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 불어닥친 ‘미투 운동’
관심만큼 부작용도 잇달아 발생
펜스룰·유투운동 등 미투반대 움직임
단편적 참여 아닌 적극적 활동 필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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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아무도 예상치 못한 폭풍이 대한민국에 몰아쳤다. 지난 1월 26일 진주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는 검찰청 내부전산망을 통해 안태근 검사로부터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사가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 검사의 폭로가 기폭제가 돼 법조계를 시작으로 연극계, 연예계, 심지어 정치계까지 성범죄 폭로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는 ‘미투 운동(#Me too)’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이렇게 시작된 미투 운동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일파만파로 커졌다.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 권위있는 자들의 만행이 끊임없이 드러났고 한국 사회 전반에는 그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들끓었다. 동시에 이번에야말로 그동안 묵인해온 성범죄를 낱낱이 파헤치고 근절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미투 운동은 처음 의도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는 만큼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포함, 미투 운동 지지자들과 ‘남성혐오’라며 미투 운동을 비난하는 반대 측의 양자대결 구도까지 그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투 운동이 본격화된 지 두 달여가 지난 지금, 혼돈에 빠진 한국 미투 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걸림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서지현 검사(상), 김지은씨(하) / JTBC 뉴스룸 방송 캡처 ⓒ투데이신문
서지현 검사(상), 김지은씨(하) / JTBC 뉴스룸 방송 캡처 ⓒ투데이신문

‘피해자’를 ‘꽃뱀’으로 만들어

서 검사의 고발 이후 고백 이후 이윤택 전 연희단패거리 예술 감독, 고은 시인, 배우 故 조민기, 배우 조재현, 배우 오달수 등에 대한 미투 폭로가 줄줄이 이어졌다. 당시 비난의 화살은 대다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게 향했고 이에 힘입어 많은 여성들이 용기 내 또 다른 피해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미투 폭로 이후 분위기는 아이러니하게 흘러갔다. 지난달 5일 안 전 지사의 정무비서 김지은씨는 <JTBC> ‘손석희의 뉴스룸’에 출연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해외출장지와 서울 등에서 안 전 지사로부터 4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그동안 수차례의 성폭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밝히지 않은 것은 불륜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안 전 지사는 ‘합의된 성관계’라고 밝히며 무죄를 주장, 해당 사건은 미투 운동과 관련없는 치정사건이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던 중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미투 폭로가 연이어 발생했다. 같은 달 7일 <프레시안>은 과거 정 전 의원이 현직 기자 A씨를 서울 소재의 한 호텔에서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해당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고소하는 등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정 전 의원이 결백을 주장하는데다가 피해자가 얼굴과 신원을 밝히지 않고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자 일각에서는 ‘A씨가 꽃뱀이 아니냐’는 의심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용기내 자신의 성범죄 피해를 고백한 피해자들을 꽃뱀 혹은 불륜으로 조롱하는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허민숙 국회 입법 조사관은 성범죄에 관한 잘못된 통념에서 비롯된 현상 중 하나라고 봤다.

허 조사관은 지난 2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성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피해 여성들이 가해자인 사회적으로 남성에 비해 지위와 권력이 낮다는 이유로 ‘과연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는 것”이라며 “많이 배운 엘리트이자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들은 도적적으로 깨끗할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막말이나 성범죄를 저지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미투시민행동) 노선이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라는데 주목했다.

노 활동가는 “(성범죄를) 은폐하고 사소화하기 위해 꽃뱀, 혹은 가해자와의 불륜으로 호도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 태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자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성폭력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불신이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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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피해자는 없다’

꽃뱀, 불륜 의혹이 제기된 데는 미투 운동에 참여한 피해자들의 태도에 따른 영향도 크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스스로가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낸다. 과거 성범죄 피해자들이 오히려 범죄 사실을 숨기고 스스로를 탓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런 ‘피해자답지’ 않은 모습에 ‘피해자가 맞나’라는 의심을 사기도 한다. 

