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의 아들들⑦] 내 민낯이 어때서
[메갈리아의 아들들⑦] 내 민낯이 어때서
  • 전소영 기자
  • 승인 2018.04.11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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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남자 프로젝트에 참여한 최기선씨·조이성화씨
프리큐레이션/Pexels
ⓒ프리큐레이션/Pexels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여성인 전소영 기자입니다. 지난번 김태규 기자의 화장 체험기를 담은 <메갈리아의 아들들 6화 - 화장 안 하면 예의 없다고요?>는 어떻게 보셨나요.

점심식사를 마치고 거울 앞에 앉아 서툰 솜씨로 화장을 고치던 김 기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침 출근길 혹은 등굣길,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곱게 화장한 여성들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죠. 기자도 그들 중 한 명입니다. 요즘에는 성인들뿐만 아니라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당연하게 화장을 하고 다니는 추세죠.

누구나 예뻐지고 싶은 욕심이 있기 마련이고 화장하는 게 즐거워서, 화장한 본인 모습에 만족감을 느껴서 화장을 하는 거겠죠. 하지만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나 누군가의 요구로 불가피하게 화장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때문에 요즘에 화장 뒤에는 ‘꾸미기 노동’, ‘여성억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합니다.

투데이신문은 화장하는 남자(이하 화남)와 한국 사회 속 여성의 화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해봤습니다. 아, 화남이 누구냐고요? 여자가 화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목표로 2주간 여성들이 평소에 하는 화장을 똑같이 하고 그 고충을 직접 체험하는 ‘화장하는 남자 프로젝트’에 참여한 남성들입니다. 이번 방담에는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한 최기선씨와 아직도 화장을 하고 다니고 있다는 조이성화씨가 함께 했습니다.

프로젝트 시작 전 화장 강의를 받는 화남 조이성화씨<사진 출처 = 화남 페이스북>

“화장, 끝이 안 보인다”

우리는 우선 각자 화장에 입문했던 당시를 떠올려봤습니다.

“화남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화장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파운데이션, 립스틱 등 단어만 들어봤지 해당 제품들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전혀 알지 못했죠. 화장품을 구매하러 갔을 때 직원분이 직접 화장을 해주셨어요. 제품의 용도와 쓰는 방법들을 상세히 가르쳐주셨죠. 회사 여자 선배들에게도 많이 물어봤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처음으로 혼자 화장을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화장을 했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엔 ‘이보다는 잘 할 수 없겠다’ 싶을 때 과감히 포기하고 집을 나섰어요. 그리고 나와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는데 서툰 눈 화장 탓인지 눈만 두드러져 보이는 거예요. 이걸 일주일 동안 어떻게 하고 다니나 싶었어요.” - 김태규 기자 (이하 김태규)

“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 화장을 시작했어요. 고등학생 때 친구들은 모두 화장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당시에도 안 했을 뿐더러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러다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여자 동기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왜 너는 화장을 안 하니’라는 느낌이었어요. 실제 그렇게 묻는 친구도 있었고요. 그 얘기를 듣고 바로 화장품을 구입했어요. 처음에 아이라인 그리며 애먹었던 기억이 나요. 매일 아이라인 그리는 연습을 했어요. 하도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는 눈두덩이 빨갛게 헐더라고요. 지금의 능숙한 화장은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 전소영 기자 (이하 전소영)

“저도 비슷했던 거 같아요. 화장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어요. 운 좋게도 화남 프로젝트를 할 때 강사님을 초청해 화장 강의를 들었어요. 총 7단계 정도에 걸쳐 설명해주셨는데 듣고 받아 적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나은 조건에서 화장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 화남 조이성화씨 (이하 조이성화)

“당시 강사님께서 제 얼굴에 화장 실습을 해주셨어요. 그 과정을 기억하고 암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그날 저녁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체크하려고 화장을 해봤는데 끝날 기미가 안 보이더라고요. 눈에 렌즈도 못 넣는데 아이라인을 그리려고 하니 너무 힘든 거예요. 아이라인 그리는 데만 한 30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 화남 최기선씨 (이하 최기선)

