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불꽃같은 사랑
[칼럼] 불꽃같은 사랑
  • 이석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03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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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재 칼럼니스트
▲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오빠. 저는 불꽃같은 사랑이 하고 싶어요.

 그해 겨울, 우리는 길었던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이제 막 새로운 세계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간의 어려운 과정들 속에서 접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비슷한 시기에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유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몸이 좋지 않았다는 공통점 때문에 몇 번인가 식사를 같이 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대화를 나눴다. 그뿐이었다. 그리고 각자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간 뒤에는 다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일은 없었다. 그랬기에 마지막 자리에서 뜬금없이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시 그 입술과 또랑또랑한 눈동자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다 수줍게 대답했다. 

 나도. 나도 불꽃같은 사랑을 해보고 싶다.

 그때는 그녀의 말에 진지하게 답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진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 나는 마치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불꽃같은 사랑은커녕 이렇다 할 두근거림도 없이 십여 년을 수도사처럼 보냈다. 당시 나는 이런저런 험난한 일들을 겪으면서 열정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에 좀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이답지 않게 세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다르게 말하면 감정적으로 조로했다. 그래서일까. 연애도 한동안 도구적 관점으로만 바라보았다.

 도구적 관점의 연애란 이런 것이다. 연애는 할 수 있는 한 많이 해봐야 한다. 그래야 많은 이성들을 경험해볼 수 있고, 그래야 이성을 바라보는 눈이 성숙해진다. 사람은 실제로 만나서 그 바닥을 보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관계가 깊어질수록 애정과 증오가 함께 쌓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경험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연애담을 전해 듣거나 글로 읽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간접경험은 대개 뷔페식으로 진행된다. 달달한 것만 집어먹거나, 혹은 괴담 위주로만 선별적으로 집착하는 등, 그때 당시 내가 꽂혀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인간을 귀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연역적으로 평가하게 되고, 사람을 보는 시야가 자연스레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동안은 사람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주로 이런 식으로 연애의 도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이미 많은 일들을 겪었고, 당연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경험치가 쌓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니, 타인을 평가하는 도구로서의 연애를 넘어 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성찰의 도구로서 연애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연애를 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도 애인으로서의 나 자신을 평소 후하게 평가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실제 연애를 했을 때의 내 모습을 복기해보면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타이슨이 그랬던가. 누구나 완벽한 계획이 있다고. 링 위에서 얻어터지기 전까지는. 

 막상 연애를 시작하고 나면 매번 그 전까지 꿈꾸었던 수많은 계획과 다짐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생각보다 이기적이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간간이 그 반대의 경우, 나도 몰랐던 나의 좋은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정말 ‘간간이’일뿐, 생각보다 쉽게 바닥을 드러내는 내 모습에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공허해지곤 한다. 도구도 좋고 성찰도 좋지만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가. 연애만이 아니다. 생활 전반이 도구와 성찰의 대상으로만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책을 읽어도 목적의식을 갖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어설픈 번역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누군가의 이야기에 반박할 근거들을 찾기 위해 밑줄을 치고 있다. 언젠가부터 이 모든 것들에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세계를 해석하고 내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를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그것은 이성일 수도 있고, 예술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어떤 절대적인 아름다움일 수도 있겠지만 대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타버리고 난 후의 세계를 고민하지 않고, 대상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서의 열정을 지금 나는 몹시 갈구하고 있다. 문득, 불꽃같은 사랑을 해보고 싶다던 그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지금이라면 나도 진지하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