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상인 착취해 이익 얻는 건물주
2003년 시행된 상가임대차보호법
수차례 개정에도 임차상인 보호 미약
상임법 개정·분쟁조정위원회 마련돼야

서울 서대문구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에 위치한 상가. 이 곳의 상인들은 건물주와 분쟁 중에 있다 ⓒ투데이신문
서울 서대문구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에 위치한 상가. 이 곳의 상인들은 건물주와 분쟁 중에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우스개처럼 쓰이지만 현실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실제로 건물주들은 임차상인들의 삶을 뒤흔들 만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부동산, 특히 건물은 중요한 자산이다. 2012년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평균 자산 구조는 실물자산, 즉 부동산과 같은 형태의 자산이 75.1%, 금융자산이 24.9%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실물자산 비중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건물은 임대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경제적 가치가 행복의 척도가 되면서 초등학생들마저 장래희망을 건물주로 꼽을 정도다.

건물주의 임대수익이 임차상인과의 상생으로 발생한다면 좋겠지만 도시 곳곳에서는 임차상인의 권리가 보호되지 못하고 건물주와 임차상인의 분쟁으로 이어진다. 이 분쟁을 막고 임차상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하 상임법)’이다.

상임법은 지난 2001년 12월 29일 제정돼 2003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제정 당시 원외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이 함께 제정을 추진했으나 조속한 제정을 위해 법무부 의견을 중심으로 법안이 마련됐다.

상임법은 시행 이후 현실과 잘 맞지 않아 임차인 권리보호에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고 10차례 개정됐다.

그러나 수차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임법은 임차상인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임차상인들과 시민단체는 상임법 개정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으며 국회의원들도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지만 아직 개정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상임법에 대한 개정 요구의 목소리는 크게 환산보증금과 계약갱신 요구권 등 두 가지 쟁점으로 나뉜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는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인근 ⓒ투데이신문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는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인근 ⓒ투데이신문

환산보증금,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 

이 중 환산보증금은 임차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꼽힌다. 환산보증금이란 월세에 100을 곱하고 이에 보증금을 더한 액수[보증금+(월세×100)]를 말한다.

현행 상임법 제2조 제1항은 ‘이 법은 상가건물의 임대차에 대해 적용한다. 다만, 대통령령(상임법 시행령 제2조)으로 정하는 보증금액을 초과하는 임대차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증금액이란 ‘환산보증금’을 말한다.

상임법 시행령 제2조는 지난 1월 23일 개정돼 현재 서울시의 경우 환산보증금이 6억1000만원을 넘는 경우 상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부산은 5억원, 세종, 파주, 화성, 안산, 용인, 김포, 광주(경기도)의 경우는 3억9000만원이며 그 외의 지역은 2억7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상임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환산보증금은 상임법이 시행된 이후 15년 동안 개정을 거듭해 현재의 기준이 마련됐다. 그러나 현행 기준도 임차인을 보호하기에 부족하다.

지난 2015년 서울시의 조사에 따르면 유동인구가 많은 명동, 강남 등 상위 5개 상권의 경우 평균 환산보증금이 7억9738만원으로 조사됐다. 이 곳들의 상인 대부분이 상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환산보증금 이내 임차상인은 ‘총 5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계약 갱신을 요구할 권리(계약갱신 요구권)’와 ‘권리금 회수 기회의 보호’를 보장받는다.

이 외에도 환산보증금 이내 임차상인들은 확정일자를 받았을 경우 경매 혹은 공매 시에도 보증금을 우선적으로 변제받는다. 또 임대료 인상도 제한된다. 상임법 시행령 제4조는 임대료 상승률을 5%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환산보증금 초과 임차상인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무한정 올려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환산보증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지난 2016년 7월 대표 발의한 상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환산보증금 제도 폐지를 담고 있다. 환산보증금을 초과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인들도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도록 한 것이다.

홍대입구 걷고싶은거리 ⓒ투데이신문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 ⓒ투데이신문

5년간 장사 했으니 나가라?
계약갱신 요구권 연장 필요

‘계약갱신 요구권’도 개정될 필요가 있다. 현행 상임법은 임차인이 계약갱신 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최초 임대차기간을 포함해 5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분쟁이 생긴 대부분의 상가의 경우 건물주가 5년간 영업을 하며 상권을 형성한 임차상인을 쫓아내고 새 임차상인을 들여 권리금을 받아 챙기는 이른바 ‘권리금 장사’를 하고 있다. 건물주가 ‘법에서 정한 기간을 채웠으니 나가라’고 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에 임차상인들은 계약갱신 요구권 행사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 등 여러 의원들이 각각 대표 발의한 상임법 일부개정법률안안은 계약갱신 요구권을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 역시 소관위에서 계류 중이다.

계약갱신 요구권이 소용없는 경우도 있다. 상임법 제10조 제1항은 ‘건물이 노후·훼손 또는 일부 멸실되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경우’, ‘다른 법령에 따라 철거 도는 재건축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계약갱신 요구권을 보장받는 기간이라도 건물주가 거절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임차상인들은 건물주가 재건축을 이유로 내쫓으려 할 때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임차상인들은 재건축으로 건물에서 나가게 될 경우에 대한 보상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2015년 상임법 개정으로 권리금 보장
적용대상 제외돼 못 받는 경우도 있어

권리금 회수에 대한 개정도 필요성이 제기된다. 권리금은 지난 2015년 5월 상임법이 개정되면서 법제화됐다.

상임법 제10조의3은 권리금을 ‘상가건물에서 영업을 하는 자 또는 영업을 하려는 자가 영업시설·비품, 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상가건물의 위치에 따른 영업상의 이점 등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의 양도 또는 이용대가로서 임대인, 임차인에게 보증금과 차임 이외에 지급하는 금전 등의 대가’로 정의하고 있다.

공실을 계약하는 경우엔 권리금을 건물주에게 지급하고, 임차인이 신규임차인에게 상가를 양도할 경우 신규임차인이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에도 예외가 있다. 동법 제10조의5는 상가건물이 ‘대규모점포 또는 준대규모점포의 일부인 경우’와 ‘국유재산 또는 공유재산인 경우’에 권리금 적용을 제외한다. 또 전대차 계약의 경우도 권리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때문에 전대차 상가나 전통시장의 경우 권리금을 보장받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모두 같은 임차상인인데 보장을 제외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맘편히장사하고싶은상인들의모임(맘상모) 최지원 연대국장은 2016년 3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포럼’에서 “임차상인의 권리인 권리금이 전대차 상가나 전통상가의 경우 보장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3, 4번 출구 인근 도시환경정비구역에 걸린 현수막 ⓒ투데이신문
서울 서대문구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에 걸린 현수막 ⓒ투데이신문

개정안 반영돼도 ‘사각지대’ 존재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 마련돼야

그러나 지난 기사에서 소개한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의 경우 환산보증금 제도와 계약갱신 요구권이 개정돼도 임차상인들을 보호할 수 없다.

건물주가 임차상인들을 내쫓을 경우 권리금을 줄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임차상인들은 건물주와 협상을 시도하고 있으나 건물주는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강제력을 갖고 상가임대차에 관한 분쟁을 조정·해결하기 위해 지자체에 강제력을 가진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의 임차상인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의원과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상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자체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해 원만한 분쟁해결을 도모했다.

이 개정안은 조정이 성립하면 당사자의 합의와 동일한 효력을 갖게 하고 빠르게 분쟁을 해결해 당사자들의 손해를 최소화하도록 했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임차상인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쫓겨나고 있다. 임차상인들이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 수 있을까. 상임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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