프로젝트 시작 전 화장 강의를 받는 화남 <사진 출처 = 화남 페이스북>

“그래도 예쁘니까”

모두가 화장한 자신의 모습에 매우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처음 방문한 미용실에서 생각보다 예쁜 머리가 나왔을 때 기분 같았어요. 이유 없이 괜스레 우쭐하고. 가끔 아무 생각 없이 거울을 봤는데 ‘왜 이렇게 생겼지’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화장을 하면 그런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아침에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면 꼬질꼬질한 남학우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들을 보다 화장한 제 모습을 보니까 ‘적어도 이 사람들 중에서는 외모적으로 몇 단계 위에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 최기선

“맞아요. 처음에 화장품 매장 직원분께서 해주신 화장을 생각해보면 화장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화장 후가 훨씬 만족스러워요. 화장을 해보기 전에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컸는데 막상 하니까 괜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제가 직접 화장했을 때는 얘기가 달랐지만요.” - 김태규

“화장에서 나오는 자신감은 성별하곤 관계가 없나 봐요. 저도 화장을 안 하고 밖에 나가면 괜히 움츠러들고 눈에 띄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화장을 하면 왠지 모르게 당당해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화장을 해야만 무시를 안 당한다는 생각이에요. 여자들이 옷을 환불받는다거나 미용실을 갈 때는 꼭 화장을 하고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 전소영

“저는 여자인 친구들하고 얘기할 수 있는 주제가 다양해진 게 가장 좋더라고요. 처음에 화장을 한다고 했을 때 말리는 여자친구들은 없었어요. 오히려 예뻐지겠다는데 누가 말리냐며 도와줬죠. 함께 화장품 쇼핑을 하거나 화장품과 관련한 페이스북 게시글에 태그가 되는 등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어요.” - 조이성화

ⓒ투데이신문
(왼쪽부터) 조이성화씨, 최기선씨, 김태규 기자 ⓒ투데이신문

이 불편한 걸 왜?

하지만 예뻐지는 대가로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화장을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투자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기껏해야 한 달에 10만원 나가려나 싶었어요. 안일한 생각이었죠. 화장을 가르쳐주신 강사님 말씀으로는 사용하는 제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화장품의 가격을 모두 합하면 평균 약 60만원에서 80만원 이래요. 화장품도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에 약 6개월에 한번 씩 바꿔줘야하니까 그만큼의 고정비용이 소비되는 거잖아요.” - 최기선

“2009년 시장조사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와 리서치전문기관 ‘엠브레인’이 로드숍 이용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한 달 평균 화장품 구매 비용이 3만원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만약에 백화점이나 고가의 화장품 매장에서 구매하면 그만큼 가격이 더 높아지겠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에요.” - 김태규

“맞아요. 화장을 하는 것도 돈이지만 지우는데 또 돈이 들잖아요. 화장을 하기 위한 피부를 유지하는 데 돈이 또 들고. 화장은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요. 그리고 이제는 숙달이 돼 시간이 덜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최소 30~40분은 더 할애해야 하잖아요. ‘시간’이라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출근할 때는 그 시간에 잠을 더 자는 게 났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 전소영

“정말 공감해요. 개인적으로는 시간 때문에 제일 힘들었어요. 기자님이 말씀하셨듯 최소 40분은 투자해야 하고 단순히 화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우기, 피부관리, 화장품을 찾고 구매하는 과정들까지 따지면 엄청나죠.” - 최기선

“저는 화남 프로젝트를 하던 2주 동안 모든 약속에 늦었어요. (웃음)” - 조이성화

화남 프로젝트 당시 조이성화씨 모습 <사진 제공 = 조이성화씨>

하루를 기준으로 화장하는데 투자되는 시간이 30분이라면 한 달에 15시간, 1년이면 180시간입니다.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죠. 여자들은 왜 한평생 이 긴 시간을 화장에 투자하는 걸까요.

