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민간인 학살 50주기, 시민평화법정 열려
가해자 유무죄 아닌 국가 불법행위 책임 판단
참전 군인 개개인 비난하는 자리 되지 않아야
많은 국민들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동참하길

ⓒ투데이신문
(왼쪽부터) 양현아 교수, 김영란 전 대법관, 이석태 변호사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오는 4월 21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시민평화법정이 열린다.

이번 시민평화법정에서는 1968년 베트남 중부 꽝남성 소재의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이 다뤄진다. 법정에서는 당시의 증인과 참전군인의 증언영상과 검증, 당사자신문 등 다양한 형태의 증거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 소송의 취지는 ▲국가배상법에 따른 배상금 지급 및 공식 사과 ▲대한민국 군대에 의해 벌어진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살인, 상해, 폭행, 성폭력 등 불법행위 여부 등 진상조사 실시 및 공표 등이다.

일반적인 법정과는 다르게 시민평화법정은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졌지만 엄격한 법률적 판단이 내려져야 하는 법정이기 때문에 높은 전문성과 사회적 신망이 두터운 법률가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의 뜻에 따라 김영란 전 대법관, 이석태 변호사, 양현아 서울대 교수가 재판부로 위촉됐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사무실에서 재판부로 위촉된 3인을 만나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과 한국, 향후 열릴 시민평화법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투데이신문
김영란 전 대법관 ⓒ투데이신문

장 전 대법관 등 세 사람은 국가에 책임을 묻는 시민평화법정 재판부로서 위촉된 데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소회를 말하기엔 준비가 덜 된 느낌이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성 성 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남북 간 공동 검사의 일원이었다. 당시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피해 속내를 증명하고 피고인의 책임을 추궁하는 역할을 했었다. 이런 활동이 씨앗이 돼 이 같은 국가책임 소송에 (재판부로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양현아 교수(이하 양)

“우리 역사 가운데 과거사 청산은 괄호 쳐놓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달성 등에 집중해왔다. ‘과거사 정리를 언제까지 미룰 수 있느냐’라며 이를 끄집어내 논의하기도 했지만 진전을 보이는듯하다 끝났다. 이처럼 꺼내기 어려운 과거사 문제 중 하나가 베트남 전쟁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간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자발적으로 꺼내기 쉽지 않았다. 전쟁 참가자의 개별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할 수 있는 때가 왔다고 생각해 (시민평화법정 재판부 제의를) 받아들였다.” - 김영란 전 대법관(이하 김)

“베트남전쟁은 베트남과 한국과의 문제로 인한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형사적 평가가 이번 법정에서는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 사안을 시민단체에서 시민평화법정을 통해 논의한다는 점이 미미하지만 존경스럽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 전쟁 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한국군이 가해자가 된 당시 베트남의 현상과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 이석태 변호사(이하 이)

재판부는 이번 시민법정은 베트남전쟁에 참전 군인 개개인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국가 차원의 보상과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들이 어땠는지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 사실관계를 따진다는 게 쉽지 않다. 하미 마을의 한 주민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국군이 숨어있으라고 해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또 한국군들이 어떤 계기로 참전하게 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민간인 학살의 책임을 묻는다는 건 힘든 지점이다. 때문에 평화운동과 비폭력 차원에서 이 문제를 확장해볼 필요가 있다.” -

ⓒ투데이신문
양현아 교수 ⓒ투데이신문

모의재판이긴 하나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인 만큼 세 사람에게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이번 시민평화 법정을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을까.

“우리가 법정에서 만날 원고들은 당시 전쟁 중에 살아남아 희생자들의 고통을 증언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재판부 역시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묻고 희생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인데 그게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다. 행간에 다 기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사실 자체만으로 아프고 무겁고 절규가 느껴졌다. 또 한국들의 참전도 어떤 상황에서 이뤄졌을지 고려한다면 이번 법정에 정치적 색을 덧씌운다거나 병사 개개인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시민법정이기 때문에 보통의 법정과는 다르다. 여러 가지 제약은 존재하지만 이것 또한 법정이기 때문에 헌장에도 나와있듯이 가능하면 엄중한 법의 논리에서 사건을 보려고 한다. 재판이 끝난 이후 국민들이 봤을 때 ‘제한적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담론이 논의됐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재판이 되길 원한다. 이번 시민평화법정이 해프닝성 이벤트가 되지 않기 위해 재판부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

ⓒ뉴시스
지난달 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청년단체 연꽃아래 회원들 ⓒ뉴시스

이번 시민평화법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 정부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제가 실제 법정에서 다뤄진다면 극복해나가야 할 법적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시민평화법정인 만큼 우리 국민들이 베트남전쟁 민간인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베트남 국민들이 한국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한국이라는 국가가 전 세계적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

지난 3월 23일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쩐 다이 꽝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공식적인 사과는 아니지만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게 재판부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의 목소리를 내온 한국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 가해자로서 이를 숨기고 은폐하고 변명하면 일본과 다를 바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재판부는 이번 시민평화법정이 한국 정부 스스로가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본다. 공식적인 사과는 아니었지만 ‘유감’이라는 단어를 쓴 걸 보면 베트남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본다.” -

“한국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이번 재판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한국의 인권의식이 올라가는 중이라는 걸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생각한다. 지평을 확장해 한국 정부 스스로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우리는 일본보다 수준이 높다. 국제적으로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을 언제든지 교정할 능력이 있고 그동안 노력을 해왔다는 걸 보여주는 게 이번 시민평화법정이다.” -

앞서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는 피고 대한민국 법률상 대표자인 법무부(박상기 장관)에 증거 및 변론준비기일 통지서를 송달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은 상황이다. 재판부는 법무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시민평화법정 당일에라도 국가 차원의 움직임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국가도 국가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법무부에서 결정하기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이해한다. 시민법정이지만 단순히 시민단체의 행사가 아니라 엄중히 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우리가 민주주의 본질에 더 많이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라면 (법무부가) 참여해도 좋을 것 같다. (웃음)” -

“법무부도 정부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희망컨대 시민평화법정이 열리는 날 법무부 당사자가 나와 상황을 직접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참고하고 이와 더불어 미디어를 잘 동원해 재판 진행 상황을 많은 국민들과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 -

ⓒ투데이신문
이석태 변호사 ⓒ투데이신문

끝으로 재판부는 정부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도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동참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이전에 유사한 시민법정을 봐왔지만 이벤트성이 짙었다. 그에 반해 이번 시민평화법정은 굉장히 준비가 잘 됐고 관심도 높다고 생각한다. 재판이 끝난 후에도 베트남 문제와 관련에 어떤 활동을 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무엇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을 위해 소수만 열심히 싸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해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틀을 벗어나길 기대해본다.” -

“추상적인 기대를 해본다. 우리 국민들이 이번 재판에 참여하든, 안 하든 사건을 알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어떤 마음의 준비도 없이 오로지 관광을 목적으로 베트남을 갈 순 없었다. 베트남의 아름다운 자연과 오래된 역사, 문화를 보며 감탄하는 한편 무거운 느낌을 가지는 국민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이번 시민평화법정이 그런 마음의 짐을 함께 풀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이 누군가에겐 숨기고 싶은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또 다른 피해자인 우리는 잘 안다. 뒤늦게라도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필요할 때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