허 조사관의 논문 <너 같은 피해자를 본 적이 없다>에 따르면 2013년 차진영씨는 동네 학원을 함께 다니는 학원장과 수강생들과의 연말 모임에 참석했다가 같은 테이블에 있던 김모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그 자리에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던 차씨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고 다음 날 학원장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가해자 김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했다. 차씨는 결국 성추행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차씨는 피해자로서 조사를 받게 됐다. 그곳에서 차씨는 수사관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해당 수사관은 차씨에게 “너 같은 피해자를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사건 발생 후 소리를 지른다거나 때리는 등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그 근거였다. 차씨는 여느 피해자들과 달리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하는 자신의 모습이 수사관에게는 피해자답지 않게 당돌하다고 느끼게 한 것 같다고 했다.

허 조사관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사회가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만들어 낸다는 해석이다.

노 활동가 역시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는 의견을 보였다.

노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사회로부터 고립된다’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피해자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이를 벗어나는 피해자는 피해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실제 피해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원하는 피해자의 이미지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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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를 반대한다’

모든 현상에 있어 찬성 세력이 있으면 반대 세력도 있기 마련이다.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하는 측이 있다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고 남성 혐오를 조장한다는 반대 측도 존재한다.

이 같은 현상을 ‘백래시(Backlash)’라고 부른다. ‘백래시’란 사회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나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양한 형태의 백래시가 존재하지만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투 운동이 극대화되면서 남성들이 의도치 않은 성적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펜스룰(Pence rule)’ 현상이다.

실제 직장인 A(25)씨는 “최근 회식 자리에서 미투 운동에 대한 얘기가 종종 거론되곤 한다. 미투 운동이 반드시 계속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각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라며 “때문에 의도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불편하기 때문에 여성 직장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를 피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펜스룰과 더불어 성범죄 무고죄로 인한 피해를 고발하고 남성이 당하는 차별을 공론화하겠다며 미투 운동에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이른바 ‘유투 운동(Youtoo)’도 일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투 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지난 2월 24일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미투 운동은) 첫째 좋은 소재인 섹스, 주목도도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라며 “예언하건대 누군가 나타날 것이고 그 타깃은 결국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달 11일 안 전 지사와 정 전 의원이 미투 대상에 오르내리는 것과 관련해 “제가 공작을 경고했는데 그 이유는 미투를 (정치)공작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며 “안희정에 이어 봉도사(정봉주 전 의원)까지, 이명박 각하가 사라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발언 이후 김 총수는 미투 운동의 의미를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도구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미투 운동과 백래시의 갈등이 고조될수록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죄책감을 주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직장 내 성차별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짙어지고 있다.

노 활동가는 “단순히 여성이 있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조차 여성이 배제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 문제”라며 “그러다보니 우리가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온 성 불평등 문화가 해소될 수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여성을 대상화하고 주체로 보지 않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어떻게 하면 성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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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부작용, 과정 중 하나일 뿐”
“지지자들이 더 큰 목소리 내주길”

부작용이 잇따르며 미투 운동이 이대로 흐지부지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며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게 관련 단체의 목소리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본지에 “(부작용에 대한) 얘기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본질을 호도할 정도로 얘기가 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면서도 “아직 과정 중이다.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분들이 훨씬 많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반대 세력이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된다”면서 “부작용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시는 분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도마에 오른 여러 가지 사건들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가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면서 “잘 처리될 수 있도록 감시와 압력 등 행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 활동가도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의미의 ‘위드유(#With you)’도 좋지만 단편적으로 그치지 않고 특정 피해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얘기라 생각하는 문화 정착을 촉구하는 적극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활동가는 “단순히 위드유와 같이 선언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법이나 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이야기가 돼야 한다”면서 “각각의 시민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일부 개인들의 목소리만으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개인의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쉼 없이 달리고 있는 미투 운동, 그동안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픈 피해를 고백한 수많은 여성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는 결과를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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