“자기만족 때문이죠. 근데 이 자기만족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 자기만족이에요. 사실 화장 안 하면 편하죠.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런데 화장을 한 본인의 모습을 칭찬하는 타인의 반응에서 느끼는 만족감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 최기선

“청소년들과 화장에 대해 얘기해본 적이 있어요. ‘너네는 화장을 왜 하니’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대답이 단순하더라고요. 예뻐 보이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혹은 스스로 화장했을 때 모습이 예뻐 보여서 어떤 이유에서든 본인들이 원해서 하는 화장은 말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회적 압박이 주된 이유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 김태규

앞서 언급했듯 화장을 하는 연령대가 점점 확대되고 있는데요. 화남은 이런 현상은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잠재적 의식 속에 여성으로서의 성 역할을 강요받은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합니다.

“여성이 화장을 하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는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미디어를 통해 성별에 따라 구분된 성 역할을 배우고 이를 모방하면서 자라요. 그러면서 ‘나도 그렇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깊이 작용한다고 봐요. 두 번째는 사회가 강요하는 거죠. 화장을 안 했을 때 받는 불이익이 있잖아요. 아니면 화장을 해서 더 예뻐서 받는 이익이 있다던가.” - 최기선

“맞아요.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빵집에 복장 규정이 있었는데 남자 직원들에게 단정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요구했다면, 여자 직원들에게는 여기에 화장까지 요구했어요. 그것도 매우 구체적으로요. 그런 데서 사회로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실질적인 차별을 느끼는 거 같아요.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잠재의식 속에 여성으로서 해야 하는 성 역할을 강요받는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과거에는 화장에 대해 ‘여성에게 요구되는 억압’이라는 인식이 사실상 많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이런 잠재의식이 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이런 얘기가 많이 공론화되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안타깝죠. ” - 전소영

화남 프로젝트 당시 최기선씨 모습 <사진 제공 = 최기선씨>

“화장 선택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에는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을 ‘게으르다’, ‘가꾸지 않는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특히나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여성의 노메이크업에 대한 시각은 더욱 부정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상품화해왔잖아요, 젊은 여성이 더 상품성이 높다고 보는 거예요. 덜 매력적이면 포장이라도 예쁘게 해야지라는 생각과 같은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나이 많은 여성에게 화장을 더 강요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생각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그런 의식이 잠재돼있다고 봐요.” - 최기선

“사회적 통념 같은 건데 분명 문제점이 있지만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는 거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도 방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꾸미기 노동 강요의 가해자라고 생각해요.” - 조이성화

최근에는 화장이 여성에 대한 ‘젠더억압’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화남과 투데이신문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주제로 법을 전공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나는 네가 무슨 자유를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시선이나 고정관념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없는 거 같아요. 젠더억압이라는 말 자체가 자유에 대한 억압이란 말이잖아요. 자유는 선택의 문제고 화장을 선택하지 못하는 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젠더억압의 의미죠. 자유에 대한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 최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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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전소영 기자, 조이성화씨, 최기선씨 ⓒ투데이신문

“유튜브만 보더라도 이제는 드러내고 화장하는 남성들이 많아졌잖아요. 실제로 사회분위기까지 자유로워졌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런 변화가 희망적이에요. 앞서 브래지어 방담을 함께 했던 불꽃페미가 말하길 우리 세대에는 여성 억압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거래요. 다만 이전 세대 때부터 이어져왔고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도 있을 여성 억압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다보면 언젠가 변화할 거라는 희망을 말했어요.” - 김태규

김 기자의 체험기와 화남·투데이신문의 방담을 읽고 나서 누군가는 여성들이 ‘화장을 안 하는 사회’를 원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화장을 안 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여성, 남성이라는 사회가 규정한 성별에 차별받지 않고 개개인이 화장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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