이었다. 이성과 양심이 작동하는 사회를 떠올릴 필요가 없는 별도의 세상이었다. 이들의 행태는 인간의 선량함과 이타적 행위가 실은 꾸준히 관리되어야 유지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사회가 공동의 도리를 소홀히 하고 일탈을 방치 할 때 범죄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며, 이성은 거추장스럽고, 양심은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

검찰이 세월호 당일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행적을 수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드러난 수사결과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서면 보고서는 직접 전달되지 않았다. 김장수 전 안보실장은 박 전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아 안봉근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었고, 안 전 비서관은 근무시간에 자기 침실에 틀어박혀 있는 대통령을 문 밖에서 애타게 불러야만 했다. 정부가 지휘감독 할 상황에 민간인인 최순실이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의 다음 할 일들을 논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불리한 기록들은 사후에 대통령과 정부에 유리하도록 조작됐다. 골든 타임이 지난 10시 22분께 보고된 것을 10시로 조작했다. 실시간으로 11번 보고했다는 당시 청와대의 주장은 알고 보니 두차례 일괄보고에 그쳐 있었다.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라는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무단으로 변경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한시가 급한 국가재난 상황에서 장시간 대통령의 반응이 없는데도 아무도 관저에 찾아가 직접대면 보고하거나 사태를 논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대통령이 없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선 자동격발 됐어야 할 위기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유족들의 염원을 외면하고 반정부적 세력으로 매도했으며, 진상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온갖 분탕칠을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정부와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보수언론들 그리고 극우 커뮤니티가 대중으로부터 유족들을 분리시키는 일에 가세했다. 박근혜 정부는 안타깝게 스러져간 희생자들 대신 침실에서 편히 쉬던 대통령을 구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렸다. 

인면수심. 박 전 대통령과 정부각료들과 청와대 근무자들에게 있어 박근혜 정권은 그들만의 세계관이 집약된 기괴한 동굴이었다. 이들을 옹호하며 억지주장을 펼치던 이들까지, 모두는 동굴 속에서 함께 번성해간 하나의 가족이다. 범죄를 범죄로 여기지 않았으며, 이성은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었고, 양심은 권력을 지키는 일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21세기의 소니 빈 일가. 이런 별스런 인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한 사익 추구 전횡의 정황에서도 감지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국가나 국민, 공동체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은 별 의미가 없었다. 비록 이제는 홈페이지에서 삭제 됐지만, 명백히 박근혜 정부의 범죄를 알린 검찰 수사결과를 가지고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밝히라는 시민들에게 오히려 죄를 묻는 논평을 발표한 걸 보면 여전히 그들의 세계관은 살아있는 것 같다. 

소니 빈의 가족들은 형장에서 죽을 때까지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배운 게 천륜을 배반하는 것 밖에 없었으니 죄책감이란 걸 느끼지 못했을 터다. 그리고 한가지 특이한 뒷이야기가 덧붙어 있다. 당시 48명의 가족들이 모두 처형된 것은 아니었다. 47명만 처형됐다. 1살짜리 아이는 처형을 면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이 역시 다 자라서 성인이 되자 결국 처형되고 말았다. 범죄자에겐 마지막까지 참혹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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